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돋보기]항일의병 거점 화순 '쌍산의소'(2편)

    작성 : 2025-04-13 09:00:01
    막사터, 무기제작소, 유황굴 등 생생히
    200여 명 의병이 생활하며 군사 훈련
    헌병분견소 등 습격, 왜인 집 불 질러
    계당산 일대 의병 흔적 오롯이..그날의 함성 들려오는 듯

    ▲ 쌍산의병 최초 결의장소 임노복의 집

    양회일, 이백래 등이 주축이 되었던 ‘쌍산의소’는 1907년~1909년까지 활동한 호남창의소의 거점지역으로 화순 이양 계당산 일대에 의병성, 막사터, 무기제작소, 유황굴 등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쌍산의소 의병은 계당산에 마을주민들을 동원해 의병성을 쌓고 막사를 지어 군영을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유황굴에서 화약을 제조하고 대장간에서 철을 주조해 무기를 만들어 장기적인 항전채비를 갖췄습니다.

    심홍섭 화순군 문화재전문위원은 “쌍산의소 막사에서 200여명의 의병이 생활하며 훈련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 마을 입구에 세워진 임상영 의적비
    ◇ 무기 노획하고 일진회원 집에 불
    양회일 부대는 그해 3월 9일 능주로 진격해 군청과 헌병분견소 및 세무서를 습격해 무기를 노획하고 일본인의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또한 다음날 화순 관아와 헌병분견소를 습격해 전선을 끊고 건물을 불태웠으며 양총과 총탄을 노획하고 일진회원의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어 3월 11일 정오에 동복군청과 왜분파소(파출소)를 습격한 후 광주로 향하다 경계지점인 도마산(도마치)에서 적의 추격을 받아 대장 정세현이 죽고 양회일, 임창모, 이백래, 안찬재, 유태경, 신태환 등 6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이들은 재판을 받아 양회일, 임창모는 15년의 유배형에, 이백래, 안찬재 등은 10년의 유배형을 받아 지도에서 지내다가 1907년 12월에 순종 즉위 은사로 석방되었습니다.

    ▲ 유황을 저장했던 유황굴

    이백래는 석방된 후 쌍산의소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계속하면서 장흥, 보성, 고흥, 낙안, 강진, 완도 등지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게릴라전을 전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백래는 오랫동안의 투쟁으로 점점 쇠약해진 상태에서 군자를 보충하기 위해 보성읍 대야리 모령부락 자택에서 은거하다가 동장의 밀고로 장흥 배산 헌병대에 체포되어 1909년 5월 17일 순국했습니다.
    ◇ 역사 탐방객을 위한 둘레길 조성
    110여 년이 흐른 계당산 막사터는 돌무더기가 고스란히 남아 당시 이곳에서 항전의지를 불태웠던 의병들의 훈련모습이 활동사진처럼 스쳐갔습니다.

    그리고 전투를 떠나기 전 결의를 다진 만세바위는 금방이라도 의병이 뛰쳐나와 출전 채비를 갖출 것 같은 연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막사터를 둘러본 후 산길을 따라 의병마을로 향했습니다.

    굽이진 산길은 승용차 한대가 넉넉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잘 닦여 있으며, 탐방객을 위한 둘레길이 조성돼 있습니다.

    산길 중간쯤에 의병들이 유황을 묻어두었던 유황굴이 있습니다.

    움푹 패인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 무기를 제작했던 대장간 터

    ◇ 대장간 터와 제철 슬로그 발견
    다시 산길을 따라 내려가자 임노복이 살았던 증동 의병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는 임노복의 생가를 비롯 군량미 저장소와 철을 만들어 무기를 제작했던 대장간이 있었습니다.

    임노복 생가는 화순군에서 매입해 보수정비를 거쳐 보존하고 있습니다.

    마을 옆 산기슭에는 아직도 대장간 터와 제철 슬로그가 남아 있어 무기제작이 실제 이뤄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적을 치고 저녁에 조국의 산에 묻히는 것이 의병의 본분이다.”

    함평 출신 항일의병장 심남일 열사가 의병들에게 했던 말이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기자의 귓전에 메아리처럼 들려왔습니다.

    ▲ 순국 의병 위패를 모신 '쌍산 의병사'

    쌍산의소 봉화불
    활활활 불타고 있구나
    백년이 지난 지금도 마지막 죽음을 결의한
    만세바위 앞에서
    우리 마음까지
    엉키고 얽혀 활활활 불타고 있구나

    붓 대신 칼을 든 피 끓는 애국애족의 결사대
    그 몸짓은 천추에 남을 충혼이었기에
    아직도 일본놈 역사에 간담을 서늘케 하는구나

    단숨에 단숨에 칠백여회 싸우고 이긴 마지막
    의병
    마지막은 죽음이었네

    - 故 손광은 시인 '쌍산의소 봉화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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