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멘트 】
농협을 견제할 수 있는 산지유통조직을 만들겠다며 정부와 농수산식품유통공사, aT가 주도해만든 시군 유통회사들이 고사 위기에 처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 혈세 수백억 원은 물론, 정부만 믿고 출자한 농민들의 투자금까지 한 푼도 건지기 힘든 상황입니다.
탐사리포트, 먼저 박성호 기자의 보돕니다.
【 기자 】
화순군에서 과수원을 하는 고판주씨는 8년 전 공무원의 권유로 시군유통회사에 투자했습니다.
해마다 투자 배당금을 받을 수 있고, 정부에서 하는 사업이라 원금도 안전하다는 말에 장애인 아들 적금까지 2천만원을 털어 넣었습니다.
▶ 인터뷰 : 고판주 / 화순군 농민
- "저같은 경우는 별로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는데 자꾸 면장님이랑 집에 오셔서 권유하고 안전하다"
지난 2009년 농식품부와 aT는 농민들이 직접 유통망을 만들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시군에 유통회사 설립을 권장했습니다.
20억 규모의 지원금과 백억 대의 저리 융자금도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고 씨를 포함해 화순군에서만 4,800여명의 농민이 39억원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사업다운 사업도 못해보고 3년만에 자본금은 모두 날아갔고, 이후 5년간 소송만 이어가다 결국 지난달 파산했습니다.
화순군이 직접 투자한 26억 원의 혈세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 인터뷰 : 구충곤 / 화순군수
- "공직자들이 소액투자자들에게 무조건 투자하면 얼마든지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해서 투자하신 겁입니다."
전남의 다른 시군유통회사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흥은 80% 넘는 자본이 모두 잠식됐고, 신안은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수년 째 청산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근근이 운영되던 영광은 지난해 융자금 지원이 끝나면서 올해부터 적자를 피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습니다.//
▶ 싱크 : 영광군유통 관계자
- "(사업이) 될 것 같지 않고요. 별도로 운영을 하다가 정리하는 수순으로 갈 것 같습니다."
농민 투자없이 농협의 주도로 시작한 나주를 제외하면 전남의 모든 시군 유통회사가 실패한 겁니다.
▶ 스탠딩 : 박성호
시군 유통회사는 지난 2009년 농식품부와 aT가 농민을 위한 유통망을 만들겠다며 전국 11곳의 지자체에 설립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정부 보조금만 174억 원, 저리 융자금 지원은 2천5백억원이 넘습니다.
전남에서도 5개 시군이 141억 원의 혈세를 쏟아부었고 5천여명의 농민이 57억 원을 투자했지만 모두 날릴 처지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요? 이어서 이형길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시군유통회사는 설립 때부터 사업 성공 가능성에 물음표가 따라다녔습니다.
농협이 이미 유통망을 장악한 상황에서 비전문가인 공무원과 농민들이 만든 유통회사가 활로를 뚫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 싱크 : 농산물 유통 관계자
- "농협유통 따로 개인회사 유통 따로 가면 안 맞잖습니까. 하나로 합쳐서 해도 농산물이라는 거 자체가 힘든데."
그럼에도 농식품부와 aT는 농가에 고수익을 줄 수 있다고 홍보했고, 전라남도와 시*군은 앞다퉈 농민들의 투자를 설득했습니다.
▶ 싱크 : 시군유통회사 관계자
- "지자체에서 투자를 하고, 농민들도 투자를 하고 사실 행정에서 투자하라고 홍보를 했었어요."
사업 시작과 동시에 전국 시군유통회사의 적자폭은 늘어갔습니다.
사업초기 3년간 평균 적자가 17억원에 달했습니다.
시군유통회사가 성과를 보이지 못하자 aT는 5년간 모두 20억원을 지원해 주겠다던 약속을 어기고 지난 2012년 모든 보조금을 끊었습니다.
▶ 싱크 : 시군유통회사 관계자
- "늦게 조직한데는 3년받고 못 받은 데도 있고 정부의 약속인데 그게 나중에 지원이 안되버리니까"
관리감독도 사각지대에 놓이며 각종 횡령과 사기사건에까지 휘말리게 됐습니다.
사업 주체인 aT는 정부의 사업을 대행할 뿐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 싱크 : aT 관계자
- "저희는 정책을 수탁 받아서 위탁 수행을 하는 기관이에요. 정책적인 의사결정은 저희가 제한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군유통회사 설립 당시 농민들에게 장밋빛 청사진만을 제시했던 농식품부와 전라남도, 각 시*군도 책임을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농민들이 시군유통회사를 '투자사기'라고 부르는 이윱니다.
▶ 싱크 : 시군유통회사 관계자
- "정부 지원금을 주기로 해놓고 왜 안주냐. 농림부 국장님 모시고 사기친거 아니냐고 악담이 나오고 난리였다니까요."
▶ 스탠딩 : 이형길
잘못된 정책 하나로 농민들의 피땀 어린 소중한 투자금과 농민을 위해 쓰여야 하는 혈세까지 수백억 원을 허공에 날린 꼴이됐습니다.
kbc 이형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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