
피아니스트로 20여 년간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해 온 배순옥 시인이 두 번째 시집 『팽나무 밑동 북쪽에 핀 이끼』(시와사람刊)를 펴냈습니다.
여수가 고향인 배 시인은 1998년 월간 《문학공간》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했으며, 광주시문학상, 정소파문학상, 영호남문학상 등을 수상한 중견 시인입니다.
2024년 광주문학상을 수상한 이번 시집에는 사물에 대한 그만의 웅숭깊은 관찰과 사유의 언어들이 숨 쉬고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서정시이지만 언어 사용은 그 운신이 자못 활달하면서도 갈피갈피 변화를 담아내 그만큼 새롭고도 특이한 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수북한 밤을 벗느라 고요도 환한
동그라미 음문陰門
후끈 단 몸
정표인 듯 속살 박힌 촉수가 뜨겁다
쿵쾅, 심장 뛰는 소리
썰썰한 물소리 엉겨 붙어
밤의 등짝 덥석 안고 몸을 여는
저 하얀 꽃
황적색 해를 업고 달로 뜬 詩의 집
내 가난한 시 한 편도 들어가 살것다
- 박꽃
달빛 아래 피어난 정갈하면서도 요염한 박꽃의 자태를 더없이 아름답고 조요로운 모습으로 그려냈습니다.
'박꽃'을 두고 '저 하얀 꽃'이라는 말에는 '저 하얀 어깨선!'이라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황적색 해를 업고 달로 뜬 詩의 집"을 꺼내 들었으니 박통이나 박꽃과 짝을 이루는 맞춤 사물은 아무래도 달빛과 '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쯤에서 예견이라도 하듯 "쿵쾅, 심장 뛰는 소리"로 이동하게 되고 '박꽃'에서 읽은 '고요도 환한' 동그라미 음문을 만났다는 대목에서 후끈 단 몸에 저 하얀 박꽃의 심장 뛰는 소리가 뜨거워진 물소리를 불러들여 어깨선 너머로는 선경처럼 아름다운 달을 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배순옥 시인이 구사한 시적 서정성은 "정표인 듯 속살 박힌 촉수"가 썰썰한 물소리에 몸을 여는 일이었고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했을 언어적 조합으로 그 흐름을 잡았다고 하겠습니다.
김종 시인은 시해설에서 "이번 시집에서 드러난 배순옥 시인의 시적 서정성은 생수 한 모금 같은 생명감이 압권이다. 자신의 시작품을 독자적인 생명체로 형상하면서 언어의 감각성과 가락을 삶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데까지 접목하여 투입하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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