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멘트 】
신군부 독재를 끝내고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 낸 6월 민주항쟁이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는 물론, 민주주의의 큰 물줄기를 이룬 6월 항쟁은 80년 5*18 정신을 밑거름으로, 촛불 탄핵을 통해 꽃을 피웠습니다. 정지용 기잡니다.
【 기자 】
박종철 군의 고문 치사가 폭로되고,
직격 최루탄에 이한열 군이 희생되면서
87년 6월 항쟁의 불길은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호헌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 등 민주주의화를
갈망하는 시민과 대학생들은 길거리로 나와
하나가 됐고,
결국 독재정권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 인터뷰 : 조오섭 / 광주시의원(87년 시위 참가)
-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싸워서 승리를 가져오게 된거죠."
6월 민주항쟁은 80년 5*18 광주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광주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신군부의 총칼에 맞서 싸웠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은폐되고 단절돼 있던 5*18의 진실이
빠르게 퍼지면서 시민들은 분개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 인터뷰 : 김희송 / 전남대 연구교수
- "80년 5월 광주의 경험이 87년 6월 항쟁이 성공으로 갈 수 있었던 하나의 디딤돌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은 30년이 흘러 촛불 혁명과
대통령 탄핵으로 우리 눈 앞에 재현됐습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시민 주권을 외면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시민들은 다시 한번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하나가 됐습니다.
6월 항쟁 이후 시민들의 민주의식은
더 성숙해졌고, 주권자로서 자기 인식도
한층 확고해졌습니다.
▶ 인터뷰 : 조선호 / 광전남 6*10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
- "(촛불탄핵을 통해) 민주주의가 확고하게 자리잡았다고 보거든요. 그것의 기반, 여건을 조성해 준 게 87년 6월 항쟁이죠."
6월 항쟁 30년을 맞은 지금,
왜곡된 정치제도는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고,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촛불 혁명과 탄핵을 거쳐 새정부 탄생까지
6.10항쟁 30년과 이른바 87년 체제 30년.
이제 한 단계 더 성숙된 새로운 체제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열망과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kbc정지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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