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부침과 몰락..정치, 그 쓸쓸함에 대하여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1991년. 26살의 클래식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곡을 만들고 불혹을 앞둔 양희은이 가사를 쓴 노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입니다.
1971년. 열아홉. 청바지에 긴 생머리의 양희은이 처연하면서도 힘 있게 '아침이슬'을 불렀던 때부터 강산이 두 번 바뀐 20년이 흐른 때입니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요즘 정치권의 어떤 사람을 보면 왠지 자꾸 양희은의 저 노래 가사가 머리를 맴돕니다. 그 사람은 바로 '윤석열'입니다.
◇'내 손으로 뽑은 나의 첫 대통령. 윤버지'..허망, 쓸쓸

"그렇습니다. 저는 계몽되었습니다."
'계몽령 변호사' 김계리 변호사가 얼마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글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변호인인 김계리 변호사가 윤석열 피고인과 역시 탄핵심판 변론을 맡았던 '세월호 변호사' 배의철 변호사와 식당에서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속의 윤석열 피고인은 두 손을 가지런히 식탁 위에 올려놓고 세상에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김계리 변호사도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몸을 살짝 윤석열 피고인 쪽으로 기울이고 있습니다.
화기애애하고 애틋해 보이기까지합니다. 그리고 해당 사진엔 이런 글이 붙어 있습니다.
20250419. 내 손으로 뽑은 나의 첫 대통령. 윤버지.
Be calm and strong.
'윤버지'는 '윤석열 아버지'의 합성어이고. '침착하라. 강인하라'는 뜻의 'Be calm and strong'은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망망대해에서 자기 고기잡이배보다 더 큰 큰 청새치와 죽음의 사투를 벌이는 노인이 스스로를 격려하며 하는 말입니다. Be calm and strong.
사진은 따뜻하게 애틋하고. '나의 첫 대통령. 윤버지'에서도 마치 드라마 '나의 아저씨'처럼 애정과 사랑스러움, 애틋함이 물씬 묻어나고. 'Be calm and strong'에선 결기와 결의가 담겼습니다.
◇Be calm and strong..윤석열, '어퍼컷 휘날리며' 대통령에사실, 'Be calm and strong'은 지난 2020년 12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자신에 대한 징계위를 앞두고 본인 SNS 프로필에 적은 글이기도 합니다.
침착하고 강인하게. 그리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기어이 태극기와 '어퍼컷 휘날리며'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런데 김계리 변호사가 올린 사진과 글, 그간의 스토리, 이 모든 것의 합을 보는 느낌은. 왜인지. 허망함과 쓸쓸함입니다.
20250419. 사진이 찍힌 이틀 전인 17일. 김계리, 배의철 등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변호인단 몇 명이 '윤 어게인 신당' 창당 기자회견을 예고합니다.
국민의힘은 '이게 뭔 일인가' 벌집을 쑤신 듯 난리가 났고, 신당 창당 변호인단은 다음날 18일로 예고했던 신당 창당 기자회견을 취소합니다.
◇국힘 "다 같이 죽자는 거냐"..'윤석열 신당' 실패, '쓸쓸한' 만찬"신당 창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인데, "국민의힘으로부터 압박이 오늘 하루 빗발쳤다"는 게 김계리 변호사의 말입니다.
한마디로 윤석열 대통령은 신당 하고 싶은데 국민의힘에서 '다 같이 죽자는 거냐'며 뜯어말렸다는 겁니다.
'윤석열 신당' 창당은 그렇게 무위로 돌아가고, 19일 윤석열 피고인은 김계리 변호사와 배의철 변호사와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을 함께 먹습니다.
그리고 이날 밥자리는 언론사 사진기자 하나 없는, 아마도 식당 종업원이 찍어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과, '나의 첫 대통령. 윤버지'만 남겼습니다.
쓸쓸합니다.
◇尹, 국회 탄핵 뒤에도 '관저 정치'..흥선대원군 운현궁 방불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한남동 관저에 칩거하고 있을 때만 해도 '우리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지지자들이 관저 앞에 쏟아져 나왔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경찰 체포영장 집행에 저항해 인간 바리케이드를 치며 저항했습니다.
5선 나경원, 윤상현 등 중진 의원들도 12.3 계엄은 내란이 아니라며 윤석열 대통령 '결사 보위조'를 자처했고, 대선 후보들도 앞다퉈 한남동을 찾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마다하지 않고 밥, 차를 대접하며 '좋은 말'을 해줬고. 한남동을 나서는 사람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흥선대원군의 '운현궁'처럼 '한남동 윤석열'의 '관저 정치'가 열렸습니다.
압권은 헌재에서 파면당하고 서초동 사저로 돌아가면서입니다.

"대통령 뭐, 3년 하나 5년 하나", "다 이기고 돌아왔다'는 맥락도 영문도 없는 말을 외치는 걸 보면서는 '아, 윤석열의 사저 정치가 계속되겠구나' 다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의 정치'는 생각보다 일찍, 맥없이 시들어 끝나는 것 같습니다.
◇"尹 놓아주자"..손절 분위기 역력, 탈당 출당 제명 얘기까지, 화무십일홍, 무상무슨 국민의힘 유력 정치인이나 대선 후보가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사저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는 얘기는 없고, 기껏 나온 게 해프닝으로 끝난 윤석열 신당 창당 뒤 계몽령 변호사 둘과 함께 찍은 밥집 사진과 '윤버지'입니다.
거꾸로 오히려 윤석열 전 대통령 손절 분위기는 갈수록 역력합니다.
당장 안철수 대선 경선 후보가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에게 탈당은 국민과 당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압박하고 있고, 한동훈 후보는 "윤 전 대통령을 과거로 놓아드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말은 멋있고 부드럽지만, 실은, '이제 그만 묻어드리자. 정치적 고려장을 지내야 한다' 정도 뜻이 아닐까 합니다.
탈당 정도가 아니라 윤석열 전 대통령 출당이나 징계, 제명 얘기까지 당에서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대단했던 탄핵심판 때와 달리 형사재판 있는 날 법원 앞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 집회도 눈에 띄게 쭈그러들어 몇십 명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사저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어서 섭섭해하고 있다는 말도 있던데. 세상사가, 권력이 그런 거 아닌가 합니다. 화무십일홍.
무상하고 쓸쓸합니다.
◇항룡유회(亢龍有悔), 높이 오른 용은 떨어질 일만 남아..회한 안 남겨야'항룡유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역>에 나오는 말인데, '항룡'은 하늘 꼭대기 가장 높이 오른 용을 말합니다. '유회'(有悔)는 반드시 회한을 남긴다 정도의 뜻입니다.
항룡유회. 가장 높이 오른 용은 떨어져 회한을 남길 일만 남았다. 높이 오르면 올랐을수록 추락은 아득하고 충격일 것입니다.
그러니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고 언제든 떨어질 수 있으니 높이 오를수록 몸과 마음을 조신하고 바르고 겸손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로도 쓰입니다.

어,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지? 왜 없지?
윤석열 전 대통령 입장에선 섭섭하기도 하고 화도 날 것 같고 당황스러울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관심'을 받고 싶은 걸까요.
'다 이기고 돌아왔다'는 뭔가 자아분열적 발언에서부터, 내란 우두머리 형사재판에선 '평화적 메시지 계엄', '칼 썼다고 다 살인이냐' 등등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연일 희대의 '어록'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18년 선배로 윤 전 대통령이 검사 시절부터 알고 지낸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여의도초대석' 인터뷰에서 "이해를 못 하겠다"고 안타까움 섞인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검사 시절엔 정의감도 있고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모르겠다. 내가 알던 윤석열이 아닌 것 같다"는게 정대철 헌정회장의 말입니다.
◇윤석열의 '역변'(逆變)..집착할수록 괴로워, 조용히 내란 형사재판 받기를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2001년 개봉 영화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입니다. 꽃도 사람도 사랑도. 피고 지고 또 피고. 아무리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지만.
지금의 '윤석열'을 보고 있자면. 사랑도, 사람도, 정치도.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맴 돕니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정치를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정치가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떠난 여자와 버스는 잡는 게 아니란다",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또 다른 유명한 대사입니다.
떠난 여자와 버스는 잡는 게 아니란다. 정치도, 권력도. 그게 무엇이든 이미 떠나간 것에 미련을 두면 둘수록 본인만 괴롭고 힘든 게 아닐까 합니다.
항룡유회. 안 떨어지려고 집착하고 발버둥 칠수록 보기도 안 좋고 떨어지는 속도와 아픔만 더 커질 뿐입니다.
마음속에서, 마음속으로부터 다 내려놓고, '이상한 말' 하지 말고 '내란 우두머리' 형사재판이나 조용히 받으시길 권합니다. '유재광의 여의대로 108'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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