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대표할 만한 시와 선정 이유는?
제 시의 성향은 크게 개인적인 영역과 공동체적인 영역으로 2분할 수 있는데요.
지금껏 쓴 시 중 독자들이 사랑하는 시를 2편만 꼽는다면 내 속에 파란만장과 조금새끼를 들 수 있습니다.
앞의 시는 지금껏 파란만장하게 살아온 제 개인적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밀물과 썰물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뒤의 시는 바다 물때에 맞춰 살아온 목포 달동네 온금동 사람들의 가난한 삶과 운명을 사실적으로 노래한 것입니다.
그러나 둘 다 '상처'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요.
따라서 이 2편의 시는 제 시 세계의 양대 축에 해당하는 대표시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1편만 골라야 한다면 저는 내 속에 파란만장을 꼽겠습니다.

내 속에 파란만장의 바다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썰물이 지네.
썰물이 지면 바다는 마음 밖으로 달아나
질펀한 폐허의 뻘밭 적나라하네 상처가
게들처럼 분주히 그 위를 기어다니네
발자국들 낙인처럼 무수하네 가만 보니
여(礖) 같은 사랑 하나도 박혀 있네
소낙비라도 올라치면 뻘밭이 제 검은 살점을
잘게 뜯어내며 오열하는 것을 보네.
밀물은 만(灣)처럼 깊숙이 패인 가슴속을
철벅이며 오네 잘 삭은 위로처럼
부드럽게 뻘밭을 이불 덮네
그러나 내 속에 밤이 깊을 대로 깊어서
만조가 목까지 차올라 울렁거릴 때
별안간 무서운 해일이 일어
마음의 해안선 전체가 넘치도록 아프네.
내 속에 파란만장 바다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밀물이 드네.
(내 속에 파란만장전문)

◇ "지역문학의 총체가 한국문학이라고 생각"-스스로 생각하는 한국문학 및 지역문학에 기여한 부분은?
저는 지역문학의 총체가 한국문학이라고 생각하는 시인입니다. 소위 '중앙문학'이라고 불리는 서울문학이 한국문학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지요.
지역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서울문학도 엄연히 하나의 지역문학에 속합니다.
그런데 모두들 우리 문단의 권력이 서울에 있고 서울문학이 곧 한국문학이라고 믿고 있어 문제입니다.
지역문학이 스스로 독자성이나 변별력을 지니지 못한 채 서울문학의 똥구멍만 빨고 있는 셈이지요.
이러니 지역문학의 정체성이 사라졌다고 하는 겁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저는 태어나서 지금껏 남도에 살면서 남도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정신의 변별성을 살리는 문학을 추구해 왔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말든 눈치 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초지일관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역문학으로서 남도문학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품의 문학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지역문단에 강조하고 싶은 말씀은?
예로부터 광주·전남문학은 큰 틀에서 풍류와 저항이라는 양대 정신을 면면히 지켜왔습니다.
이를 우리 지역에 자생하는 대표적인 나무 '대(竹)'에 빗대어 설명하면, 대나무는 태평세월에는 피리(악기)가 되지만, 시절이 어려울 땐 죽창(무기)이 되는 정신입니다.
따라서 이 양대 정신의 뿌리는 따로 분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일맥상통합니다.
대표적으로 판소리의 신명과 해학의 정신이 그렇고, 5·18광주민중항쟁의 저항의 정신이 그렇습니다.
이 양대 정신을 문학적으로 계승·발전시키는 일이 지역문학의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요, 지역문단이 수행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주·전남문학은 작금의 침체된 상황을 극복하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러자면 침체된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새로운 돌파구가 될 방법론적 모색이 긴요합니다. 또한 문학적 다양성을 수용하는 열려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이 다르다고 해서 서로를 배척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행사성 위주보다는 작품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결국 문학은 작품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 "지역 작가들이 생산한 문학에 관심과 애정을"-끝으로 독자 혹은 지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갈수록 문학작품과 독자와의 거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학에서마저 문학작품을 읽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독자와의 소통을 도외시하는 작가들의 창작 태도에도 문제가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활자문화의 쇠퇴와 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에도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문학이 외면당하는 시대는 죽은 시대라고 합니다.
정신이 황폐한 시대일수록 문학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전남 지역민들이 이 지역 작가들이 생산한 문학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많은 충고와 비판을 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 시집 9권, 평론집 3권 등 총 20여 권 저술한편, 김선태 시인은 제5회 애지문학상(2007), 제55회 전라남도문화상(2011), 제9회 시작문학상(2017), 제4회 송수권시문학상(2018), 제20회 영랑시문학상(2023)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와 문학교과서에 3편의 시가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으로 『간이역』(문학세계사, 1997), 『작은 엽서-씨디롬 시집』(한국문연, 1998), 『동백숲에 길을 묻다』(세계사, 2003), 『살구꽃이 돌아왔다』(창작과비평사, 2009), 『그늘의 깊이』(문학동네, 2014), 『한 사람이 다녀갔다』(천년의시작, 2017), 『햇살 택배』(문학수첩, 2018), 『짧다』(천년의시작, 2022), 『고조곤히 서러운 마을 이름들』(고요아침, 2024) 등 9권과 평론집으로 『풍경과 성찰의 언어』(작가, 2005), 『진정성의 시학』(태학사,2012), 『남도 시문학의 어제와 오늘』(고요아침, 2024) 등 3권 등 총 20여 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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