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온 대지가 신록으로 물드는 5월, 전남 담양은 유독 푸르름이 짙어가는 고장입니다.
대나무 숲이 청청한 기운을 내뿜는 죽녹원을 비롯해 키다리 가로수들이 하늘 높이 솟아오른 메타세쿼이아 숲길, 그리고 바람에 푸른 물결 일렁이는 청보리밭이 '전원의 고장'임을 실감케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푸르름의 시간이 다가오기 전에는 온통 꽃들이 지배하는 영토였습니다.
불과 한 달, 아니 보름 전만 해도 들녘에는 개나리, 목련, 벚꽃, 작약들이 지천으로 피어있었습니다.
만개한 꽃들 가운데 유난히 분홍빛을 띤 도화(桃花, 복숭아꽃)는 다른 꽃들과 다른 봄의 정취를 품고 있습니다.

벚꽃이 심술 많은 비바람에 흩어지고, 복숭아꽃이 절정을 지나 낙화를 준비할 무렵 죽녹원 인근에 자리한 '꿈꾸는 복숭아농원'을 찾았습니다.
이곳에는 50대 초반의 주인 박승호 씨가 혼자서 농원을 가꾸며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그가 이곳에 꿈터를 마련한 것은 10년 전입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 인근에 조성된 리조트 '메타프로방스'에서 씨엘펜션을 운영하던 중 친구의 권유로 복숭아 과수원 경작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앞서 그는 아버지와 함께 블루베리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던 터라 주저 없이 도전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펜션 운영을 아내에게 맡겨두고 1천 평의 논에 150그루의 묘목을 심어 본격적으로 복숭아 농사에 뛰어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으나 몸으로 부딪히며 하나하나 터득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2년 후부터 수확하기 시작해 이제는 어엿한 복숭아 농원으로 모양새를 갖추었습니다.
과수원은 눈보라 치는 겨울을 제외하곤 봄부터 가을까지 일손을 필요로 합니다.
봄에는 가지치기와 함께 꽃이 피면 화분 수정을 해줍니다.
그는 "복숭아꽃은 원래 흰색이지만 수정을 하면 분홍빛을 띤다"며 "새색시처럼 수줍음을 타서 그런 것 같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이어 열매가 맺히면 때깔을 곱게하기 위해 종이봉지를 씌워주어야 하는데 이때가 가장 분주한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수확 시기는 품종마다 다르지만 6월 초부터 10월 말까지 이어집니다.
그는 5가지 품종을 재배하고 있는데 맛없는 품종은 과감히 잘라내고 현재는 차돌복숭아와 황진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판로는 로컬푸드 등 매장에 내놓지는 않고 개별판매 위주로 하는데 절반가량은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땀 흘려 키운 복숭아를 나눠주는 이유에 대해 그는 "로컬푸드에 내놓으면 서로 경쟁심이 생겨 보이지 않는 갈등을 겪기도 한다"며 "남이 맛있게 먹어줄 때 오히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판매 목적보다는 가꾸어서 베푸는 데 의미를 두기 때문에 농약은 흙 속의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가을과 겨울 사이에 한차례 사용할 뿐 가급적 살포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해마다 당국에서 흙, 가지, 열매를 채취해 농약성분을 검사한 결과 거의 친환경농산물과 다를 바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가 1년 동안 복숭아 농사를 지어 벌어들인 수입은 고작 1천만 원 정도로 원자재 비용을 공제하면 적자인 셈입니다.
그는 '늘 적자 보는 농사는 지어서 뭐 하냐'는 아내의 잔소리에 귀가 따가울 정도라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하지만 "과수원에 있으면 순간순간이 행복하다"며 "여름철 풀 베는 것마저도 즐거운 일이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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