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극세종과학기지(이하 세종기지)가 있는 남극은 한국과 계절이 반대다. 그리고 한국처럼 4계절로 나뉘지 않고, 보통 11월부터 3월까지는 여름, 나머지 계절은 겨울로 부른다.
2014년 내가 처음 월동을 할 당시에는 한겨울인 6월에서 9월 사이에도 간혹 날씨가 좋은 날에는 칠레에서 군용비행기가 들어오곤 했지만, 이제 이곳은 빨라도 11월은 되어야 비행기가 들어온다. 그것도 정기 노선이 아닌 군용비행기만 가끔 있을 뿐, 민간 여객기는 12월부터 2월까지만 전세기 형태로 한 달에 2~3편이 운항된다. 그 말은 남극의 겨울철엔 위급한 환자가 발생해도 외부 세계로 출입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10월이 끝나가는 시기는 대원들이 희망을 느낄 수 있는 때다. 혹시라도 건강에 위급한 상황이 생길 경우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1만7,240km나 떨어진 한국의 가족에게 큰일이 생기면, 한국으로 돌아갈 방법을 고려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열여덟 명의 대원은 이런 남극의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이제 여름맞이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 강원, 대구, 부산, 전남,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월동대원들은 설과 추석에는 함께 모여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만들고, 명절 음식을 나눠 먹으며 명절을 보낸다.
명절 당일에는 기지 대장이 차례상에 술잔을 올리고 대원들이 함께 절을 드린다. 한가위 차례상이라고 해도 한국에서처럼 제철 과일과 신선한 생선, 푸짐한 나물을 올릴 수는 없다. 10월이 되면 모든 남극 기지의 식재료가 대부분 바닥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끼고 아낀 과일 한두 가지와 냉동 재료로 만든 생선과 육고기를 올리고, 기지에서는 귀한 간식인 초콜릿도 함께 올려 나름 정성을 다해 차례상을 차린다.
이번 추석 다음 날은 한국에 있는 아들의 열두 번째 생일이었다. 나는 귀여운 동물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보여주려 세종기지 근처에 있는 펭귄마을로 향했다. 세종기지에서 직선으로 2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171번째 남극특별보호구역(ASPA 171)'이 있다. 이곳에는 젠투펭귄과 턱끈펭귄 5천 쌍이 둥지를 틀고 집단 서식한다. 우리는 이곳을 '펭귄마을'이라고 부른다.

펭귄들은 매년 10월쯤 이곳으로 돌아와 짝짓기를 하고 둥지를 튼다. 그리고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산란을 하면 12월경 아기 펭귄들이 알에서 부화한다. 이후 3월쯤 이곳을 떠나 더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보내다가, 다시 10월이면 이곳으로 무리지어 돌아온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펭귄마을에는 젠투펭귄 1천여 마리가 이미 돌아와 한창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 펭귄뿐만 아니라 언덕 너머로 보이는 맥스웰만(Maxwell Bay)에는 혹등고래 무리가 바다 위로 물줄기를 뿜어 올리고 있었고, 펭귄을 주요 먹이원으로 삼는 킹조지섬의 가장 큰 조류인 남방큰풀마갈매기도 여러 마리가 활기차게 펭귄마을 상공을 날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제 남극에 여름이 온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제 기지 주변에서는 각종 해표와 물개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기지 앞 부두까지 찾아오는 펭귄을 보는 날도 많아졌다.

그리고 10월의 세종기지 풍경에는 또 하나의 큰 변화가 있었다. 남위 62도에 위치한 세종기지는 극지 저압대에 놓여 있어 발달한 저기압이 지나가는 통로다. 그 말은 일주일 내내 흐리고 눈보라가 치는 날이 연중 계속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겨울철 세종기지의 하늘은 한 달 중 하루이틀을 빼곤 항상 잿빛이었다.
그런데 10월이 되자 점점 푸른 하늘을 보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세종기지에서 3km 정도 떨어진 마리안소만 빙하도 잿빛 하늘과 눈보라가 치는 날엔 잘 보이지 않았지만, 10월이 되자 푸른 하늘과 함께 하얗게 빛나는 빙하를 볼 수 있는 날이 많아졌다.

세종기지가 있는 남극 킹조지섬에는 현재 8개 나라가 상설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지들은 대부분 11월에서 3월 사이 월동대원들이 교체된다. 세종기지 대장(제38차 김원준)은 킹조지섬의 유일한 활주로를 관리하는 칠레 공군기지 대원들과 러시아 기지 대원들을 우리 기지로 초청해 '우정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러시아 기지 대원들은 지난 여름 기간 몇 차례 기지를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칠레 공군기지 대원들은 모두 세종기지가 처음이라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칠레 대원들에게 기지 곳곳을 소개하며 한국을 알렸고, 음식을 나눠 먹은 후 체육관에 모여 다양한 교류 활동을 했다.

이곳의 대원들은 모두 한류의 영향을 받은 듯 한국의 아이돌 음악과 드라마, 영화를 줄줄 외며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또한 한식 중에서도 매운 음식에 큰 관심을 보이는 대원들이 많아 '매운 라면 빨리 먹기 시합'을 열었다. 칠레와 러시아 대원들은 매운 음식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모두 즐겁게 참여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명절에 빠질 수 없는 한국 전통놀이인 제기차기를 소개하며 함께했고, 풋살 국가대항전을 통해 남미의 축구 실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11월이면 칠레로 돌아간다는 대원들과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집에 돌아갈 날이 가까워진 칠레 대원들은 모두 아쉬우면서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나는 그들이 우리보다 한 달여 먼저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남극을 떠나기까지 50여 일이 남은 우리는 모두 저마다 월동 마무리로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나는 한국의 가족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어머니가 폐암 말기로 치료받고 계셨는데, 한국에 올 때까지 말하지 말라고 하셨었는데… 알려야 할 것 같아서요. 이번 달에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셨어요."
작년 11월 말, 내가 남극으로 떠난 뒤 갑작스레 폐암 진단을 받고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던 어머니는 이번 달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셨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섬망 증세를 보이는 등 건강이 악화돼 '의료진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는 연락이었다.
순간 세상의 시계바늘이 모두 멈춘 듯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려면 아직 50여 일이 남아 있었다. 아직 칠레로 가는 항공편이 없어, 아무리 서둘러도 한 달 뒤에나 도착할 수 있다. 홀어머니가 오래 버티지 못하실 수도 있다는 통보에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무거운 마음으로 다음 날 간부회의 시간에 대장님께 말씀드렸다. 모두 무거운 표정이었지만, 걱정 어린 말로 위로해 줄 뿐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평소처럼 일과를 이어갔다. 연구반장인 나는 연구원들의 시료 반출 목록을 챙기고 내 담당 연구 분야의 마무리를 해나갔다.
다른 대원들에게는 알리지 않으려 했지만, 나를 걱정하신 대장님이 말씀하신 건지 이미 모두가 소식을 알고 있었다. 특별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걱정이 전해졌다. 그래도 나는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묵묵히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언제 갑자기 비보가 날아들지 모르지만, 그것에 휘둘리면 이곳에서의 하루가 무너질 것 같아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평범하게 내 일을 이어가고 있다.
외아들인 내가 홀어머니의 임종을 곁에서 지키지 못한다면, 상주 역할은 열두 살짜리 내 아들이 해야 한다. 지금이 남극에서 두 번째 월동인 나는 그동안 이 기회를 영광으로 여기며 살아왔지만, 오늘만큼은 세상과 단절된 남극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어머니께서 힘드시겠지만 부디 조금만 더 버텨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한국에서 1만7,240km 떨어진 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 38차 월동대원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

글쓴이 : 오영식(남극세종과학기지 제38차 월동연구대 연구반장) / 오영식 작가의 여행 내용은 블로그와(blog.naver.com/james8250) 유튜브(오씨튜브OCtube https://www.youtube.com/@octube2022) 등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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