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의 서정과 서사를 맑고 곧은 문장으로 응축해 온 고재종 시인의 등단 40주년을 기념하는 시선집 『혼자 넘는 시간』(문학들刊)이 출간됐습니다.
그동안 발간한 10권의 시집에서 150편을 엄선하여 엮은 이번 시선집에는 농촌 현실과 생태학적 가치, 인간 존재의 근원을 궁구해온 시인의 시 세계가 면면한 강물처럼 반짝입니다.
이번 시집에 깃든 저자의 삶과 문학을 신철규 시인은 "빛의 연못을 가로지르는 고독한 산책자"로 은유하였고, 최진석 문학평론가는 유현(幽玄)한 그의 시 세계를 "고독한 길녘의 시학"으로 규정했습니다.
고재종 시인은 1957년 전남 담양군 수북면 궁산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던 그는 학비와 장학금을 받고 담양 읍내 농업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이내 그만두었습니다.
입시 공부를 위해 서울살이를 하던 1979년 말 20여 편의 시를 써서 《실천문학》에 보낸 것 중 동구 밖 집 열두 식구 등 7편이 실천문학 시집 『시여 무기여』에 실리게 돼 등단하였습니다.
그는 이듬해 고향으로 돌아와 전답을 일구며 본격적으로 시작 활동을 전개해 1987년 첫 시집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실천문학사)를 간행하였습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농촌의 사실적인 풍경을 직접 농사를 지은 사람의 생생한 육성으로 담아내 '농민 시인'이라는 직함을 얻기도 합니다.
이후 1992년 제3 시집 『사람의 등불』(실천문학사)를 펴낸 것을 비롯 2022년 제10 시집 『독각'까지 시력 40년 동안 10권의 시집을 펴냈습니다.
이 가운데 최근에 나온 『독각』은 자신의 사상이나 사유를 담아낸 시집이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합니다.
시집 『독각』은 촘촘한 밀도를 가진 언어의 집중과 무게감이 돋보이는 시집입니다.
이 시집의 핵심어를 꼽는다면 자존(自存)과 독락(獨樂)일 것입니다.
혼자서만 할 수 있는, 혼자여야만 얻을 수 있는 축복이 '고요'와 '침묵'일 것입니다.
시인은 조금은 물러난 자리에서, 심지어 자기에게도 물러난 자리에서 소란스러운 침묵과 환한 고요에 맞닥뜨립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시간을 잊게 하면서 오히려 시간이 넓어지는 때이며, 그렇기 때문에 혼자를 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한편, 고재종 시인은 신동엽 문학상, 시와 시학상,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흙의 문예상, 영랑시 문학상, 송수권 시문학상, 조태일 문학상, 송순 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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