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짜장면 시키신 분!" 철가방 둘러맨 시인 '김을현'.."유량하는 삶"(1편)

    작성 : 2024-11-30 08:30:01
    방랑벽에 이끌려 바람처럼 유랑하는 삶
    중년 문턱 넘어서야 등단, 시집 4권 출간
    생활비 벌고자 시골 중국집서 '철가방 맨'
    [남·별·이]"짜장면 시키신 분!" 철가방 둘러맨 시인 '김을현'.."유량하는 삶"(1편)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김을현 시인

    '시인과 주방장'으로 여러 방송에 소개되면서 국내는 물론 멀리 미국에까지 유명세를 탄 김을현 시인.

    그는 여전히 전남 무안군 현경면 소재 '사거리반점'에서 짜장면을 배달하는 '철가방 사나이'로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울러 틈틈이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면서 '낭만가객'의 면모를 한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모태 시인'이라 부르는 그는 1964년 생으로 올해 회갑을 맞았습니다.

    젊은 날 방랑벽에 이끌려 바람처럼 유랑하며 지금의 자리에 당도했습니다.
    ◇ 학창 시절에 문학과 운동을 좋아해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난 그는 학창 시절에 공부보다 문학과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때때로 장항선의 불빛을 따라 도시로의 탈출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문학은 그의 꿈이자 도피처가 됐습니다.

    어린 시절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회벽에 걸려있던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등을 읽었습니다.

    한번은 강원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형에게서 윤동주의 '서시'를 선물로 받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무안 '사거리반점' 전경

    학창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읽고 또 외우면서 밤길을 걸었습니다.

    일기장보다 더 많은 습작 노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문학은 그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일간지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등단의 길은 멀었습니다.

    중년의 문턱을 넘어 2011년 광주 '현대문예'에 시 부문으로 등단을 하게 됐습니다.

    "시가 내게로 왔다"는 네루다의 시처럼, 시는 그에게 와 있었습니다.

    이후 광주시인협회, 광주문인협회, 국제PEN광주위원회, 다문화 문예지 '나눔문학' 등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또한 '문학인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충장로, 금남로, 하서로 등 광주의 길을 문학으로 안내하는 '광주문학로드시비길'에도 앞장섰습니다.

    ▲손님의 요청으로 노래하는 김을현 시인

    ◇ 신춘문예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쓴 맛
    그는 지금까지 4권의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첫 시집은 2015년 『익시아스_암흰노랑나비』로 나비의 생애와 시인으로 성장하는 자신의 생애를 네 단계로 정리하여 상재했습니다.

    두 번째 시집은 가족 3대의 문집으로 90세의 할머니와 50대의 아들, 10대의 손녀가 함께한 『엄마.아빠.딸』입니다.

    세 번째 시집은 『시인과 주방장』으로 무안의 중국집에서 KBS '인간극장'의 주인공이 된 시인과 주방장의 작품 각 40편씩을 모아서 만들었습니다.

    네 번째 시집은 질문의 시집으로 『느낌과 물음 사이』(2022년)입니다.

    ▲네 번째 시집 『느낌과 물음 사이』

    나무가 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일 년에 한 번씩 죽어가는 풀이 아니라
    내 이름을 걸고
    뺨 붉은 사과처럼 멋진 열매를 맺고
    세상 첫날에서 마지막 날까지 죽지 않는
    나무가 되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보고 풀이라 해도
    스스로 키 작은 나무였으니
    나무도 풀도 결국은 한 뿌리였지 않았던가
    이 뿌리로 줄기와 꽃잎을 세우지 않았던가
    더 멀리 더 깊이 가보자
    오늘이 내일의 운명이라면
    나는 썩어 없어질지라도 내 홀씨는 살아서
    저 히말라야 산정이라든가 마리아나의 밑바닥까지
    훨훨 가리, 기억이 닿지 못한 곳으로.

    - 시 '민들레 유서'
    ◇ '사거리반점' 김경만 대표와 의기투합
    광주에서 잡지사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취재 과정에서 무안의 '사거리반점' 김경만 대표를 알게 됐고, 의기투합하게 되어 무안에 눌러앉게 됐습니다.

    ▲무안 사거리반점 대표 김경만 주방장과 함께

    "시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것인데, 중년의 가장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가 아닌 생활비였다"고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그가 함께 한 사거리반점은 KBS '인간극장'을 비롯하여 많은 매체에 소개되어 이제는 하루에 200여 명이 다녀가는 전국맛집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사거리반점의 시인이자 '헐레벌떡맨'으로 통합니다.

    시골 마을인지라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그는 "한번 만나면 부모님을 만난 것처럼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속정 깊은 마음 자락을 드러냈습니다.
    ◇ 무안은 꾸밈없는 자연 그대로의 고장
    그동안 식당을 찾은 손님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번은 담양에서 홀로 온 손님이 짜장면과 짬뽕 각각 한 그릇씩을 시켜서 먹었습니다.

    사연인즉 아내가 병석에 있을 때 퇴원하면 사거리반점에 가기로 했는데 병을 이기지 못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게 되어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혼자서 두 그릇을 먹어야 했다는 말을 듣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구순의 어머니와 함께 기념 촬영

    그의 무안 생활은 어느덧 6년 째 접어들었습니다.

    어차피 아내와 딸은 일과 학업을 위해 도시에서 지내야 하니 그에 맞춰 도시와 시골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안에 터전을 잡고 늦게나마 가족을 위한 쉼터를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어디나 정들면 고향이라고 했지만 무안은 꾸밈없는, 자연 그대로의 고장입니다. 특히 산골에서 자란 저에게 너른 들판이 주는 광활함은 큰 숨을 쉬게 했습니다"라고 무안에서 자족한 삶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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