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은 사유로 빚어낸 화해와 위로의 헌사
1998년 『사람의 깊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장애선 시인이 27년 만에 첫 시집 『시간의 무늬』(문학들刊)를 펴냈습니다.
장 시인은 오랜 세월 사물과 삶을 경험하고 응시하면서 반목과 갈등보다는 화해와 포용의 무늬를 발견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이번 『시간의 무늬』는 시를 다듬고 또 다듬어가는 물리적인 시간에 인생을 멀리 돌아온 연륜이 더해져 탄생한 시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시간의 무늬'는 아무나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일상의 굴레에 순응해서는 어렵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일상에서 잠시 한 호흡을 갈무리해야 가능한 경지입니다.
그의 시적 어조가 잔잔하고 섬세한 것은 사유적인 그의 성품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이러한 시간의 거리가 작용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등나무를 보며라는 시에서 "기둥을 감아 오르는 등나무"는 "낮술에 취해 길가에 누운 사내"와 "옷자락을 당기는 젊은 아낙"의 무참한 현실과 오버랩됩니다.
'갈등'의 상황이지만 시인은 그 욕망과 쟁투 같은 현실 너머 화해의 세계를 바라봅니다.
"서로 의지하고 기대야만/온전히 설 수 있는 생"은 눈물 "그렁그렁 보랏빛 환한 등꽃"과 같습니다.
또한 시간에 역사가 얹힐수록 서사의 폭도 깊고 넓어집니다.
시인과 같은 세대들이 경험한 마을 공동체나 역사적 상처의 무늬가 기억의 회랑 가득 출렁거립니다.
개인사와 가족사를 넘나드는 굴곡진 삶의 희로애락도 말 없는 결정이 되어 반질반질 윤이 납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사에서 이웃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삶이 후미진 시골 "시간에 무늬를 그리는 한낮의 대합실"처럼 젖어옵니다.
그곳에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의 눈물과 회한이 스며듭니다.
와온 바다
비 내리고
그대가 매어 놓은
멀리서 출렁이는 배 한 척
밧줄 끊고 달아날 수 없는
쓸쓸한 저녁
(와온(臥溫)에서 전문)
박철영 시인(문학평론가)은 "장애선의 시들은 단순하게 감정의 범람으로 쓰인 시가 아니다. 한 편 한 편의 삶이 옹골차게 자리 잡아 순정한 마음으로 재현된 서사는 우리 사회가 잊어버린 아름다운 온정이자 인정을 담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장애선 시인은 조선대 국문과와 전남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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