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고전 다이제스트]'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절체절명의 위기에 어떤 가르침을 찾아야 할까요?"

    작성 : 2024-07-19 20:00:02
    ▲김원수 법사의 '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1' [바른법연구원]

    [新고전 다이제스트]'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절체절명의 위기에 어떤 가르침을 찾아야 할까요?"

    오늘은 <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 1, 2, 3> 10번째 순서입니다.

    세상에는 종교, 각종 명상법, 자기계발, 심리상담, 자아실현방법 등 무수히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고민에서 가정과 직장에서 부딪히는 절체절명의 위기까지 이를 해소하고 극복하려는 많은 이들이 자신을 구해줄 스승과 가르침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은 사람이 남을 인도하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이들이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가르치고 안내하는 웃지 못할 풍경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목격합니다.

    이들에게 현혹돼서 시간만 낭비하고 고통의 나락에 빠진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위기에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가르침일까요?

    우리는 어떤 가르침을 받아야 할까요?

    올바른 가르침은 어떤 가르침일까요?

    오늘 순서에서는 이 정법(正法)에 대한 선지식의 법문을 들어보겠습니다.
    △ 정법(正法)의 특징
    오늘 정법(正法)과 사법(邪法)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것을 잘 알고 공부하는 것은 모르고 공부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살신성인의 가르침

    우선 이기심을 부추기는 가르침, 자기만 잘되게 하는 가르침이라면 정법이 아닙니다.

    반대로 나를 죽이는 가르침, 살신성인하는 특징이 있는 가르침은 정법에 가깝습니다.

    믿는 사람을 자꾸 바라게 하고, 탐내게 하고, 자기만 잘되길 바라게 하는 가르침은 정법이 아니고 사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끼리끼리 패거리를 지으면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게 부추기고 우리끼리만 단결하자는 가르침이 있다면 이 또한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자기의 가르침이 최고라고 하면서 다른 가르침을 무시하고, 자기의 가르침이 잘났다고 하면서 오만하게 만드는 가르침.

    대부분 자기의 가르침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수가 많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가르침은 정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 삿된 법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정법의 첫 번째 특색이라 말씀드립니다.

    - 부동심(不動心)이 되는 가르침

    올바른 가르침은 움직이지 않는 마음, 즉 부동심(不動心)을 키웁니다.

    반대로 정법이 아닌 가르침은 사람의 생각을 끊임없이 움직이게끔 합니다.

    마음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왜 악(惡)일까?

    부동심(不動心)을 갖게 하는 것이 어째서 선(善)일까?

    소위 올바른 수행법은 부동심(不動心)이 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지켜본다, 사마타, 숨 쉬는 것을 관한다, 집중한다'는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합니다.

    이러한 마음 연습은 부동심(不動心)이 되게 합니다.

    부동심(不動心)이 되게 하는 것이 정법(正法)입니다.

    반면 '끊임없이 상상한다, 어서 하겠다고 설친다' 이것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겁니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가르침은 대개 정법이 아니고 사법(邪法)에 가깝습니다.

    - 편안함과 환희심이 지혜와 능력으로 연결되는 가르침

    또 정법(正法)은 마음이 편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기도, 불교의 참선, 염불도 좋습니다.

    그 수행을 계속하며 마음이 편안해져야 합니다.

    그것을 행할 때 마음이 불편해지면 이것은 벌써 정법(正法)과는 거리가 멉니다.

    현실에서 재앙을 소멸하여야 합니다.

    그 가르침을 행했을 때 병이 들거나 재앙이 생기거나 마음이 불편해지는 가르침이면 거의 정법(正法)이 아니라고 해도 틀림없습니다.

    그 가르침을 행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환희심이 나야 합니다.

    가난이 변해서 풍요가 되고, 질병이 변해서 건강이 되고, 또 무지(無智)가 변해서 지혜가 나와야 합니다.

    갈수록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이 되어서는 정법(正法)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법(正法) 수행을 하면 무능한 사람이 능력자로 변해야 합니다.

    세상과 등지고 조용히 앉아서 무능한 사람이 된다면 정법(正法)이 아니라고 말씀드립니다.


    - 마음속에서 모든 것을 다 찾게 하는 가르침

    우리의 가르침에서만 일러 주는 것입니다.

    마음 밖에서 찾는 가르침은 정법(正法)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부귀영화를 지향하는 가르침, 이 가르침을 행했더니 돈이 잘 벌리고 출세한다는 가르침과 같이 가치를 마음 밖에서 찾는 것은 정법(正法)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 속에 영원한 것이 있고 참 지혜가 있으니, 마음 속에서 모든 것을 다 찾으라는 가르침이 있다면 정법(正法)입니다.

    - 정해져 있지 않은 가르침

    마음속에서 찾으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만, 정해져 있지 않은 것 또한 특징입니다.

    틀이 있어서는 정법(正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르침은 정형화하여 어떤 틀을 만들려고 합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신축성과 탄력성이 있으며, 정해지지 않은 것이 정법(正法)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사법(邪法)은 대개 정해져 있고 계율도 고정되어 있습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고 획일적인 것이 사법(邪法)입니다.

    - 도인이 시킨 일은 모두 정법(正法)

    지금까지 정법(正法)의 기준을 대략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정법(正法)의 특징 또 한 가지를 꼭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기준에 맞지 않아도 도인이 가르치신다면 이것은 정법(正法)입니다.

    ※ <재앙을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들 1> 김원수 지음(바른법연구원)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많이 본 기사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