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초대석]‘행운식당 둘째 아들’ 강병원 “이재명, 문재인 아닌 ‘이회창의 길’로"

    작성 : 2022-07-19 20:36:23 수정 : 2022-07-20 07:29:22
    ▲ KBC뉴스와이드 07월19일 방송
    - 강병원 의원 “이재명, 절대반지 권력 욕망만..노욕, 당에 ‘헌신’ 주장은 궤변”
    - “임종석·이재오 꺾고 의원 배지..선거는 사람 마음 얻는 것, 변화 흐름 있어”
    - “염치없는 당 전락..역경 딛고 싸워 이겨, 신뢰 회복 이기는 민주당 만들 것”

    오늘 여의도 초대석은 어제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8.28 전당대회 당 대표 선출 얘기 해보겠습니다. 당 대표의 출사표를 던진 강병원 의원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유재광 앵커: 지역구가 은평 을 재선 의원이신데 KBC 광주.전남 시청자들께는 살짝 조금은 낯설 수가 있는데 간단한 소개와 인사 말씀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강병원 국회의원: 그럴까요. KBC 방송을 시청하고 계신 광주 전남 시청자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 아프시면 치료받으러 어디 가십니까. 병원에 가시죠. 바로 제 이름이 병원입니다. 근데 보통 병원이 아니고요 병원 중에서 제일 강하고 센 병원, 강병원 국회의원입니다. 저는 고향은 전북 고창입니다. 그래서 저도 호남으로 꼭 쳐주시고 이 방송을 시청하시는 분들께 좋은 말씀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프로필을 보니까 1971년 말씀하신 대로 전북 고창 출생이고 94년에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하셨고, 이후 군대에 갔다가 제대해서 대우에 입사해서 상사맨으로 활동하셨고 그리고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당시 후보 수행비서로 정치에 입문해서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5년 내내 행정관으로 일했고, 그리고 다시 개인 사업을 하다가 다시 또 정치권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상당히 특이한 이력인데 어떻게 보면 정치인 강병원 좀 추상적인 질문이긴 한데 어떤 사람인가요.

    ▲강병원: 제가 이번에 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내세운 게 혁신과 통합의 리더십을 세우겠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요. 청와대 생활도 하고 이후에 개인 사업을 했는데 그 개인 사업이라고 하는 것이 건설 노동 일이었습니다. 한 3년 정도 그 일을 하면서 전국을 다니면서 이렇게 미장, 방수 일을 했는데요. 그때 하면서 정말 열심히 이렇게 땀 흘려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들의 삶을 보면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이런 건설 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저렇게 땀 흘리는 분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게끔 정치에 뛰어들어야겠다는 결심으로 정치에 들어왔습니다.

    이번에 우리 당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책임 정치를 구현하고 정말 분열될 거라는 우려가 아니라 통합을 해내는 새로운 인물 강병원으로 우리 당의 간판을 한번 바꿔보겠습니다.

    △앵커: 같이 잘 살자는, 그런 거 하기 위해서 정치권에 들어오신 것 같은데 이번 민주당 8.28 전당대회 당 대표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출마의 변을 들어보겠습니다.

    ▲강병원: 지금 호남의 이번에 지방선거 투표율이 37.7%였습니다. 이 얘기는 정말 민주당 싹 갈아치워라 정말 이렇게 해서 정말 찍어줄 수 없다는 그런 분노의 표출 아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물 강병원이 등장해서 우리 당의 혁신과 통합을 이끌 때 신뢰 회복이 시작된다, 라고 생각하고요.

    강병원이 우리 국민의 마음 신뢰를 회복하고 책임 정치를 구현하고, 그리고 당내 온정주의를 타파하고, 내로남불을 하는 의원들에 대해서 일벌백계하면서 우리 당의 신뢰를 회복해서 이기는 민주당 승리하는 민주당으로 이끌어 가겠습니다.

    △앵커: 당 대표 출사표 던진 이재명 의원에 대해서 페이스북에서 이재명은 있고 국민은 없다 등등 아주 직설적으로 비판을 하셨는데 뭐가 그렇게 문제라는 건가요.

    ▲강병원: 대선 패배가 있었습니다. 평가들을 종합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평가가 없이 또 지방선거를 나왔습니다. 지방선거 패배에 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본인의 정치적 고향인 성남을 놔두고 인천 계양 을이라고 하는 우리 텃밭에 와서 거기서 당선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했습니까? 종로라고 하는 따뜻한 자기 지역을 정말 뒤로 하고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서 부산에 가서 도전하고 도전하면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건 헌신이지만 대선에서 떨어지고 아무런 평가도 없이 지방선거에 또 나가고 거기에서 또다시 아무런 평가도 없이 당 대표에 나온다는 것은 권력을 향한 욕망이다. 야욕이라고 표현해야지 이걸 마치 책임지기 위한 헌신이라고 하는 것은 저는 궤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이렇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모든 정치인이 노무현의 길만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뭐 이재명에게는 이재명의 길이 있을 수 있고 그 길을 걷고 있다 라고 말씀을 하면 그건 어떻게 반박을 하실까요.

    ▲강병원: 이재명의 길, 노무현의 길, 문재인의 길, DJ길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어땠습니까? 떨어진 이후에 자기가 정말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 몇 년이 지난 후에 당 대표가 되어서 대통령이 된 겁니다. 이회창은 어떤 스타일이었습니까?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성 없이 또 제왕적 당 총재가 되어서 다음 대선에 도전해서 또 진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과연 이재명 의원은 어떤 길을 걸어야 될까요. 우리 당에 있는 많은 절대 다수의 의원들이 이재명 의원에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지금 나오는 건 옳지 않다. 좀 물러서서 성찰하고 지금 당 대표는 젊은 그룹들이 우리 당의 변모된 모습을 보이게끔 하자, 라고 다 얘기한 거 아닙니까? 의원 워크숍에서도 이구동성으로 그런 얘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절대 다수의 의견도 듣지 않는데 우리 당내에 이재명 의원으로 당내 통합이 되겠습니까? 역시 분열과 갈등이 시작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앵커: 설훈 의원 같은 경우는 당 대표 출사표 역시 던지셨는데 이재명 의원이 되면 당이 쪼개질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데 동의하시나요.

    ▲강병원: 저는 설훈 의원님의 그런 우려에 대해서 공감이 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얼마나 많은 의원들이 이재명 의원의 출마를 만류했습니까?

    △앵커: 그럼에도 민심 당심 모두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의원이 계속 압도적 1위를 달리는 건 그건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요.

    ▲강병원: 그런데 민심이라고 하는 국민 전체 여론조사에서는 예전에 SBS 여론조사는 53.9%가 부적절하다고 했고요.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56%가 부적절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선택을 하게 되면 중도층이 우리를 지지하겠습니까. 중도층에게서 멀어지는 민주당, 자꾸 뺄셈의 정치만 되는 민주당이 되어서는 우리는 정권을 잡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앵커: 이재명 저격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일견 그런데 이런 지적과 비판이 있을 수가 있는데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이른바 천신정 기억나시죠. 그때 천신정들이 이른바 정풍운동을 주도하면서 DJ 정부 때 권노갑 당시 고문 2인자를 끌어내리면서 본인들 존재감을 키웠는데, 보통 정치권에서는 센 사람, 센 대상이랑 맞서 싸우면서 자기 몸집을 불리는 경우가 왕왕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 의원님도 이재명 의원이랑 싸우면서 이렇게 자기 정치적 몸집 불리려는 거 아니냐 이렇게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는데 그거는 어떻게 보실까요?

    ▲강병원: 저는 그런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일견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거를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당 전당대회고 저는 당 대표 후보로 나온 사람입니다. 제가 몸집을 키우러 나온 것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우리 당이 어떻게 하면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해서 수권 정당으로 갈 수 있느냐 2년 후 총선을 이길 수 있느냐 그런 것들을 책임지고자 나온 사람입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옛날얘기 좀 하나 해 볼까요. 의원님 경력 중에 궁금한 게 제가 지지난 총선, 그러니까 20대 총선에서 은평 을에서 당선됐는데 그때 보니까 민주당 경선에서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꺾고 본선에서는 은평 을에서 5선을 한 터줏대감 이재오 의원을 꺾고 당선이 됐습니다. 아주 센 사람들 둘을 연속 꺾고 당선이 됐는데 어떻게 하신 건가요.

    ▲강병원: 저도 2016년 3월 당내 경선에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하고 대결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바로 몇 달 전에 15년 연말에 임종석 비서실장이 저희 지역에 오셨거든요. 정말 그런 거물을 상대해서 이긴다는 게 너무 갑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때 내세웠던 게 연신내 행운식당 둘째 아들이라는 선거 슬로건을 썼습니다.

    △앵커: 행운식당이라고 하면 어머님이 하셨던 식당.

    ▲강병원: 저희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하셨던, 운영하셨던 식당 이름이거든요. 연신내 행운 식당 둘째 아들, 좀 푸근한 느낌이 들고 이 지역 토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 슬로건으로 임종석 비서실장을 철새와 낙하산이라고 네거티브 공격을 하지 않고 선거를 했고, 또 이 경선을 준비해서 저도 죽기 살기로 뛰었죠. 그런 게 승리의 비결이 됐던 것 같고요. 그런데 재밌는 건 뭔지 아십니까? 제가 이렇게 믿기지 않는 승리를 이뤘는데 언론에는 제 이름이 하나도 안 나오는 거예요. 임종석 실장이 패했다는 것만 나오고 제 이름은 하나도 안 나오고.

    △앵커: 누가 이긴지는 안 중요하고.

    ▲강병원: 그렇습니다. 그다음에 본선에서도 이재오 의원, 5선의 의원이셨고 MB 정부의 2인자 아니었습니까? 그때도 우리 주민들 사이에 어떤 마음이 있었냐면, 젊은 사람이 나와서 우리 지역을 위해서 일해줬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유세를 하면서 젊은 강병원 일하고 싶습니다. 제발 이 젊은이에게 일할 기회를 주십시오, 이렇게 호소를 했거든요. 이게 우리 지역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결국 선거라는 것은 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인데요. 이번 우리 당 대표 선거도 보면, 많은 우리 당을 사랑하고 하는 지지층 국민들이 민주당이 바뀌어야 한다, 싹 좀 바꿔라, 라는 큰 흐름이 있습니다.

    △앵커: 선거 얘기 말씀을 해주셨는데 일단 컷오프 통과하는 게 1차 관문인데 자신 있나요. 어떠신가요.

    ▲강병원: 자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당의 당 대표 후보자 컷오프는 7월 28일에 우리 중앙위원들이 하게 되거든요. 중앙위원들은 어떤 분들이냐 하면 우리 국회의원들, 지역의 위원장들, 그리고 이번에 어렵게 지방선거에서 살아 돌아오신 기초단체장들, 이분들 한 400분 정도 모이게 됩니다. 특히 아마 우리 광주 전남 전북에서 살아오신 기초단체장 같은 경우도 이번 지방선거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게 일꾼들의 대결이 돼야 되는데 대선 불복이라고 비판하는 것에서 할 말이 없는, 명분 없는 선거가 되다 보니까 지역 의원들 상당수가 생활하지 못했습니다. 이분들이 봤을 때 우리 당의 대표가 누가 돼야 되는지 이런 저는 생각을 하면서 젊고 새로운 인물 강병원에게 기회를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행운식당 어머님 얘기 잠깐 하셨는데 개인적인 질문이긴 한데 좀 어려서 아버님을 여의고, 서울대 총학생회장 할 때 어머님이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그때 본인 장례에 쓸 음식을 본인이 스스로 다 만들어 놓고 가셨다. 그런 얘기를 제가 어디서 들었는데 그게 어떤 얘기인가요? 그리고 그런 어머님이 계시던 지역구에서 지금 의원을 하고 있는 소회도 좀 남다를 것 같은데 같이 한 말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강병원: 저는 아버님 얼굴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제가 4살 되던 해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때 광주 광산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셨는데 산재죠. 폐를 다치셨답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낙향하셔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 얼굴을 전혀 모르고요.

    그 뒤에 어머니께서 그 시골에서 30대 초반에 홀로 계셨는데 형과 저를 키울 수 없다 보니까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형제를 맡기고 서울 홍은동에 올라오셔가지고 식모살이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정도 지나니까 단칸방을 얻을 수 있게 돼서 저와 형은 서울에 올라왔죠. 그때부터 이제 저의 가장 인생에서 행복했던 연신내 행운식당 둘째 아들의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제가 공부 좀 하니까 어머님이 엄청 기뻐하시더라고요. 우리 어머니 너무 고생하시는데 내가 공부 좀 하니까 좋아하시네 더 열심히 해야지 라고 해서 서울대에 갔습니다. 서울대 갔으면 데모를 안 해야 되는데 서울대 가니까 데모를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왜냐하면 5.18 광주민주항쟁에 대한 비디오도 보게 되고, 정말 농민들 노동자들 도시 빈민들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데모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서울대에 입학했다고 좋아했던 어머니를 배신하고 불효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와중에 94년도에 제가 총학생회장이 됐는데, 그런데 그해 2월에 돌아가셨는데 이 췌장암을 앓고 계셨나 본데 저는 몰랐습니다. 정말 불효죠. 그러다 보니까 당신께서 건강검진 받는다고 병원에 가셨는데 그때 이미 뭔가 마음의 준비를 하셨던 것 같아요. 보니까 나중에 돌아가신 다음에 냉장고, 식당이니까 냉장고가 크게 있을 거 아닙니까? 열었더니 음식을 다 해놓고 그렇게 돌아가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참 정말 불효를 했고 제가 연신 행운 식당 둘째 아들이라는 선거 슬로건을 평생을 가져가려고 하는 이유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였고, 어머니의 행운 식당을 하시면서 정말 사랑을 많이 주셨고 식당에 오시는 분들에게 행복을 나눠주셨거든요. 제가 정치를 하면서 그렇게 우리 국민들께 정말 행복한 권리를 드리고 싶고 사랑을 주는 그런 정치인으로 남고 싶어서 연신 행운식당 둘째 아들이란 슬로건을 평생 쓸 겁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시간상 더 물어볼 시간은 없는 것 같고 오늘 오전에 국회에서 기자회견 하셨는데 정치개혁 청사진을 제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왜 민주당 당 대표가 강병원이어야 하는지 마무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강병원: 저는 우리 당이 정말 국민들께 죄송할 정도로 염치가 없는 정당이 돼 버렸습니다. 정말 파렴치한 정당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렇게 약속마다 어기고 또 정말 그렇게 사과했던 일들을 또 하고 저 당은 정말 국민을 놀리는 건가 정말 반성하는 게 맞는 걸까 이런 얘기들도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서 우리 민주당을 사랑하시는 분들의 이 마음을 모아내겠습니다.

    신뢰 회복. 이 강병원이 하겠습니다. 정말 어려운 역경을 딛고 그러면서도 혁신과 통합의 길을 걸어왔고 그리고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고 하는 임종석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5선의 이재오를 꺾었던 그 다윗의 승리의 경험을 갖고 있는 강병원이 우리 당의 혁신을 바라는 국민의 민심을 얻어서 이번 8월 28일 전당대회에서 꼭 우리 당을 이끌어가는 당 대표가 되겠습니다. 우리 광주와 전남과 전북에 계신 우리 호남의 모든 분들께서 이 강병원에게 힘을 모아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우리 당을 이기는 정당으로 만들어 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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