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경찰복 벗고 농부로' 윤예주 시인..15년 동안 토종야생화 가꿔(1편)

    작성 : 2025-06-21 11:00:01
    정년 퇴임 후 전남 화순 이양에 정착
    야생화예술촌 조성 290여 종 재배
    전남도 정원콘테스트에서 우수상 수상
    [남·별·이]'경찰복 벗고 농부로' 윤예주 시인..15년 동안 토종야생화 가꿔(1편)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야생화 묘종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윤예주 씨

    6월 눈부신 햇살 아래 남도의 들녘이 초록 물결로 넘실거립니다.

    애독자로부터 '아름다운 야생화 정원'을 소개를 받아 찾아가는 길.

    싱그러운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처럼 마냥 마음이 설렙니다.

    29번 국도를 타고 전남 화순읍을 지나 20분가량 차를 달리다가 이양면 소재지 부근에서 마을로 진입합니다.

    전남 화순군 이양면 청영동길 36-16 야생화예술촌.

    ▲야생화예술촌 전경

    이곳에는 경찰공무원으로 정년퇴직 후 농촌에 정착해 야생화를 가꾸며 시를 쓰는 윤예주 시인이 살고 있습니다.

    훤칠한 키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 개량 한복 차림의 70대 중반 노(老) 시인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그냥 소박한 시골집 정원인데 뭐 볼 것 있다고 여기까지 왔소".

    예사 전라도 인사말 끝에 정겨움이 묻어납니다.
    ◇전남 광양에서 출생 11남매 중 9번째
    마당 정원에는 갖가지 야생화들이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를 따라 서재 겸 응접실로 들어가니 벽면에는 시화가 걸려 있고, 서가에는 시집과 문예지, 문학 서적들이 가득 꽂혀 있습니다.

    차 한잔을 앞에 두고 그가 주마등처럼 흘러간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전남 광양에서 11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난 그는 완고한 아버지와 많은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베풀기를 좋아해 친지와 이웃이 도움을 청하면 어김없이 돈을 빌려주곤 해 집안에 차용증서가 수두룩했습니다.

    그 덕에 6·25 때 인민재판에 끌려갔어도 유일하게 살아남아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아기자기한 야생화 꽃길
    ◇광양농고 졸업 후 1973년 경찰에 입문
    광양농고를 졸업한 그는 군 복무를 마친 후 1973년 10월 경찰에 입문했습니다.

    순천경찰서에 첫 발령을 받은 후 광주·전남 각지를 전전하며 근무했으며 기획능력을 인정받아 전라남도경찰국(현재 전남경찰청)에서만 18년을 재직했습니다.

    특히 전남경찰청에 근무할 당시 상무관에서 1개월간 방범(보안)장비전시회를 전국 처음으로 개최해 전국 방송에 소개되는 등 특별한 족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또한 1998년 IMF때는 IMF한파를 이기는 길이란 근검절약의 책자를 만들어 전국 공공기관 및 사회단체에 무료로 보내 큰 호응을 얻은 것이 언론에 보도되는 등 업무와 관련된 책자 6권을 발행, 귀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년이 다가오자 그는 유년 시절 농촌에서의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며 전원생활을 하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고향인 광양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으나 자녀들의 의견에 따라 광주 근교를 둘러보다 이양 품평리 소재 논밭 400평을 구입해 터를 잡았습니다.

    ▲야생화예술촌 간판

    ▲야생화예술촌 우수상 인증패
    ◇ 이양 품평리 소재 논밭 400평 구입
    그리고 퇴임 1년을 남겨두고 살림집을 짓고 야생화 정원을 조성했습니다.

    야생화에 마음이 끌린 것은 천성적으로 유순한 심성에다가 광양농고 임학과 출신으로 원예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내 또한 꽃을 좋아하고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어 서로 공감대가 잘 맞았습니다.

    "처음에는 여느 시골 농가처럼 텃밭을 일구었지요. 그러다가 야생화에 관심을 가지고 15년간 하나, 둘 키우다 보니 지금은 100평 넘는 정원이 만들어졌어요".

    그는 주로 우리나라 토종야생화를 키우는데 전국에서 가장 많은 290여 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바람꽃에서부터 깽깽이풀꽃, 노루귀, 복수초, 참으아리꽃, 큰꽃으아리 등 이름만 들어도 정겹고 예쁜 꽃들.

    그는 최근 구복규 화순군수의 요청으로 회원 35명인 화순야생화협회를 창립해 2년간 회장으로서 야생화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또한, 2021년 제2회 전남도 예쁜정원콘테스트에서 우수상을 차지하면서 일약 전국에 소개되어 '야생화 스타'가 되었습니다.

    "언론보도가 나가자 주말에 정원을 구경하고자 전국에서 몰려든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35가구가 사는 동네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 설명하고 안내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포토존에서 바라본 야생화 정원
    ◇토종야생화 널리 알리는 데 큰 보람
    그는 돈 욕심보다는 민족의 정서가 담긴 우리 토종야생화를 널리 알리는 데 더 큰 보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혹 그만이 간직한 야생화 재배기술을 SNS에 올렸다가 다른 동업자로부터 '영업비밀을 공개하면 어떻게 하냐'고 원성을 듣기도 한다며 속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올봄에도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들어 기대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렸다며 지금은 내년에 판매할 우리 꽃들을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야생화는 우리 민족성을 닮은 것 같아요. 비바람에도 꿋꿋이 버티고, 한겨울 눈 속에도 꽃을 피우지요. 해가 뜨면 꽃 문을 열고, 오후 3시면 어김없이 꽃 문을 닫기 시작해요. 아침에는 대문을 열어 놓고 저녁이 되면 대문을 닫는 것도 야생화에서 배운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이지요."

    36년간 정든 경찰복을 벗고 '야생화 정원'을 가꾸는 그의 인생 2막이 한 편의 시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많이 본 기사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