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말 수송로' 해남 이진성지 국가사적 지정 추진

    작성 : 2023-04-13 16:55:14
    ▲이진성지 발굴조사 사진 : 해남군 제공

    제주말을 육지로 수송하던 통로였던 전라남도 해남 이진성지의 국가사적 지정이 추진됩니다.

    해남군은 지난해 11월부터 올 4월까지 발굴조사 중인 해남 이진성지에 대한 자문위원회 및 현장설명회를 가졌습니다.

    이진성은 해남군 북평면 이진마을을 둘러싼 석성으로, 전라남도 기념물 제120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성벽 길이는 940여 m, 남북의 구릉지를 이용해 축성한 남북장축의 타원형 진성으로 해남에 남아있는 여러 성 중 가장 완벽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선조 21년(1588) 진을 세웠으며 인조 5년(1627) 만호진으로 승격하면서 성을 축성했으며, 고종 32년(1895) 폐진되기까지 300여 년간 해안 방어의 군사적 요충지였습니다.

    1597년 8월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진도 벽파진으로 이동 중 토사곽란(배앓이)으로 이진성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성내에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장군샘과 역대 수군만호의 공적비 4기가 있습니다.

    이진성은 제주도에서 말과 공물을 수송하는 포구 역할을 한 곳으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진성지의 동쪽으로는 달도와 완도가 있는데 예전에 제주도 출입통제소였습니다.

    이곳에 제주말을 싣고 오는 배들은 균형을 잡기 위해 제주돌을 싣고 와 말을 내린 후 이 마을에 내려놓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진성지 전경 사진 : 해남군 제공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마을을 출입하는 통로가 되고 있는 서문지를 집중조사해 축조방식과 옹성부,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초석의 존재를 확인했고, 성벽의 축조 방식과 성벽 외부방어시설인 치성도 확인했습니다.

    너비 3m의 서문지는 둘레 34m, 높이 5m, 너비 2.2m의 옹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출토유물은 자기류와 기와류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조선중기의 지방백자가 가장 많이 확인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활발한 성내 활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장자문위원회에서는 이진성지의 발굴조사 결과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국가사적 지정 등 체계적인 관리와 복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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