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탐·인]수묵화가 목운 오견규 화백..성찰과 비움의 회화인생 50년 돌아보다(1편)

    작성 : 2024-07-13 09:00:02 수정 : 2024-07-13 10:35:42
    20대에 공직 떠나 수묵 세계에 빠져
    아산 조방원화백 문하 입문 화업 수양
    올해 반세기 작업 성과 담은 도록 출간
    "그림도 학문의 결과..지금 와서 깨달아"
    [예·탐·인]수묵화가 목운 오견규 화백, '성찰과 비움'의 회화인생 50년(1편)

    KBC는 기획시리즈로 [예·탐·인](예술을 탐한 인생)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특집 기사는 동시대 예술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간과 삶, 세상의 이야기를 역사와 예술의 관점에서 따라갑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소통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광주광역시 화단의 원로 수묵화가 목운 오견규 화백이 자신의 화실 '일지춘실'에서 최근 펴낸 화집을 들여다보고 있다

    원로 수묵화가 목운(木雲) 오견규 화백은 "오랜 세월, 먹을 갈고 붓만 씻고 살아 온 탓에 세상살이가 서툴렀다"며 잔잔한 미소를 머금습니다.

    그러면서 "그림을 그리는 일로 평생의 즐거움을 얻었으니 나는 세상 흔치 않는 복을 누린 셈이다"고 화가로서의 만족한 인생의 길을 돌아봤습니다.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 인쇄타운 한 건물 3층에 자리한 오 화백의 화실 '일지춘실'에서 만난 그는 평소 즐기는 음악을 방안 가득 채워놓고 붓질의 유영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견규 화백이 "그림을 그리는 일로 평생의 즐거움을 얻었다"며 50년 화업인생을 되돌아보고 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가느다란 붓끝과 심지를 살려 앞에 놓인 옛 화선지에 '있음'과 '없음'을 오늘도 그려가고 있습니다.

    오 화백은 올해 화가 인생 50년을 맞이해 그동안 발자취와 성과를 집대성한 개인 화집을 발간하고 그 기념으로 지난 3월 전시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여전히 "내 그림은 반쯤 붓을 대고 반쯤 비워둔다"는 마음으로 그림의 밭을 일궈가는 오 화백의 '화업 반세기'를 돌아보며 그의 예술철학과 삶의 자세를 들어봅니다.
    ◇ 스승에게 배운 '나무의 정신' 실천
    ▲오견규 화백의 스승 아산 조방원 선생은 그에게 "삶을 토닥여주시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걸 가르쳐주신 분"이다

    - 화업 입문한 계기.

    "군복무 시절 위관급 장교로 복무하면서 사군자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그러다 전남도청에서 공직생활을 할 당시 전일화랑에서 열린 아산 조방원 선생의 개인전을 관람한 뒤 수묵에 이끌려 그림을 그리게 됐습니다. 공직을 떠나온 후 아산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입문하여 그림에 묻혀 살아 왔습니다."

    ▲광주 지역 미술계에서 선비로 통하는 오견규 화백의 화실 한 편에 후배화가 김해성 씨가 그려준 케리커쳐가 놓여있다

    - 아산 조방원은 어떤 분인지.

    "우리가 흔히 쓰는 스승이라는 표현이 선생님하고 스승님하고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선생님이 삶을 이렇게 토닥여주시고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걸 가르쳐주신 분입니다. 그림 선생이라기보다는 인생의 스승이지요."

    - 스승과의 일화를 소개한다면.

    "내가 화순의 작은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아산 선생님이 방에 들어오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아따, 넓다. 만족하고 살아라'고 하시는데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足不辱 知止不殆, 지족불욕 지지불태)는 노자의 도덕경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스승이라는 것은 나쁜 길로 못 가게 길의 방향을 이렇게 잡아주는 것이지요."

    ▲오견규 작 '매화를 심다', 수묵담채

    - 아산 선생께 배운 예술관.

    "나는 우리 선생님을 항상 큰 나무로 생각했어요. 큰 나무, 큰 당산나무 같아요. 우리 선생님한테는 권위, 명예 이런 의식이 없어요. 겨울에도 꿋꿋하게 맑게 서 있는 그런 모습, 선생님은 그런 모습이었어요. 나도 나무 같은 사람이 돼야 된다고 생각했지요. 자연에 순응하는 '나무의 정신'을 배웠거든요."

    - '나무의 정신'에 대해.

    "겨울이 되면 나무는 스스로 겨우살이를 준비합니다. 잎이 얼면 핏줄을 타고 와서 몸뚱이까지 얼거든. 그래서 잎을 떨어뜨려야 돼. 그게 나무의 정신이지요. 그게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거든. 욕심을 내지 않고 그냥 순응하며 사는 모습이거든요."
    ◇ 인생은 "눈 위에 난 기러기 발자국"
    ▲오견규 작 '신세한도', 수묵담채

    - 그림에도 '나무의 정신'을 담는지.

    "물론이지요. 내가 그림 그리면서 건방지고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해본 적이 언제였냐면 부산 한진해운에서 타워크레인에서 고공 농성하는 것을 봤을 때입니다. 내가 노동운동을 해본 적도 없지만 그런 사람들 편에 많이 서봤거든요. 집사람이 어렵게 생활하면서 하남공단에서 시급 받고 오랫동안 일을 했으니까 내가 그에 대해서 잘 알지요."

    - 노동운동에도 관심을 두고 있던데.

    "내가 담배를 끊은 것도 노동운동이 이유입니다. 아침에 화실에 나오면 음악 틀어 놓고 담배 피우거든요. 그리고 커피 한잔 끓여 마시고 합니다. 그런데 담뱃값이 그 시급보다 비싸거든요. 내가 참 어줍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담배도 끊고 가만히 누워 TV를 보고 있으니까 고공농성 노동자가 최루탄을 뒤집어 쓰고 그러는데 나는 내 그림 팔아갖고 아들 등록금 해줘야지 이런 생각을 내가 한 적이 있는데 뒤돌아보니 부끄럽더라고요. 바로 이게 그 나무 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오견규 작 '바람이 부는 날', 수묵담채

    - 호 '목운(木雲)'에 대해.

    "나무(木)의 정신이 도가 정신이거든요. 자연이지요. 운(雲)자는 불가의 정신입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 없어요. 인생은 눈 위에 기러기 발자국이나 똑같거든요. 그러니까 더 잘 살아야 된다는 얘기죠. 연연하지 않고 사는 거지요.
    결국에는 돈과 명예도 죽어 보면 다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남들이 알지 자기는 몰라요."

    - 호 '목운'을 짓게 된 배경.

    "1990년대부터 사용했습니다. 그 전에는 '돌을 어루만진다'는 의미의 ‘무석(撫石)’이었습니다. 내가 좋은 뜻을 갖고 있는 것들을 여러 개 집자했어요. 그랬더니 아산 선생님이 목운이 좋다 그러더라고요. 나도 사실은 속으로는 목운을 해주시길 바랐거든요."

    ▲오견규 작 '설월(雪月)', 수묵담채

    - 기억에 남는 전시.

    "2020년 '죽청매수'(竹淸梅瘦)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 전시에서 유일한 서예 작품인 '용슬'(容膝)을 출품했었습니다. '용슬'은 무릎을 겨우 들여놓을 만한 작은 집을 의미하는데 저의 평소 예술적 사유의 본질과 정신이 투영된 글씨입니다. 한마디로 사치스런 예술과는 거리가 멀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자연 풍경을 그리는 저의 그림을 세계를 담는 것입니다. 사람 사는 소소한 풍경을 담아낸 그림과 비우고 채우면서 가는 삶을 지향한 화업을 반영한 것입니다."

    ※ 이 기사는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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