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故 문병란 시인과 편지 우정, 박석준 시인(1편)

    작성 : 2024-06-01 08:00:01
    박석준 시인의 출판기념회 계기 첫 인연
    보름에 한번 꼴..지상 문학 담론 펼쳐
    박 시인 "문병란 시인은 나의 문학 스승"
    [남·별·이]故 문병란 시인과 편지 우정, 박석준 시인(1편)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 2년 6개월간 100여통 손편지 왕래..KBC에 첫 공개
    ▲문병란 시인이 생전에 보낸 손편지를 펼쳐 보이며 설명하는 박석준 시인

    시 '직녀에게', '무등산' 등으로 대중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안겨준 故 문병란 시인(1935~2015).

    문병란 시인이 작고하기 직전까지 한 시인과 2년 6개월간 100여통의 손편지를 주고 받은 사실이 공개돼 두 시인의 사연이 뒤늦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사연의 주인공은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인 66살 박석준 시인입니다.

    ▲병란 시인이 박석준 시인에게 보낸 편지들

    2018년 교직에서 명예퇴직한 그는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문학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박 시인은 최근 자신이 보관해온 문병란 시인의 손편지 60여 통을 KBC에 공개하며 각별한 펜팔 우정을 맺었던 고인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 축사 약속한 친구 불참, 문병란 시인이 대리 축사
    문병란 시인과의 첫 만남은 2013년 2월 26일 박석준 시인의 첫 시집 '카페, 가난한 비'(푸른사상刊) 출판기념회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박 시인의 가족과 동료 문인들이 축하하는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이어 식이 시작되고 축사 순서가 되었는데, 정작 축사를 해주기로 한 친구가 사정상 참석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박 시인의 형(故 박석률 씨)이 부랴부랴 문병란 시인에게 부탁해 대리 축사를 하게 됐습니다.

    시집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새도 없이 얼떨결에 단상에 오른 문병란 시인은 서정시임에도 참여시로 간주해 축사를 했습니다.

    박 시인이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라는 생각에 통일과 민족운동에 관한 시라고 평했던 것입니다.

    집에 돌아온 문병란 시인은 박 시인의 시집을 읽어보곤 엉뚱한 내용으로 축사를 한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인 2월 27일 박 시인에게 사과의 마음이 담긴 장문의 손편지를 보냈습니다.

    ▲문병란 시인이 2013년 2월 27일 처음으로 보낸 편지 첫 장

    "저는 이 시집을 읽지도 않고 있다가 어제 신안동 낯선 건물 2층 소강당에서 받은 친필 서명이 적힌 시집 '카페, 가난한 비' 시집을 읽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 시집을 읽지도 않고 축사(박석률 동지의 전화부탁을 받고 쉽게 생각하고 승낙한 일)했던 것을 후회하고 매우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시집을 펼쳐놓고 시를 감상하다가 함부로 쉽게 읽고 쉽게 언급할 전혀 그런 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 2013.02.27. 문병란 시인이 박석준 시인에게 보낸 첫 편지 中
    ◇ 숨지기 한 달 전, 2015년 8월 12일까지 서신 교류
    이렇게 시작된 편지 왕래는 2013년 2월 27일부터 타계 한 달 전인 2015년 8월 12일까지 2년 6개월 동안 102통이 건네졌습니다.

    102통 가운데 61통은 문병란 시인이 보낸 것이며, 41통은 박석준 시인의 답장이었습니다.

    박 시인의 편지가 문병란 시인에 비해 20통이나 적은 것은 학교생활에 바쁜 데다 시 한 편씩을 써서 보내야 했기에 답장을 제때 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무려 23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2년 6개월간 서신 왕래가 이어진 것은 시(詩)라는 절대적인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문병란 시인은 편지를 통해 일상 소식은 물론 세상사에 대한 세평(世評), 문단 이야기, 시론(詩論), 박 시인의 시 강평(講評) 등을 볼펜으로 꼭꼭 눌러써서 전했습니다.

    "어떤 유파는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고 정의하고 '낯설게 하기'를 새로운 시적 암유로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알아먹는 시, 메시지가 있는 시가 좋아서 이상(李箱. 1910~1937)이나 초현실주의 시는 극복되어야지 계승해서는 안된다고 그들이 조롱했던 돼지같은 대중을 의식하는 시를 씁니다."

    - 2013.07.24. 편지 中
    ◇ 처음에는 서정시..추후 참여시로
    문병란 시인은 박 시인이 써서 보낸 시를 꼼꼼이 살펴보고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며 스승처럼 지도해주었습니다.

    "최신작 '비와 돈과 길', 윤동주 시인의 일제말기 자아연민과 자아증오가 교차하는 그 자의식의 반추처럼 속화된 돈세상 맘모니즘의 검은 물결 속에서 더불어 흥청거리지 못하는 석준 시인의 고뇌가 찔끔거리는 7월의 우기와 버무러져 그런대로 맛갈나는 서정의 진미가 특석요리만큼이나 새콤한 모더니티가 있습니다."

    - 2015.07.21. 편지 中

    박석준 시인은 "문병란 선생님은 편지를 통해 나의 문학의 길을 안내해주신 분이다. 늘 역사인식을 가지고 시를 쓰라고 당부하셨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정시를 썼으나 선생님의 영향으로 참여시를 쓰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박석준 #문병란 #손편지 #전교조 #해직교사 #광주 #남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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