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주기]"살아남아야 하는 세상이 아닌 그냥 살아가는 세상이 되길"
작성 : 2024-04-17 07:00:01
수정 : 2024-04-17 17:17:51
4월의 제주를 하염없이 걷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얗게 흐드러진 벚꽃과 샛노란 유채꽃으로 물든 제주의 봄을 누구보다 있는 힘껏, 사력을 다해, 온 몸으로 기록한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10년 전, 나의 아이가 도착하지 못한 그곳을, 보고, 듣고, 걷고, 또 찾는다고 했습니다.
낭랑 18세.
웃음기 배인 나의 아이의 얼굴이 담긴 단원고등학교 학생증을 목에 걸고, 나의 아이가 차마 도착하지 못한 그곳에서, 나의 아이와 함께 보고, 듣고, 또 한 번 걸음을 더하고 있습니다.
▲박은영 / 세월호 제주기억관 10주기 준비위원
"세월호가 아이들 수학여행길에 제주를, 인천을 출발해서 제주를 오는 배였죠. 그 배가 최종적으로는 도착을 못했고요. 근데 너무 안타깝게도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아이들 수학여행 코스를 아이들 학생증을 목에 걸고 다 돌아보시고 제주를 굉장히 자주 오시는 부모님들도 많으십니다"
10년이 넘도록 제주도를 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입도를 제한한 사람도,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내딛기가 힘이 들어서, 속이 문드러져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래서 그런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대신 나의 아이가 쓰던 물건, 나의 아이의 사진, 나의 아이를 생각하며 만든 튼튼한 배 모형과 노란 리본.
나의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1학년 수련회 때 찍은 사진들.
나의 아이가 쓰던, 나의 아이가 흔적이 담긴, 나의 아이의 것들.
차마 나의 아이가 도착하지 못한 그곳에 발걸음을 더할 수가 없어서, 나의 나이의 내음이 밴 기록들을 보냈습니다.
▲박은영 / 세월호 제주기억관 10주기 준비위원
"아이들이 얼마나 들뜨고 설레서 출발을 했겠어요. 근데 결국 도착을 하지 못했죠. 부모님들 중에서도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너무 미안해서, 아이들이 도착하지 못한 제주에, 또 제주가 너무 지긋지긋해서 제주라는 말만 들어도 너무 지긋지긋해서, 제주를 못 오시는 부모님들이 많으세요. 그렇게 아이들이 도착하지 못한 제주가 부모님들한테는 굉장히 특별한 곳이고.."
안산도, 진도도,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도 아닌 바로 제주에 기억관이 자리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벌써 10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이들은 어느새 20대 후반의 청년이 됐을 올해.
제주기억관을 찾는 이들도 보다 많아졌습니다.
▲박은영 / 세월호 제주기억관 10주기 준비위원
"부모님 뿐만이 아니고 생존 학생도 오고, 또 근래 들어서는 올해 28살, 28살이 된 친구들이 와요. 세월호랑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친구들이 옵니다. 찾아와서 굉장히 많이 울어요. 그래서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그때 조금 해요"
공간이 주는 힘은 비단 이뿐만이 아닙니다.
세월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기록의 힘'을 실어 줬습니다.
▲김은혜 / 세월호 제주기억관 10주기 준비위원
"국가가 구조를 하지 못한 거잖아요. 세월호 참사 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참사들도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월호 참사와 다른 참사들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국가는 또 계속 구조를 방기할 것이고, 저는 같은 일이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해서 기억의 중요성을 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제주기억관에는 세월호 참사로 숨진 단원고 학생들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 유가족들이 나의 아이를 생각하며 만든 노란 리본과 팔찌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생일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잊지 않기 위한 기록들도 벽면 한쪽에 가득합니다.
▲박은영 / 세월호 제주기억관 10주기 준비위원
"아이들 제삿날이 우리 아이들이 (바다에서) 나온 날이 되던 날이잖아요. 아이들이 언제 죽었는지를 아무도 알 수가 없죠. 부모님들이 제일 고통스러운 시간이 4월 16일부터 아이들이 나온 그 순간까지 얼마나 배 안에서 무서운 곳에서 버티고 있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게 너무 힘들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더 생일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있던 공간에서 쫓기듯 나와 새롭게 터를 잡은 이곳.
불편하고 어려운 시선들을 견디면서 만난 '20년 무상임대'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과 온기가 가득한 공간에서, 기억하고 기록하며 세월호가 남긴 숙제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김은혜 / 세월호 제주기억관 10주기 준비위원
"자전거 순례단이라고. 저희가 작년 9주기 때는 안산에서 제주까지 이제 수학여행 코스를 따라가면서 수학여행을 했었는데. 이제 '기억을 해보자'해서 이번에 10주기 때는 제주에서 안산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이름으로 자전거 순례를 하고 있어요"
수학여행을 떠났지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의 마음을 싣고 '함께' 떠나는 여정입니다.
매 주기마다 반복하고 있지만, 몇 번을 이야기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이야기.
"기억은 힘이 세지"
▲박은영 / 세월호 제주기억관 10주기 준비위원
"정말 요원해질까봐 걱정이에요. 10년을 기점으로 사람들이 이제 할 만큼 했다. 세월호 지긋지긋하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외면당할까봐 걱정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공간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고. 그 나이를 살아가는 친구들도 너무 마음이 아파요. (기억관 방문객 중) 이 친구가 너무 많이 울어서 '혹시 동갑, 또래세요?'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동갑이에요'라고 대답을 하는데. 이 친구가 그러면서 '10년이 지났는데도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다'고 울음을 터뜨리더라고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친구들이 좀 더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건강하게. 좀 덜 미안해하고"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더해봅니다.
▲김은혜 / 세월호 제주기억관 10주기 준비위원
"그때 당시의 기억은 없을지 몰라도 그래도 앞으로 계속 살아갈 세상이잖아요. 우리가, 청소년들이 살아갈 세상인데 안전해야 되지 않을까. 살아남아야 되는 게 아니라 그냥 당연하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기 때문에 그 당사자인 우리가 더 세월호를 기억하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억하고 있다는 마음, 잊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
대단하지 않아도, 거대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 가방에 매단 노란 리본 하나,
내 왼쪽 손목을 감싸는 노란 팔찌 하나,
내 휴대폰 위 노란 스티커 하나.
그저 '하나'면 충분합니다.
(기획 : KBC디지털뉴스팀 / 구성·취재 : 정의진·전준상 / 제작 : 전준상 / 내레이션 : 정의진 / 출처 : 사단법인 복지인광장, 세월호 제주기억관, 유튜브 '도로시트래블', 제주평화나비, JIBS제주방송, 여행 인플루언서 소랑라파, 시청자 이정수·박준배님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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