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 오늘은 법정기념일인 제59회 법의 날입니다. 법의 날은 1963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법의 지배를 통한 세계평화대회에서 모든 국가의 법의 날 재정 권고를 결의한 바 있고, 우리나라는 지난 1964년부터 법의 날을 정해 기념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법의 날이 4월 25일이 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 당시 근대적 사법제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재판소 구성법이 제정·시행된 날이 4월 25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의도 초대석은 법 얘기 해보겠습니다.
1948년 전남 영암 출생, 지난 2014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던 문한식 변호사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앵커: 먼저 간단하게 KBC광주방송 시청자에게 인사 말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문한식: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영암 촌놈이 지금 서울에 와서 지금 변호사로서 열심히 살고 있어서 좀 출세했다는 소리 좀 듣고 있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앵커: 영암읍 장암리 출생이라고 들었는데, 10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셨다고 들었는데, 뭐 어린 시절이나 고향에 대한 기억은 어떻습니까?
▲문한식: 우리 마을이 유교적 전통이 좀 강하고, 또 그 사당이 있을 정도로 그 남평 문씨의 집성촌으로 좀 상당히 큰 규모입니다. 거기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유학 공부도 좀 하고. 격몽요결이라든가 천자문을 비롯해서 수학 같은 거 좀 조금..
△앵커: 그런 걸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문한식:
우리 마을에 서당이 따로 있습니다. 이렇게 사당 옆에 또 서당.
△앵커: 사당 옆에 서당이요?
▲문한식: 따로 설치가 돼 있어서 그래서 그런 마을에서 태어나서 조상님들로부터 그런 성현 말씀을 접하고 이렇게 초등학교로 들어갔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됐고, 제 복이 아니었던가 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중고등학교를 광주로 유학 가서 광주 서중하고 광주제일고 나오셨는데 객지 생활 힘들지 않으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문한식: 그때는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 시험이 있을 때라서 우리 선생님을 비롯한 그 많은 스승님들이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꼭 광주서중을 가라고 그래서 제가 선생님 말씀을 좀 잘 들은 편이었나 봐요. 말씀 잘 들어서 명문학교를 좀 들어갔다는 그런 자부심이, 어떻게 보면 보람을 그러니까 그렇게 공부할 수 있게끔 해 준 부모님과 사회에 항상 감사하다는 마음이 더 많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좀 공부를 좀 즐겁게 했다는 표현까지는 못해도 그렇게 뭐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안 했습니다.
△앵커: 서울대 법대를 차석으로 졸업하셨던데, 프로필 보니까 1977년에 제1회 법원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법원 공무원 생활을 몇 년 하셨는데, 이건 계기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문한식: 그 당시에 서울법대를 친한 친구가 현재 저기 대통령취임식 준비위원장인 박주선 전 국회 부의장입니다. 그 친구랑 좀 대학교 다닐 때 뜻도 좀 통하고 가치관도 좀 비슷하고 그래서 또 사람이 무엇보다도 성실근면해서 굉장히 친하게 지냈는데, 걔(박주선)는 사법고시를 1등으로 합격을 했어요, 졸업하자마자. 그런데 저는 사법고시를 여러 번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10남매 중 장남이라서 부모님과 자녀들(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서 직장생활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법원 행정고시를 봐가지고 합격해서 직장생활을 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앵커: 장남으로서 집안을 건사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거네요. 그래도 사실은 계속 준비를 해서 몇 년도죠? 84년도에 합격을 하셨는데, 20년 넘게 헌법재판 사건 국선 변호인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이거 뭐 크게 돈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오래 하셨나요?
▲문한식: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그 좋은 선생님 밑에서 더구나 또 대학교 때는 아주 그 국가에서 좋은 장학금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 국가의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에 속해서 그런 혜택을 사회에 좀 조금이라도 환원해야 되지 않겠냐 그런 생각 하에서 별로 돈 안 되는 것을 좀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 국선대리를 그 힘 없고 못 배우고 하는 그런 사회적 약자의 어떤 권리, 말하자면 입법권과 행정권력으로부터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좀 성심성의껏 해서 내가 받은 혜택을 좀 사회에 환원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조그마한 그런 성의를 가지고 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큰 보람을 느끼고 그것으로 인해서 국선대리인을 모범적으로 좀 잘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장님으로부터 모범 국선대리인상을 수상도 하는 그런 영광도 누렸습니다.
△앵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변론 말씀해 주셨는데, 국민훈장 동백장도 받은 것으로 저희가 알고 있는데, 지금 이런 일들을 쭉 수십 년간 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나 에너지 그런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문한식: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국가로부터 많은 혜택을 좀 받다 보니까 이걸 좀 환원해야 되겠다. 그러려면 제 변호사로서는 그런 약자를 위해서 변호하는 것이 이렇게 환원하는 길 아닌가 싶어서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하다 보니까, 너무 그냥 제가 자화자찬한 것 같아서 좀 쑥스럽기도 합니다, 지금.
△앵커: 박주선 대통령 취임준비위원장이 법대 동기 친하셨다고 했는데 취임식 초청장은 보내주셨나요?
▲문한식: 특별히 이번에 보냈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그 친구가 아주 의리가 아주 대단한 친구가 아닌가.
△앵커: 박주선 전 의원이 검찰에 4번 구속당했다가 4번 모두 무죄를 받아서 정치권에서는 불사조라는 별명도 있는데, 그 변론들을 변호사님이 하셨다고요? 좀 재밌는 뒷얘기 같은 거 없을까요?
▲문한식: 그 친구가 참 건전하고 진실하고 참 근면한 친구인데 억울하게 이렇게 건건이 이해관계에 반대에 선 사람들이 박주선을 물고 늘어져서 박주선이 없는 죄를 뒤집어 쓰게 됐더라고요. 그래서 친한 친구로서 그 억울함을 좀 풀어줘야 되겠다. 변호라고 하는 것이 아무리 경력이 화려하다고 하더라도 제일 중요한 것은 변론에 들인 정성이거든요. 뭐 친한 친구로서 남 못지않은 정성을 좀 들였죠.
△앵커: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웠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게 우문일지는 모르겠는데 오늘 법의 날이니만큼 법 이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법은 무엇이어야 하나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한식: 바로 이렇게 박주선같이 특수부장을 지내고 우리 김대중 대통령님의 법무비서관을 지낸 분들도 이해관계가 상충되면 상대방으로부터 모함을 받는 수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게 인간 사회이기 때문에. 그때 이제 그 법이 필요하고 그 변호사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그 법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 규범이고, 그리고 그 규범을 통해서 사회 구성원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그런 공동생활의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일수록 이렇게 법이 하나의 큰 울타리 아니냐. 그래서 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 않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울타리라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일반인들이 보기에 흔히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하잖아요. 이게 법원 문턱이 너무 높다 내지는 법이 참 그들만의 리그 아니냐 이렇게 보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이거는 뭐 어떻게 봐야 될까요, 그러면?
▲문한식: 원래 법의 역사가 기득권과의 투쟁을 통해서 프랑스혁명 미국 독립혁명, 그다음에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영국대헌장), 이래서 귀족이나 힘 있는 자로부터 약자의 권리를 확보하는 그런 투쟁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법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런 법을 많이 배웠다는 이유로 또 자기들이 많이 가졌다는 이유로 법을 악용을 하는 사례들이죠. 유전무죄가 대표적인 거죠. 그게 자꾸 너무 부각이 되다 보니까 법이 있는 자의 도구 아니냐 이런 오해를 살 수 있지만, 그래도 법이 이만큼 있기 때문에 사회가 이만큼 질서가 유지가 되고 민주화가 되어 가는 거 아닌가. 그래서 절대 힘이 약할수록 냉소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법을 지켜나가야 되는 것 아니냐. 그래서 특히 뜻 있는 법조인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지 않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저희가 시간관계상 좀 더 여쭤보고 싶은데 간단하게 마무리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문한식: 법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입니다. 여러분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 법의 날을 계기로 우리 모두 법이 지배하는 사회, 법의 이념이 정의와 공정입니다. 그런 정의와 공정의 법의 이념을 최대한 살려서 우리 모두가 좋은 사회, 억울한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 오늘 법의 날에 가슴에 와닿네요.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변호사님.
'인생 자랑스럽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
60년대 동백림 간첩단 조작사건에서부터 70년대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사건, 전두환 정권의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등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인권과 시국사건 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한승헌 변호사가 생전에 좌우명처럼 삼고 주변에도 자주 했다는 말입니다. 지난 20일 88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한 한승헌 변호사의 발인이 4월 25일 법의 날인 오늘 엄수됐습니다. 유해는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 안장돼 영면에 들었습니다.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 삼가 한승헌 변호사를 기리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금까지 서울 여의도 광역방송센터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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