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문인협회 편집국장을 역임한 차행득 시인이 두 번째 시집『공손한 시간』(시와사람刊)을 펴냈습니다.
차행득 시인의 시 세계를 들여다보면 서정시의 윤기가 흐르는 점액질과 탄성의 언어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서정시는 일상의 정서적 사건들을 보편적이면서도 시인만이 지향하는 세계를 나타내는 문학양식입니다.
서정시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위로합니다.
그것은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윤리와 맞닿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집 『공손한 시간』은 이러한 서정시의 본질에 충실하게 다가서고 있습니다.
시인의 정신이 지향하는 세계를 진중한 음성으로 진솔하게 고백하는데, 감정을 억누르고 욕망하지 않으려는 품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번 시집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말에 관한 탐구입니다.
말의 미묘한 감각을 통해 시인의 정신성과 지향하는 세계를 읽어내기도 하고, 존재를 규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지난(至難)한 것이어서 반성과 성찰의 태도를 갖습니다.
골목 어귀에 버려진 고가구 한 짝
굴신도 못 하게 쑤시던 삭신마다
세월의 때 낀 자국마다 빛이 난다
한때 팔작지붕집 초례청 가장자리서 스란을 끌었을 매무새
물간 패랭이꽃처럼 쓸쓸해 보인다
그 쓸쓸함이
살아온 무게를 털어버린 죽은 새의 깃털처럼 가볍다
(고가구中에서)
더불어 차행득 시인의 시집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담백하게 토해내는 여성으로서의 타자성을 드러내는 시편들입니다.
여성의식, 세계의 경험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 미학적 경험으로 후기 근대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면에 상존하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체의 탈근대에 관한 페미니즘적인 탐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이번 시집에서는 유독 가족사와 관련된 작품들이 눈길을 끕니다.
부모님과 오빠, 그리고 언니에 대한 시편들이 그것들입니다.
떨쳐버릴 수 없어 껴안고 있는 가족사가 고통스럽게 여전히 시인의 의식에 갇혀있음을 보게 됩니다.
유년의 가족에 대한 기억에서는 시인이 성장한 후에도 의식에 작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며, 혈연의 유대관계 속에서도 시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가족이 시인의 삶 자체의 일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족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뜨거운 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시가 전통적 서정(抒情)을 간직하고 있어 공감력을 높여줍니다.
한편, 차행득 시인은 월간 《詩 시 see》 추천시인상 당선, 2020년 《시와사람》으로 재등단했습니다.
국제PEN문학광주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시집『그 남자의 국화빵』외 다수 저서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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