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탐·인]민중미술가 허달용, '겸손해진' 민중미술의 색다른 화면 탐색(1편)

    작성 : 2024-07-29 12:00:02
    최신작 '고백-와글와글' 주제 개인전
    8월 4일 광주 양림미술관
    조선시대 이옥의 시 개구리울음 영감
    모멘토 모리(moneto mori) 조형화
    [예·탐·인]민중미술가 허달용, '겸손해진' 민중미술의 색다른 화면 탐색(1편)

    KBC는 기획시리즈로 [예·탐·인](예술을 탐한 인생)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특집 기사는 동시대 예술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간과 삶, 세상의 이야기를 역사와 예술의 관점에서 따라갑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소통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 생활 속 변화로 눈길 돌린 민중미술가
    ▲수묵화가 허달용 작가가 다음달 4일까지 광주 양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사진은 화실에서 작업 중인 허 작가 모습

    수묵화가 허달용 작가는 광주 지역 미술계에서 외유내강형의 실천하는 예술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허 작가는 전업 화가이지만 화실에 앉아 그림만 그리지 않고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손짓하고 발걸음을 움직여왔습니다.

    이 시대의 부조리한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며 '행동하는 미술운동'을 앞장서서 펼쳐온 인물입니다.

    ▲허달용 작가가 주변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 '와글와글'의 소품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허 작가는 전국민족미술인협회,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광주민족예술인단체연합회 등 진보예술단체에 반세기 가까이 몸담아 온 대표적인 '민중미술작가'입니다.

    이러한 허 작가의 예술가로서, 사회운동가로서 행적이 보여주는 선입견과 달리 그가 펼쳐놓은 그림 속 세상은 담담하고 평온한 인상을 줍니다.

    허 작가가 상상하고 지향한 세상을 그렸으면서도 여느 민중미술가처럼 사실적 화면의 직설적 화법을 내뱉는 그림과는 다른 느낌과 이미지를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허달용 작가가 양림미술관 지하 전시실 벽면을 가득 채운 주변 인물들의 초상화 소품 연작 '와글와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격렬하고 치열하고 거칠어야 제격일 것 같은 민중미술가에게서 보는 예상 밖의 반전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시대를 관통하여 증언한 대작 '산이 된 바보 노무현'과 같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 때에도 '화가 허달용'의 깊고 넓고 높은 관점에 대중의 공감을 얻은 것입니다.

    ▲이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새로운 민중미술운동의 돌파구를 모색 중인 허달용 작가의 작업실 화구들

    허 작가는 다음달 4일까지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미술관에서 '고백-와글와글'을 주제로 개인전을 갖습니다.

    올해로 붓을 잡아 살아온 화가로서 '반세기 화업'에 대한 소회와 중진작가로서 나아갈 생각들을 찬찬히 들어봅니다.
    ◇ 인물·동물·나무 등 소재로 현실 비판
    ▲허달용 작 '묘정(猫情)', 한지에 수묵, 2024

    - 최근 작업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더 겸손하게'로 좁혀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도 더 겸손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며,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그런 의지를 작품 속에 담고자 하였습니다."

    - 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지난 2020년 가진 개인전 <묘정(猫情)>에서부터 변화가 있었습니다. 생활 속의 반려묘에 시선이 닿아 작은 고양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비로소 알게 된 다양한 표정과 이미지를 화면에 차곡차곡 담아냈었습니다. 그림 속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곧 바로 화가 자신의 시선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민중미술가라고 하여 직설적 표현으로 선동적으로 하였던 예술운동과는 다른 차원의 생각을 화면에 풀어 변화를 시도한 것입니다."

    ▲허달용 작 '모멘토 모리', 100X100cm, 한지에 채색, 아크릴, 2024

    - 이번 전시회 메시지도 '겸손'인지.

    "그렇습니다. 이번 전시회 출품작을 통해 민중미술작가란 선입견의 부담을 털어내려 했다고 봐야지요.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를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 하였습니다. 부드러운 수묵화의 성향에 어울리게 유연하고 합리적인 민중미술운동으로 시대를 증언하여 온 것처럼 '겸손하자'는 것입니다."

    - 그래서 '모멘토 모리'를 그린 건지.

    "맞습니다. 조형적인 문자 그림 '모멘토 모리(moneto mori)'로 그 해법을 찾아가려고 하였습니다. 다 아시는 것처럼 모멘토 모리는 '인간은 언제가 죽는다. 그러므로 오늘을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다 지치고 방황할 때 어떻게 살아야할지, 또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모를 때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해 생각하라는 라틴어입니다. 한마디로 '한 번 뿐인 인생 겸손하게 살아가라'라는 뜻이지요."
    ◇ 조선시대 시인 이옥의 시구 '와글와글' 인용
    ▲허달용 작 '슬픈 예수', 한지에 수묵, 2024

    - 이번 전시 주제 '고백-와글와글'에 대해.

    "이것은 조선시대의 폐쇄적 관습과 사회풍조에 대해 비판적 어조의 시를 읊었던 시인 이옥(李鈺)의 시구에 나오는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빗대어 '와글와글'을 이미지화 한 것입니다. '고백'은 조용하게 참된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인 반면 '와글와글'은 온갖 것들이 난무하고 어지럽고 시끄러우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나 소리들을 표현한 의성어입니다. 서로 상반된 의미와 이미지를 대입하여 '겸손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주려 했습니다."

    - 전시 작품 주요 소재는.

    "이번 전시회에 끌어낸 소재는 인물과 동물, 식물(나무)그리고 상형문자 등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인물을 다룬 대표작품은 '가시관을 쓴 예수'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예수가 가시관을 머리에 두르고 피를 흘리며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측면의 모습입니다. 농담의 대비를 강조하여 앞과 뒤가 다른, 극과 극의 세상에서 인생의 고통스런 과정을 생각하게 합니다."

    ▲허달용 작 '홍범도의 피눈물', 한지에 수묵, 2024

    - 역사 인물을 다룬 작품은.

    "홍범도 장군 초상은 얼굴 표정만 사실감 있게 부각하고 나머지는 단순화하였습니다. 홍 장군의 살아 있는 듯한 얼굴표정을 통해 최근 흉상 철거 논란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그려 우회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 긴 족자형 인물 그림에 대해.

    "긴 족자형 인물그림은 위 아래로 화면을 나눠 서 있는 인물의 형상이 하단에 그림자로 드러나도록 그린 작품입니다. 이 작품 속의 인물은 반듯하게 서 있는 모습이지만 그 아래 그림자로 나타나는 인물의 형체는 언 듯 보면 동물의 형상으로 나타난 풍자적 그림인데 수묵의 번짐 효과로 이미지를 키웠습니다."

    ▲양림미술관에 전시된 허달용 작 '너는 누구길래'(62X185cm, 한지에 수묵, 2024)와 '나무'(122X185, 한지에 아크릴, 2024)

    - 고양이를 작품 소재로 쓴 이유가 있다면.

    "고양이는 있는 그대로의 고양이가 아닙니다. 검은 색과 하얀 색이 어우러진 색감의 대조로 '와글와글'한 느낌을 강조하여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음과 양의 배경도 있고 밝고 어두운 명암도 드러나 있습니다. 고양이의 형체가 멀리서 보면 검고 하얀 것만 있고 가까이서 봐야 고양이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조형적으로 비구상의 느낌을 화면에 구현하는 측면도 있고요. 고양이를 돌보며 관찰했던 시선을 조형적으로 풀어낸 것입니다."

    - '말' 그림이 아주 섬세하던데.

    "대부분 먹으로 그린 수묵화이지만 '말'을 그린 그림은 일부 아크릴 물감을 써 봤습니다. 하얀 말의 앞모습을 그리면서 서양화에서 쓰는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여 화이트 톤을 극대화하려 하였습니다. 특히 말의 휘날리는 갈기와 목덜미의 털을 세필로 그려 역동하는 백마의 기운을 드러내려한 겁니다. 두상만 부각한 다른 말 그림은 전체적으로 먹을 강하게 써서 어둡게 하고 눈물을 흘리는 듯한 말의 말 없는 표정을 사실감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허달용 작 '흰 말', 한지에 수묵, 아크릴, 2024(왼쪽). '표범', 한지에 수묵, 2024.(오른쪽)

    - 그밖의 동물 작품은.

    "'표범'은 화면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는 듯한 구도를 잡았습니다. 몸체의 뒷부분을 과감히 생략하여 생동감을 높였습니다. '까마귀' 그림 역시 고목 위에 앉은 새의 형체를 진한 먹으로 칠하고 나무에 지탱하는 발톱을 세밀하게 그려 사실적 표현을 강조했습니다."

    ※이 기사는 2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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