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3월 초입, 세상 만물들은 겨울과 봄의 경계 지점에서 서성거립니다.
성급한 마음은 '봄'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이따금 '겨울'이 매몰차게 가로막습니다.
두 계절은 한동안 줄다리기를 계속하다가 어느 순간 봄이 승자가 되어 환하게 승리의 미소를 짓습니다.
그렇게 경계는 사라지고 자연 순환의 원리에 따라 새로운 계절이 시작됩니다.
이맘쯤 누구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생명과 자유에 천착해온 서유나 화가.
전북 완주 출생인 화가는 전북대 미술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개인전 20회와 다수 그룹전에 참여한 중견 작가입니다.

32살에 결혼과 동시에 광주광역시에 둥지를 튼 화가는 올해로 화업 30주년을 맞아 또 하나의 경계 지점에 서 있습니다.
오는 7월 개인전을 앞둔 작가는 동안거(冬安居)에 든 구도자처럼 내면의 깨우침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작가는 처음 낯선 광주살이에 적응하기 위해 적잖은 탐색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아이쿱 생협에 가입해 또래 엄마들을 만나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린이도서연구회에 참여해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면서 '광주사람들의 정서'에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남구 봉선동에 살면서 청소년수련관 도서관에서 엄마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어요. 이를 바탕으로 나중에 광산구 이야기꽃도서관에서 '시민그림책학교'를 개설해 동화책 3권을 출간하게 되었죠."
◇ "5월이 되면 뭔지 모를 뜨거움 느껴요"5·18과 관련해서도 작가는 인상 깊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5·18 관련 동화책을 읽으며 광주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느끼게 되었어요. 특히 5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단체로 참배하는 것을 보고 뭔지 모를 뜨거움을 느꼈어요. 저는 그것을 ‘의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북적이는 봉선동을 떠나 광산구 수완지구 전원마을로 이주한 작가는 삶과 작업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합니다.
100세대에 이르는 마을 주민들과 끈끈한 인연을 맺으며 포근한 안식처로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되고, 수완문화사랑회 등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작가로서 긍지를 느끼게 됩니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초년 시절 '꽃과 나비'를 즐겨 그리며 생명의 소중함을 화폭에 구현해 왔습니다.
또한 전통적인 수묵과 채색화보다 아크릴을 안료로 현대적인 느낌의 화풍을 선보여왔습니다.
작가는 "꽃, 새, 자연의 소리 등 우주의 일부인 지구에서의 자연 속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작업은 신나고 흥분되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어 "자신은 '은사 복(福)'이 있는 것 같다"며 전북대 예술대를 창설한 송계일 교수와 이상찬 교수, 아트포럼인터네셔널 광주지부장이었던 김종일(2023년 작고) 전남대 교수와의 각별한 인연을 언급했습니다.
◇ 김종일 교수로부터 기본의 중요성 배워특히 김종일 교수를 만나면서 프로 화가로서 기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광주 시내 덕인빌딩에서 4명이 함께 작업실을 사용했는데, 그 때 김종일 교수님으로부터 화가의 기본 자세를 배우게 되었죠. 교수님은 항상 출퇴근이 일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작업 후 물통이나 붓 세척 등 정리정돈이 깔끔하셨어요. 특히, 그림을 틀에 맞게 단정하고 세밀하게 마무리하는 부분은 대가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2021년 팬데믹을 겪으며 작품에 큰 변화가 나타납니다.
꽃과 나비에서 공중에 길 없는 길을 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새'를 테마로 붙들게 됩니다.
새를 형상화한 작가의 그림은 바둑판처럼 가로줄과 세로줄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직각으로 교차하는 격자무늬 배치가 주류를 이룹니다.
새의 펄럭거림을 격자무늬 형태로 풀어낸 것입니다.
"날씨에 따라 달리 보이는 자연을 전제로 해 새의 퍼덕거림으로부터 조형적 미학을 캐치했습니다. 저는 이 퍼덕거림에서 밝음과 희망의 이미지를 승화할 수 있었죠."
작가는 2021년 송정작은미술관에서 시각예술지원사업의 하나로 열린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새를 선보여 변화의 디딤돌로 삼았습니다.
◇ 내면의 깊은 인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후 작가는 추상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작가의 화폭에서 보이는 새들은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비상을 꿈꾸고 있는 동시에 다양한 형태로 겹쳐지고 평면적으로 처리, 추상화에 가닿고자 하였습니다.
격자무늬 형태는 역동적인 새의 이미지를 안정적으로 보여지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화면을 더욱 단순화하고 함축성을 통해 조형적 미학을 심화시키고자 하는 ‘숙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새 그림은 여전히 구상적 요소가 강하고 구체성을 잃지 않아 '반추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원불교 수완교당에서 마음 공부를 하면서 뜻밖에 '숙제의 해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음공부를 12차시까지 마치고 나서 작은 깨달음이랄까, 진리 같은 것을 깨우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경계'라는 개념의 발견이었습니다.
"경계는 절대적 구분이 아닌 상대적인 인식의 공간으로서 깨달음의 시작점이며, 내면의 깊은 인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작품에서 수많은 선들이 모이고 면을 만들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그 변화의 과정은 마치 우리 자신의 하루하루의 삶과 같다고 생각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작가는 마음공부로부터 발견한 '경계'를 주제로 2024년 11월 장덕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그동안 꿈꿔온 추상세계로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아울러 오는 7월 전남 화순군 도곡면 소소미술관에서 '경계'란 주제로 초대전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 "최근 시낭송을 배우고 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삶이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원불교당에서의 마음공부와 시가 내게 온 것은 대박"이라고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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