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의 모습에서 예술을 말한다...방정아:묻다, 묻다

    작성 : 2025-11-28 14:45:40 수정 : 2025-11-28 16:23:09
    퇴근 버스, 거대한 자두나무 등 일상의 풍경이 물어 온 질문
    광주시립미술관 2024 오지호미술상 수상작가전 <방정아: 묻다, 묻다>
    ▲ <아침버스를 기다리는 구로공단의 여성들>, 방정아 작품 [광주시립미술관] 

    고단한 잿빛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입김, 잔뜩 웅크린 어깨.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 작가가 새벽 시간 구로공단에서 마주한 풍경입니다.

    '지금', '여기'를 사는 개인의 작은 일상에서 한국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는 방정아 작가 개인전이 광주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24년 오지호미술상 수상작가전 <방정아:묻다, 묻다>입니다.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회화 43점을 모은 전시는 사회, 여성, 생태, 일상 네 갈래로 구성돼 그가 30여 년간 밀어붙여 온 '내 식의 리얼리즘'을 따라가게 합니다.

    먼저 사회 섹션에서는 작가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주목합니다.

    ▲ 작품에 대해 설명 중인 방정아 작가 

    특히 신작 <묻다, 묻다>는 '방정아 리얼리즘'이 집약된 작업입니다.

    해방기 이념 대립 속에서 살아가는 오지호 선생이 그 시절의 기억을 땅에 묻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예술가는 어떻게 시대와 마주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오지호 선생의 경험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바라보고, 방정아가 천착해 온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과 실존이라는 주제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두 번째, 여성 섹션은 예술가이자 보통의 여성으로 살아온 작가의 경험을 동시대 여성들의 보편적 서사로 확장합니다.

    멍든 몸을 감추려 문 닫기 직전 목욕탕을 찾은 여성과 그 옆에서 욕조 청소에 열심인 세신사의 모습을 담은 <급한 목욕>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우리 사회의 무감각이 드러납니다.

    <튼 살>, <수월관음도> 등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숨 쉬고 있는 구체적 주체인 여성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세 번째, 생태 섹션에선 급속한 도시화와 무분별한 개발, 기후 위기로 파괴되는 자연 환경과 생명을 다룹니다.

    ▲ <삼보살>, 2012, 방정아 [광주시립미술관] 

    주한미군의 생화학실험, 핵발전 등 환경 이슈뿐만 아니라 죽은 고양이를 추모하는 <흩어지고 있었어>와 우리에게 '고기'로 대표되는 소, 닭 돼지를 보살로 호명하는 <삼보살> 등.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해체하며 연결된 생태계의 본질을 시각화하기도 합니다.

    특히 위트와 냉소, 위로가 어우러진 일상의 단편을 담은 일상 섹션은 방정아 서사 회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 <헐, Oh my god>, 2018, 방정아 [광주시립미술관] 

    배낭에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꽂고 집회에 나가는 여성의 모습을 담은 <헐, Oh my god>엔 작가의 유머와 냉소가 섞여 있습니다.

    작업실 마당에 있는 국화 화단을 보며 그린 <아직 죽지 않았어>에 대해 방 작가는 "완전히 말라 틀어진 국화가 겨울을 나고 봄이 되니까 그 밑에서 싹이 나더라. 국화가 다년생인 걸 까먹고 있었다"며 "스스로에게도 위로의 말처럼 전하려고 제목을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2024년 오지호미술상 본상 수상자인 방 작가의 예술 세계를 조망하고, 오지호미술상이 지향하는 예술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오지호미술상 심사위원회는 방 작가가 형상미술의 문맥을 지키면서도 기후변화, 젠더 문제 등 동시대 핵심 이슈를 다루며 회화의 독자성을 제시해 온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습니다.
     
    <방정아:묻다, 묻다>는 2026년 1월 18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본관 5, 6 전시관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24년 오지호미술상 수상작가전 <방정아:묻다, 묻다>에 전시돼 있는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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