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시인 이성환 "'청년 문학'에서 희망 찾아요"

    작성 : 2024-03-22 09:02:42
    조선대 국어교육과 졸업 뒤 36년 교직 생활
    대학 시절 가난한 여공들 가르치며 보람
    '창비'에 시 발표, 국제펜 광주위원회서 활동
    [남·별·이]시인 이성환 "'청년 문학'에서 희망 찾아요"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황룡강 주변에 세워진 자작시 시판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성환 시인. 사진 : 본인 제공

    광주송정역 뒤편 황룡강변 신덕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62살 이성환 시인은 오늘도 강물처럼 바쁘게 하루를 열고 있습니다.

    지난해 광주 숭덕고를 끝으로 36년의 교직 생활에서 은퇴한 이후, 국제펜 한국본부 광주위원회에서 사무국장을 맡아 분주하게 인생 2막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그가 지나온 삶의 궤적은 늘 강물처럼 출렁이며 높고 낮은 진폭으로 부산스러웠습니다.

    ◇ '6·25 참전' 부상, 아버지 고통 가슴에

    이는 온몸으로 가난을 감내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온 그의 가족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다리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당해 평생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랏돈 받는 것이 부끄러워 보상금을 타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삭신이 쿡쿡 쑤신다'고 괴로워하시는 부친을 지켜보는 그의 마음에는 짙은 그늘로 남았습니다.

    아울러 어려운 이웃에 대한 동병상련의 애틋함을 지니게 됐습니다.

    그는 조선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83학번으로 입학, 캠퍼스에서 자신의 내면에 간직된 문학의 꽃망울을 터트리게 됩니다.

    당시 조선대는 쟁쟁한 문인들을 여럿 배출한 터라 문학적으로 강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가 가깝게 교류해온 대학 선배로는 김준태, 백수인, 이한성, 신병은, 고성만 시인 등이 꼽힙니다.

    또한 '나락문학회' 동인에 참여해 활동했는데, 이 때 지도교수가 광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김종 시인이었습니다.

    대학 생활 가운데 뜻깊었던 일은 배움에 목마른 가난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야학 봉사 활동을 펼친 것입니다.

    ▲숭덕고 재직 시절 학생들과 파이팅을 외치는 이성환 시인(왼쪽). 사진 : 본인 제공

    계림동 금수장 뒤편, 정영관 교장 선생님이 이끌던 '희망야학'에서 4년간 전방·일신방직공장 여공들을 가르쳤습니다.

    이 당시 추억을 회상하며 쓴 시 한 편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햇살은 밤이면 모두 헤어지고
    서편으로 기울어 있던 별빛이 솟아오릅니다

    졸업장 아닌 수료증을 받으면서도
    밤에 하는 졸업식이 어디 있느냐며
    되물어 보지 못하고 기어만 들어가는
    너희들의 음성들
    밤보다 얇은 수료증을 받으며
    눈물 박힌 낮은 생애의 종지부를 고하는
    수료증을 받으면서도
    나의 졸업식은 동생의 졸업식보다 훨씬
    운치 있어
    영원히 잊지 못할 거란
    울먹이는 너희들의 좁은 등을 바라보며
    우리는 시대를 욕하지 못했고
    시대에 뒤진 낡은 졸업식 노래 한 소절을
    구성지게 뽑아내지 못했다

    <야학일지> 2023, '바람을 필사하다'(시와문화刊)

    ◇ 창비사 국어 교과서 집필위원 참여

    이처럼 그의 20대 대학 생활은 푸른 꿈을 하나, 둘 채워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1988년 고흥 대서중에 첫 발령을 받아 근무하다가, 이듬해 광주 동아여고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1996년 3월, 광주 숭덕고로 이동했습니다.

    그렇게 국어교사로서 평범한 교직 생활을 이어가던 중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옵니다.

    서울 유명 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교과서 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창비사가 교과서를 발행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국어 집필위원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어 2000년대 들어 대안교과서가 등장하면서 전국국어교사모임이 주관하는 '우리말, 우리글' 집필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2011년 창작과비평에 그의 첫 시가 발표됐고, 중앙 문단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첫 시집 '바람을 필사하다'(시와문화刊) 표지.

    2021년 박몽구 시인이 주간으로 활동하는 '시와문화'에 등단, 중앙문단과 지역문단에서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2023년 첫 시집 '바람을 필사하다'(시와문화刊)를 출간했는데, 여기에는 그의 60여 년 살아온 인생의 애환이 물비늘처럼 반짝거립니다.

    박몽구 시인은 시집 해설에서 이성환의 시 세계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이성환의 시들은 우리 시대 서민들의 일상사를 즐겨 다루고, 나무와 꽃 등 자연 소재가 두드러진다는 면에서 서정시 계열에 든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시 속의 꽃과 나무는 시적 장치가 아닌 시적 페르소나가 거느리고 살아가는 일상의 동반자로 각인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성환은 그의 시적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시인이다."

    ◇ 청년작가들에게 문학적 다양성 발견

    이성환 시인은 현재 국제펜 한국본부 광주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년들로부터 광주 문학의 희망을 보았다"고 말하는 이성환 시인. 사진 : 본인 제공

    그가 추구하는 또 다른 목표는 광주에서 청년문학의 붐을 되살리는 일입니다.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국제펜 한국본부 주최 '세계한글작가대회'를 치르면서 '광주청년작가 문학포럼'을 통해 청년 문학의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이 행사에서 광주의 청년 작가들에게 미래의 문학적 다양성에 대한 도전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광주 문학의 저변이 확대됐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었습니다.

    인공지능(AI) 및 스토리 기반의 문화도시 정체성, 비전 확립 등 난제가 수두룩하지만, 청년 작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소통한다면 충분히 풀어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존 문학과는 차원이 다른 청년 문학의 다양한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청년 문학의 미래에 주춧돌을 놓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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