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멘트 】
5·18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아, KBC는 5·18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목소리'를 찾아가는 기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80년 5월 시위 현장에 투입됐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은 경찰관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조윤정 기잡니다.
【 기자 】
지난 세월이 묻어나는 빛바랜 사진과 표창장.
고(故) 정충길 경사의 아들 원영씨가 43년 동안 품어온 아버지의 흔적입니다.
퇴직을 앞둔 선배 대신 함평에서 광주로 향했던 아버지는 저지선을 세우고 대기하다 시민군이 몰던 버스에 치여 동료 3명과 함께 숨졌습니다.
▶ 인터뷰 : 정원영 / 고 정충길 경사 아들
- "(이불에) 머리를 박고 한참을 울었는데 어머니가 실려오시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어요. (한 달 뒤) 상자로 화장해서 영결식에서 봤어요. 저는 안아보지도 못했어요. "
모두가 피해자였던 그날의 비극.
시민군은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늘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 인터뷰 : 정원영 / 고 정충길 경사 아들
- "영결식 당일 너무 날이 좋았어요. 그런데 순간 진짜 비바람이 불고 갑자기 그랬어요. 사람들이 얼마나 억울하면 날이 이럴까. 왜 우리의 죽음은 누구도 이야기해 주지 않지, 왜 우리는 가해자가 아닌데 가해자라고 하지.."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야 했던 건, 이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사고를 당했던 이명남 씨는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몸과 마음은 갈기갈기 찢겼습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던 시절, 이 씨는 결국 30대 후반의 나이에 경찰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인터뷰 : 이명남 / 당시 함평경찰서 소속 순경
- "내가 차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이런 꿈, 환상 속에서 (잠을 거의 못 잤어요) 그게 바로 트라우마인가 싶네요. 지금도 우측 신경마비가 안 풀렸어요. 이렇게 안 오므려지잖아요."
죽어가는 동료들을 지켜봐야 했던 다른 경찰들 역시 죄책감 속에 갇힌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 인터뷰 : 김범조 / 당시 영광경찰서 소속 무전병
- "무전을 하고 인원 보고도 사망자 보고도 내가 했어요.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죽었을 건데, 바로 옆에 금방까지 같이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었는데.."
현재까지 파악된 5·18관련 경찰 피해자는 모두 162명.
5·18진상조사위원회 출범 이후 경찰 피해자에 대한 조사가 본격 시작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멉니다.
▶ 인터뷰 : 이명남 / 당시 함평경찰서 소속 순경
- "군인들 때문에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은 시위 질서 회복을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몸이 다쳤는데 아무런 대책도 전혀 없어요. 다친 사람들 죽은 사람들 다 피해자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좀 조명이 됐으면.."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시민군과 그들 앞에 마주 선 경찰관, 이들 모두 남도의 청년이었습니다.
▶ 인터뷰 : 정원영 / 고 정충길 경사 아들
- "5ㆍ18 때 희생됐던 시민들에 비하면, 그걸 전제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알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아픔도 있다는 걸 이제는 우리 사회가 조금은 알고 껴안을 수 있는.."
KBC 조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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