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38살의 젊은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 광주여성노동운동 선구자 고(故) 김성애 로사리아.
세상을 떠난 지 30여 년 만에 그녀의 불꽃 같은 삶을 기록한 책 『그리운 5·18투사 김성애·로사리아-광주여성노동운동 선구자로, 오월항쟁 투사로』(문학들刊)가 출간됐습니다.
책을 쓴 작가는 소설가 전용호 씨로, 그 역시 1980년 5월항쟁 당시 투쟁위원회 홍보위원으로 활약한 민주투사이자 글을 통해 광주를 증언해 온 지역문화운동가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 김성애(로사리아)는 1956년 광주 중흥동에서 태어나 17살 때인 1972년 호남전기공업회사(로케트전기)에 노동자로 취업했습니다.
1975년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회원이 된 후 노동자 권리를 지키기 위해 1976년 8월, 노동조합 부녀부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면서 당시 무기력한 호남전기노동조합을 민주화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1979년 호남전기 추석 상여금 요구 투쟁을 전개하다 회사 측과 갈등을 겪어 부산사업소로 발령을 받은 후 10·26이 나자 회사에 사표를 내고 1979년 11월부터 JOC 상근자로 활동했습니다.

1980년 5·18이 발발하자 시위에 참여하다가 5월 24일 시민수습대책위원으로 참여했으며, 5월 27일 계엄군이 도청과 광주 시내를 장악하자 서울로 올라가 <이 로사리아>라는 이름으로 유인물을 만들어 광주항쟁을 증언했습니다.
이후 그녀를 쫓는 정보 경찰을 피해 과천 성모영보수녀원에서 피신했다가 정보당국의 수색이 잠잠해지자 80년 후반기에 광주로 내려왔습니다.
김성애는 JOC 상근자로 지역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던 중 광주 출신으로 1974년 서울대 민청학련과 80년 5·18 유인물 사건으로 2차례 투옥 후 서울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는 임상택과 1983년 2월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서울로 올라가 두 딸을 낳고 서울지역 민주화운동가들과 공동체를 이루면서 생활을 하다 1994년 1월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그녀와 두 딸이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김성애는 민주화운동 피해자 보상 신청으로 유공자가 되었으며, 가톨릭 장지에 매장된 후 2014년 3월 국립5·18민주묘지에 이장되었습니다.
한편, 『그리운 5·18투사 김성애·로사리아』서울 출판기념회는 오는 27일 오후 4시 문화공간 온(종로2가, 통일빌딩 3층)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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