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탐·인]수묵 인물화가 김호석 화백(下)

    작성 : 2023-03-30 14:30:10 수정 : 2023-04-27 09:57:24
    “이강선생의 대(大) 자유인·선각자 정신 부각”
    작품에 되살아난 반유신 ‘함성지사건’ 재해석
    ‘광주정신’은 화가로서 예술적 표현의 출발점
    KBC는 기획시리즈로 [예·탐·인](예술을 탐한 인생)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특집기사는 동시대 예술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간과 삶, 세상의 이야기를 역사와 예술의 관점에서 따라 갑니다. 평생 예술을 탐닉하며 살아온 그들의 눈과 입, 손짓과 발짓으로 표현된 작품세계를 통해 세상과 인생을 들여다보는 창문을 열어드리게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소통을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 김호석 화백은 “평등과 평화가 깨지면 이를 수립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물이 타는 곳’이 광주 아니냐”며 “무등은 평등의 또 다른 이름이다”고 작품에 담겨진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그리지 않고 그린 그림’이 담은 의미

    김 화백은 그동안 수많은 명사들의 초상화를 그렸었는데 이번 ‘이강 초상화’는 많이 다릅니다. 대표작 ‘너는 알지 못한다’는 얼굴에 있는 오른 눈, 코, 입 등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지워 버렸습니다. 그려야 완성되는 그림 작업을 하면서 아예 그리지 않고 그림을 완성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이강 선생은 외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두 개로 보았을 때 보다 훨씬 감각이 섬세하게 살아 있습니다. 부족함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점유한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 아닌가? 결핍도 그의 것이며 사랑의 대상입니다.”

    ▲사진 설명 (좌측)너는 알지 못한다, 143x74cm,종이에 채색, 2021년. (중간)내가 너다, 143x74cm, 종이에 수묵, 2020년. (우측)나는 본다, 143x74cm,종이에 수묵, 2021년.


    반면에 작품 ‘내가 너다’는 얼굴을 온전히 그려 놓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화백은 “내가 바로 너인 경지, 그것이 자아를 완성하고 난 뒤 세상에 나가서 비로소 내가 남이 되는 경지가 아닌가?”라고 반문합니다.

    또 오른 눈만 그린 작품도 있습니다. 작품 ‘나는 본다’는 왼쪽 눈 실명으로 오른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이강 선생이 그러나 정확하게는 ‘보이지 않는 왼눈으로 세상을 보는 그의 혜안’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를 전해줍니다. 보이지 않은 눈으로 세상을 관조하며 남의 아픔을 껴안고 살려는 그의 모습에서 일종의 인간적 신뢰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작품 ‘광주가 진빚’, ‘자유인’은 뒷모습을 잡았는데 가장 현실의 이강 선생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강이라는 인물의 현재의 모습과 익숙한 특징, 포인트를 잡아 편안하고 친숙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작가의 격렬한 세파를 건너온 이 시대의 한 인물에 대한 작가의 통찰력과 사유가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강 선생은 은둔이 가장 적극적인 현실 참여의 한 양상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난 시절 광주는 이강을 이리 저리 필요에 따라 재단했고 그를 활용했습니다. 그에게는 자기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혁명하겠다고 나선 투사가 자기를 다스려야 할 시간을 놓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시간 또한 귀중한 사회참여의 공간이었다고 봅니다. 민중들의 멍에가 결국 이강을 대(大) 자유인으로 거듭 태어나게 했다고 봅니다.”

    ▲ 작품 ‘함성’은 이강 선생이 고 김남주 시인과 함께 반유신 반독재 투쟁을 했던 ‘함성지 사건’과 전남매일 기자들이 5·18 당시의 발표문을 그림 속에 되살려내 그 의미를 부각하고 있습니다. 김호석 작 ‘함성’(76x53cm)x2


    ◇작품으로 되살아난 반유신 ‘함성지사건’

    작품 ’함성‘은 김남주와의 반유신 활동과 5·18 당시 지방신문의 언론활동을 직설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 내용 글은 이강 선생이 당시의 원본의 기억을 되살려 그린 것입니다.

    그 왼편에 1980년 5월 20일 전남매일 신문사 기자들이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서 붓을 놓는다.”는 발표문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함성’은 주지하듯이 중요한 역사의 획을 그은 사건입니다. 언론의 통제에 집단 반발을 통해 저항하는 것 또한 역사를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언론인의 모습입니다. 김 화백은 “그게 바로 광주 정신이다”고 강조합니다.

    평등과 평화가 깨지면 이를 수립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물이 타는 곳’이 광주 아니냐며 “무등은 평등의 또 다른 이름이다”고 작품에 담겨진 의미를 말해줍니다.

    눈과 입만 보이는 작품 ‘화해‘는 작품 속에서나마 DJ와 화해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반목과 질시 그리고 대결은 결국 화해로 풀어 나아가야 하는 것으로 극단의 상충이 조화를 통해 상생하는 것이야 말로 지연의 이치인 점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사진 설명 (좌측)‘화해’,168x130cm, 종이에 수묵, 2022년. (중간)‘비단 주머니’,78x70cm, 종이에 수묵, 2020년. (우측)액풀이,143x74cm, 종이에 수묵, 2022년


    ◇선각자 이강의 ‘작은 것이 갖는 큰 의미’

    ‘비단주머니’, ‘대나무’, ‘액풀이’ 등의 작품은 이강 선생을 상징하는 소재로 작품화하였습니다. 특히 ‘개구리 서커스’는 얼 보면 다른 작품들과 달리 제목부터 가볍다는 느낌이 듭니다.

    작품 ‘개구리 서커스’를 통해 김 화백은 이강 선생을 ‘지금 사회발전을 위한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해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이강은 선각자였다고 평가합니다. 큰 것이 큰 의미를 갖는 건 의미가 적지만 작은 것이 갖는 의미는 크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때론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김 화백은 올봄 광주에서 대규모 개인 전시회를 갖는 것에 대해 “광주 민주화 운동은 분명 세계적 사건이고, 나는 이것이 새로운 시대에 조응하고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내 예술적 표현이 이런 논의의 출발이 되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다음은 김호석 화백이 작품 ‘무등산 진돗개’에 대한 작가 설명입니다.

    ▲김호석 작 ‘무등산진돗개'

    “무등산의 무등(無等)은 평등(平等)조차 넘어선 말이다.
    민주주의조차 무등 앞에서는 겸손하다.
    이런 무등산에 호피(虎皮) 진돗개가 산다.
    무등산 진돗개니 누구를 보든 반갑게 꼬리친다.
    앞발을 땅에 짚고 어깨를 누르며 엉덩이를 치켜 올린다.
    꼬리는 서석대처럼 곧게 서서 봄바람처럼 움직인다.
    무등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며,
    생명을 차별하지 않으며, 그래서 사랑이다.
    무등산 진돗개는 무등을 잠시 내려놓을 때가 있는데,
    바르지 못한 자는 들이받고, 옳지 못한 자를 문다.
    그래서 무등산 진돗개는 오늘도 무등하다.“

    □ 한국화가 김호석은 누구?

    △1957년 7월1일 전북 정읍출생
    △홍익대 동양화과,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 박사 졸업
    △2000년 제3회 광주 비엔날레 미술기자상
    △199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작가상
    △1980년 제3회 중앙미술대전 특선
    △19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 교수 역임
    △인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뉴 델리 뱅갈루루)
    △석재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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