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우크라이나 유학생 출신 발레리나 마리아 씨

    작성 : 2024-10-17 14:27:08 수정 : 2024-10-18 09:46:25
    “고국 떠나온 이주민 열린 마음으로 바라봐주길”
    10살 때 세계적인 발레리나 꿈 안고 ‘나홀로’ 유학
    12년간 이국 땅에서 힘든 삶 견디며 대학원까지 졸업
    현지로부터 전쟁 참상 전해 들을 때 안타까운 마음
    [남·별·이]우크라이나 유학생 출신 발레리나 마리아 씨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인터뷰 중인 마리아 씨 [KBC]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영하 30도의 매서운 추위 속에 집주인에게 쫓겨나 거리를 떠돈 적도 있고,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가격이 싼 마트를 찾아 먼 곳까지 걸어가야 했지요. 때로는 동양인을 혐오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일명 스키너)들의 표적이 되어 죽을 뻔한 적도 있어요.”

    10살 때 세계적인 발레리나를 꿈꾸며 우크라이나로 유학 가,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12년간 이국 땅에서 힘든 시기를 견뎌낸 발레리나 마리아 씨.
    ◇한국으로 돌아온 지 10여 년이 흘러
    그녀는 고국 땅 한국으로 돌아온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따금 우크라이나의 몽환 속에 빠져든다고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립키예브발레학교 수업장면 [마리아]

    또한 현재 러시아와 3년째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현지 지인들로부터 전쟁의 참상을 전해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떨칠 수 없습니다.

    크림반도 작은 도시에 사는 친구가 있는데 매일 포격소리를 들으며 생활한다고 합니다. 이제는 익숙해서 폭격에도 아랑곳 않고 아이들 우유 먹여 재우고 다음날 학교에 보내고, 또 부서진 도로와 시설을 복구하는 생활을 반복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 전쟁에 동원된 남자 동기가 죽거나 여자 동기는 남편을 잃은 경우도 있다고 슬픈 현실을 전했습니다.
    ◇ 보이스예프만 발레단 공연에 감동
    그녀가 어린 나이에 낯선 우크라이나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습니다.

    2001년 5월 광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우크라이나발레단(당시 러시아 보이스예프만 발레단)의 내한공연을 보고 감동한 나머지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는 비전을 갖게 된 것입니다.

    ▲국립키예브발레학교 재학시절 발레공연 장면 [마리아]

    그녀가 부모님께 자신의 포부를 말하자 딸의 재능을 알아본 부모님 역시 흔쾌히 받아들여 우크라이나로의 유학이 순식간에 진행됐습니다.

    여권과 비자발급 등 모든 절차를 2주 만에 마치고 우크라이나 발레단과 함께 부모님을 따라서 우크라이나행 비행기에 오른 것입니다.

    당시 부모님은 광주광역시 시내에서 대형 입시학원을 운영 중이었는데 이를 맡겨두고 1년간 우크라이나에서 마리아 씨를 돌보며 머물렀습니다.
    ◇ 오디션 통과하기 위해 몸무게 10㎏ 감량
    마리아씨는 우크라이나 국립키예브발레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먼저 오디션을 거쳐야 했습니다.

    오디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몸무게를 10㎏ 감량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인근 올림픽 경기장을 10바퀴씩 돌며 기필코 해내겠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다행스럽게 오디션에 합격했고 본격적인 발레수업을 받았습니다. 대학 과정까지 포함된 이 학교를 만 18세에 졸업하고 아티스트 자격증과 함께 유럽지역 교사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통복장을 입고 춤추는 장면 [마리아]

    졸업을 앞둔 2008년 그녀는 세계적인 발레리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행을 타진했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 마이애미발레단으로부터 섭외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무렵 모기지론 사태에 의한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해 백지화되고 말았습니다.

    미국행이 무산되자 그녀는 국립 키예브예술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예술감독 전공)과정을 마쳤습니다.
    ◇ 엘레나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아
    12년 동안 우크라이나에서 생활하면서 외롭고 힘든 나날이었지만 때때로 봄날처럼 따뜻하고 화사한 추억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를 지도해준 엘레나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예전에는 체계적인 교수법이 있는 게 아니고 어깨 너머로 배우는 식이었어요. 엘레나 선생님으로부터 손끝 동작과 호흡의 중요성을 배웠지요.”라고 회상했습니다.

    ▲유연하고 날렵한 발레동작 장면 [마리아]

    마리아씨는 10여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창작발레를 전문으로 하는 서울발레씨어터에서 활동하다가 부모님이 계시는 광주로 내려와 광주시립발레단 객원무용수를 거쳐 현재 광산구에서 수완무용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씨는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구사할 줄 알아 고려인 자녀 등 다문화배경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월곡동 고려인마을과 가까운 대반초등학교는 전교생 300명 가운데 190명이 다문화배경 학생들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월곡동에 들어온 이주민들 수가 더욱 늘었다고 합니다.
    ◇ 다문화배경 학생들의 무용 지도
    마리아 씨는 지난해 대반초등학교에서 다문화배경 학생들의 무용을 지도한 바 있습니다.

    또한 올해 9월에 개최된 제20회 무등무용콩클 전국대회에서 그녀가 지도한 ‘춤의 모든 것’ 팀이 러시아 전통민요 ‘칼린카’ 공연으로 민속무용 부문 초등부 단체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칼린카’ 공연은 광산구 청소년문화의집 야호센터의 ‘야(호에서)놀자 학교’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리아 씨의 열정적인 지도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리아 씨는 “앞으로 이주민 아이들을 위해 제가 필요한 곳에서 쓰임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이해하고 이주민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바라봐주길 바란다”고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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