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양수 선(禪) 시화집 출판기념전 개최
뜻밖의 화재 참사를 당해 평생 그려 소장해 오던 자식 같은 작품 700여 점을 잿더미로 잃어버린 중진작가가 수행하듯 다시 붓을 잡은 지 1년여 만에 시화집 출간과 함께 전시회를 열어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중진 한국화가 김양수 화백은 지난 20일부터 전남 진도의 여귀산미술관에서 '김양수 선(禪) 시화집 출판기념전'을 열고 있습니다.
김 화백은 5년 전 고향 전남 진도로 귀소하듯 내려와 이곳 여귀산 자락에 '고요함을 잡는 마음의 집'이란 뜻의 '적염산방(寂拈山房)'을 짓고 화실을 마련하여 그림을 그려온 한국화가입니다.
그러나 김 화백은 2023년 여름 생각조차 떠올리기 싫은 일생일대의 화재 참화로 적염산방을 화마에 통째로 잃어버린 안타까운 시련을 겪게 됐습니다.
이 참상으로 평생 동안 수행자의 마음으로 갈고 닦으며 그려서 목숨만큼이나 아끼던 김 화백의 소중한 작품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 같은 사정을 곁에서 지켜본 동료 예술가이자 문우인 시인 이지엽 진도 시에그린한국시화박물관장은 안타까운 사정과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누기 위해 김 화백 돕기에 발 벋고 나섰습니다.
이 관장은 우선 시에그린 한국시화박물관에서 그 이전에 잡아 놓았던 인문학 강좌 특강을 마치고 나서 김 화백에게 다시 전시회를 열어보자고 제안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관장은 큰 고통과 아픔을 견디는 것은 다시 붓을 잡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제안에 김 화백도 망설임 없이 승낙을 하고 곧바로 불타버린 적염산방 옆에 컨테이너 박스를 들여 놓고 다시 그림 작업에 정진하였습니다.
◇ 적염산방에 컨테이너박스 놓고 창작 고행
사실은 이 관장이 김 화백에게 시에그린 문학의 집에 머물 숙소를 마련해 주고 작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김 화백은 한사코 이를 고사하고 적염산방 근처 컨테이너 박스에서 추운 섬의 겨울을 나며 이 전시회 준비를 위한 창작고행을 몸소 실행하여 그의 이런 창작열정에 더욱 큰 감동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김 화백은 한 겨울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이 터져나가는 듯한 추위와 싸우며 작업하여 뼈를 에는 듯한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예술가의 혼과 열정을 그의 그림과 시에 담아냈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산 아래 집 짓고 새벽별 기다린다'는 김 화백이 직접 그린 그림과 시 작품 22편을 담아 모두 2부로 구성했습니다.
제1부 순서에는 '보이지 않는 길', '내 자리', '보리밭', '그 목소리', '동박새', '겨울밤', '이견토굴(怡見土窟)', '물처럼', '길 끝나는 곳', '텅 빈 소리' 등이 실렸습니다.
또 제2부에는 '달빛 밤', '흐르는 물', '파도', '진달래', '꽃', '매화', '그대가 부처', '화양연화(花樣年華)', '하늘 구름', '춤추고 노래하고 싶을 때', '침묵', '조고각하(照顧脚下)' 순으로 실었습니다.
김양수 화백은 작가의 말을 통해 "고향 여귀산으로 돌아와 집 짓고 산 지 벌써 다섯 해째인데, 어머니 품속처럼 한없이 포근하고 편안하다"며 "세월 지나 이 산 속에 앉아 그림도 그리고 농사도 짓는 일상 누리고 있으니 얼마나 큰 행복함인가"라고 참상을 겪은 사람 같지 않은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어 "잡고 있던 붓을 놓고 텃밭에 나가 푸성귀 챙겨 혼자만의 밥상 차리는 일도 기쁨 중에 하나다"면서 "그림도 농사도 수행이고 수행자의 마음을 놓치면 그림도 농사도 그르치고 만다"고 덧붙여 화마의 고통을 이겨낸 예술가의 수행정신을 드러냈습니다.
◇ 화마의 아픈 기억과 상처 온전히 치유
김 화백의 이번 전시를 도운 이지엽 관장은 "김양수 화가의 그림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에 맞닿아 있으며 형체도 소리도 다 없는 적혜요혜(寂兮寥兮)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면서 "작품과 혼연일체가 된 묵언 수행의 깊이가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무궁에 닿아있음을 절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그 작품들에는 화마의 아픈 기억과 상처가 다 녹아 바람처럼 흐르고 있었다"며
"그는 이 큰 아픔을 녹여내 우선 자신을 온전히 치유하고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이 관장은 "화재로 700여 점이 다 재가 되었으니 기가 막힌 일인데 그래도 세월은 가고 작년에 약속을 하고 드디어 전시회를 열었다"며 "칼라 시화집을 내 드리는 게 제가 겨우 한 일"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한국화가 김양수 화백은 전남 진도 출생으로 동국대학교 미술학부와 중국 중앙미술대학에서 벽화를 전공했습니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38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신문과 잡지 등에 글과 그림을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내 속 뜰에도 상사화가 피고진다', '고요를 본다', '함께 걸어요 그 꽃길', '새벽별에게 꽃을 전하는 마음' 등을 출간했습니다.
현재는 전남 진도의 여귀산 자락 '이견토굴'에서 그림과 글을 쓰며 예술창작과 고행의 길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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