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data/kbc/image/2025/02/03/kbc202502030037.800x.0.jpg)
"운명적으로 산을 만나 '산 사나이'가 됐지라우"
운명을 믿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러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운명'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조규칠 시인은 나이가 들수록 '운명론'을 믿는 마음이 짙어졌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우연히 산(山)을 만나게 되었고 평생 '산 사나이'로 살고 있습니다.
전국 100대 명산을 두루 섭렵했으며, 그 가운데 설악산 3회, 지리산 6회, 월출산 18회 완등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남한의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도는 '코리아 둘레길'을 걷고 있는 중입니다.
내년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향하던 '과거길'을 순례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 전남 진도 출신, 베트남전 참전용사섬에서 태어난 조규칠 시인은 원래 '바다 사나이'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는 1947년 12월 6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용호리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작스레 아버지를 여의고 이후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 섬을 떠나 목포에서 '마도로스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고교 2학년 때 가정 형편상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돕던 중 어머니의 권유로 다시 공부해 또래들보다 4년 늦게 광주 농고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1970년 군에 입대해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됐습니다.
![](/data/kbc/image/2025/02/03/kbc202502030038.800x.0.jpg)
1년 3개월의 목숨 건 월남 파병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한 그는 제대 후 전남도 산림직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에 합격해 진도군청에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8급으로 승진해 근무하던 중 광주시로 전입 기회가 주어져 9급으로 강등을 감수하고 1979년 광주시청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광주시는 조림사업을 역점시책으로 활발하게 추진하는 중이었고, 1980년대 초 중외공원, 경렬사, 무등도서관 등 시설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산림직 정원이 늘어나 8급으로 원상회복됐습니다.
그리고 광주북구청 농업직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농촌 현대화와 관광농업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 전남산악회, 솔잎산악회에 참여그는 1989년부터 전남산악회, 솔잎산악회에 참여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광주에는 산악회가 70개가 넘을 정도로 붐을 이뤘습니다.
땀 흘려 등산하는 즐거움이 그의 성정과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는 "밤새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싣고 새벽에 산행지에 도착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어요. 곧 만나게 될 어둠에 잠긴 산을 바라보며 나만의 희열을 맛보곤 했지요"라고 그 당시 느낌을 떠올렸습니다.
하루에 마라톤 풀코스 거리를 넘는 43㎞를 걷고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등산은 그에게 꼭 맞는 신체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
반드시 100대 명산을 완등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8월 마침내 그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data/kbc/image/2025/02/03/kbc202502030039.800x.0.jpg)
◇ 가장 인상 깊은 산은 설악산그는 그동안 다녔던 산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산으로 설악산을 꼽았습니다.
"남한에서 5번째 높은 산으로서 위엄이 있을 뿐 아니라 대청봉의 암벽 풍경이 일품"이라며 "악산이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풍긴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또한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과 김제 모악산도 고즈넉한 운치가 있어서 좋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산행에서 위험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겨울철 암반을 건너다 미끄러져 떨어졌는데 다행히 바위를 붙잡아서 손만 다쳤습니다. 그 이후로는 겨울 산행 때에는 방심하지 않고 각별히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는 공직에서 39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는데, 이 가운데 광주북구청에서는 23년을 재직하며 원예농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충효동 무등산 수박 농가를 중심으로 특산물 1호 생산자 조합을 지정했고, 운정동 화훼단지 유통시설과 삼소동 토마토단지를 조성했습니다.
또한 마을마다 선도농가육성과 농민들의 선진지 해외견학을 실시해 새로운 농법에 대한 안목을 넓혔습니다.
나아가 북구 '관광농장'을 만드는 꿈을 꾸었으며, 이러한 구상은 지금도 현재진행 중입니다.
![](/data/kbc/image/2025/02/03/kbc202502030040.800x.0.jpg)
◇ 현재 광주 북구 트레킹연합회 회장이러한 공로로 우수공무원으로 인정받아 4급으로 승진해 경제문화국장으로 퇴임했습니다.
정년 퇴직 후 100대 명산을 완등한 이후에는 '코리아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코리아 둘레길은 말 그대로 한반도 남쪽 둘레를 한 바퀴 일주하는 코스입니다.
강원도 문산~부산 오륙도까지의 동파랑길(790㎞), 부산 오륙도~해남 땅끝까지의 남파랑길(1,470㎞), 해남 땅끝~강화도까지의 서해랑길(1,804㎞), 그리고 휴전선 DMZ길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는 일주일 가운데 사흘은 코리아 둘레길을 걷고 있습니다.
72일 만에 남파랑길을 완주하고, 지금은 서해랑길을 걷고 있는데 최근 인천 대부도까지 발자국을 찍었습니다.
80세가 되는 내년까지 코리아 둘레길 전국 일주를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을 향해 걸었던 '과거길'을 걸을 계획입니다.
현재 광주 북구 트레킹연합회 회장을 맡아 셋째 주 토요일 회원들과 함께 전국의 둘레길을 걷고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