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땅끝' 한국어 교사 이향림 씨

    작성 : 2025-09-06 09:30:01
    쉰 세 살에 오랜 국어 교사 꿈 이뤄
    경상도 출신, '전라도 아줌마' 변신
    세월호 '시민상주모임' 등 밝은 세상 힘써
    어린이책 문화운동 확산에도 앞장
    "다문화 이주민들에게 희망 심어주고 싶어요"

    ▲ 이향림 씨

    학창 시절 국어 교사가 희망이었던 이향림 씨는 30여 년이 지나 쉰세 살이 되어서야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2021년 '전정신경염'이라는 이름도 낯선 병이 찾아와 병실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던 중, 오래 묻어둔 열망을 꺼내어 '한국어 교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해 1년 만에 합격증을 거머쥐었습니다.

    이 씨는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에 빠져있었는데, 지난 8년 동안 광산구 작은도서관심의위원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고려인과 이주민(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 또는 귀화자와 부모 세대가 한국으로 이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보고 문득 '한국어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 해남군가족센터 한국어 수업 장면

    ◇ 2023년부터 해남에서 한국어 강사 활동
    자격증 취득 이듬해인 2023년부터 '땅끝' 전남 해남에서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년 과정(3월~11월)으로 이뤄진 한국어 교실은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으로 운영되는데, 현재 해남 관내에 거주하는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 관련 근로자 등 10여 명이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출신 국가는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를 비롯해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동구권, 그리고 미국에 이르기까지 '작은 지구촌'을 방불케 합니다.

    이 씨는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데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

    경상도 출신인 이 씨는 어떻게 보면 자신도 '이주민'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대구이며,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1989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2000년까지 근무했습니다.

    또한 농협 재직 중 직장 내에서 전남 해남 출신 동료를 만나 결혼해 울산에서 살다가 2004년 3월 해남에 홀로 계신 시어머니와 가까이 살기 위해 광주로 이사 오게 되었습니다.
    ◇ 시어머니 모시기 위해 광주로 이사
    결혼 당시만 해도 지역감정의 골이 깊었던 때라 주변에서는 "'전라도가 어떤 곳인 줄 아느냐'는 등 우려가 많았다."며 "남편 한 사람만 보고 결정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씨는 "광주에서 막상 살아보니 모두가 편견 없이 받아주어 안도감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다만 다른 점은 "평범한 주부들인데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남달랐다. 마치 시사평론가처럼 각자의 견해가 뚜렷한 것에 놀랐다."고 회상했습니다.

    ▲ 광주 책돌이도서관 데스크

    한동안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이 씨는 아이의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2006년 (사)어린이도서연구회(약칭. 어도연)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도연은 좋은 어린이책 읽어주기 운동, 책 보내주기 운동 등 어린이책 문화운동을 실천하는 전국적인 시민단체입니다.

    광주지부는 1998년 4월 모임을 시작하여 광주지역 도서관과 학교에서 어린이책을 함께 읽고 책과 관련된 문화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 '책돌이도서관' 탄생의 디딤돌 역할
    또한 바람직한 독서환경 문화를 만들기 위해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로 235에서 '책돌이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돌이도서관'은 순천 '기적의 도서관' 열풍으로 시작된 도서관 운동의 영향을 받아 자체 노력으로 마련된 어도연 부설 제1호 도서관입니다.

    이 씨는 '책돌이도서관' 탄생의 디딤돌 역할을 하였습니다.

    개관준비위원으로 참여해 후원금 모금과 바자회를 열어 임대보증금을 마련하고 책을 기증받아 2008년 12월 오치동 상가 2층에 문을 열었고 현재는 장소를 북구 우치로 235(2·3층) 현 위치로 옮기고 지역거점도서관으로서 마을의 문화예술 공간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 책돌이도서관 10주년 기념식

    이후 도서관 활동가로서 사서팀장과 문화팀장, 정책부장 등을 거치며 좋은 책을 찾아 도서를 추천하고 건강한 도서관 문화가 꽃피울 수 있도록 힘썼습니다.

    또한 그 와중에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목숨을 잃게 되자 '광주시민상주모임'의 활동가로 3년간 추모 활동과 진실 규명 시위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이 씨는 "2014년 6월부터 매주 화요일 광주법원 앞에서 '세월호 진실 규명'을 외치는 시위에 참여했고, 12명의 작가가 240여 일간 13명의 유가족과 함께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콘서트를 여는 등 어린이도서연구회와 시민상주 활동가들과 함께 여러 활동들을 이어왔다."며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러고 있더라고요"라며 애틋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 한국어 수강 다문화 학생들과 함께

    ◇ 도서관장 맡아 대대적으로 탈바꿈
    그러다가 2017년 도서관장을 맡아 2년간 열심히 일하며 '책돌이도서관'을 대대적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씨앗재단에서 지원하고 (사)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가 진행하는 '작은도서관이 아름답다' 공모사업에 선정, 지원금을 바탕으로 추가 모금을 통해 리모델링을 진행했습니다.

    2018년 개관 10주년 즈음하여 '그림책 특화도서관'으로 재개관하며 주민들과 함께하는 지역문화 네트워크의 허브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이 씨는 최근에는 다문화 어린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습니다.

    농촌과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다문화 인구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이들을 적극 포용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주 사직도서관과 남구 지역아동센터에서 파견강사로서 다문화 아이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육과 상담을 진행하며 그들의 고민과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씨는 "다문화 부모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자녀 교육에 대한 어려움을 많이 토로한다."면서 "독서의 저변을 넓혀 그 힘을 통해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고 행복한 삶을 찾아가면 좋겠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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