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조 칼럼]“세상과 나는 맞지 않았다”

    작성 : 2023-04-11 14:42:30 수정 : 2023-04-11 15:04:15
    ▲김옥조 KBC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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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취재 차 원로 도예가를 찾아 갔습니다. 내내 화창하던 날씨가 흐릿한 날이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공방의 문을 들어섰을 때 그는 물레에 올라 앉아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예술가는 작품창작에 몰두해 있을 때가 가장 예술가다워 보입니다. 곧바로 다가가서 인사를 나눌 수도 있었지만 잠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내가 인기척을 내면 하던 작업을 멈출 것이기 때문입니다. 멀찍이 서서 기다리며 그의 작업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작가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몇 날 몇 일 동안 작품을 구상하는데 정신을 쏟습니다. 마침내 작업에 들어가면 시작에서 끝까지 한 호흡으로 마무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작가의 호흡은 작품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도예가 선생이 작업이 끊어지지 않도록 기다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것이 예술가를 대하는 예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잠시 후 그 분은 나를 보고 반갑게 웃으며 손짓을 해 줍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가까이 가자 “조그만 더 기다리라”고 눈짓을 합니다.

    작은 소반을 만드는 듯했는데 마저 끝내고자 한 것 같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 분의 물레 돌리는 모습은 한결 같습니다.

    그가 만드는 그릇과 항아리처럼 여유롭고 차분하며 모든 것을 비워내는 성자와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서둘러 작업을 마친 그는 “너무 오랜만이다”며 손을 꼭 잡아줍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귓속 깊이 박히는 말을 합니다.

    “이제 나이가 드니까 이 일도 힘에 겨워, 좋아서 해 온 작업이지만 요새는 나도 늙었다는 걸 실감한다니까. 이 작업을 얼마나 계속할는지 모르겠어….”

    그의 말에 쓸쓸함이 묻어납니다. 오래 동안 장인정신으로 외길 인생을 살아온 그였지만 세월을 비껴갈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가업을 받아 무려 9대를 이어온 전통 장인의 말 속에서 여러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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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물(器物)의 탄생은 인류문명의 시작이나 다름없습니다. 자연 속에서 문명의 불씨를 일으킨 인류사회의 성장·발전과정에서 토기는 당대를 증언하는 중요한 문화적 산물이 돼 있습니다.

    원시 수렵 생활에서 정착 사회로 전환하는 시기에 토기는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바로 인류 문명의 의미있는 진화를 보여주는 역사의 궤적이 다양한 토기를 통해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때문에 토기는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지닌 문명의 이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지금 흔히 말하는 도자기는 그래서 그 값어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유물이자 예술이요, 과학의 결정체로 사랑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토기로 만든 용기의 사용은 인류가 일정한 장소에 정착하여 농경사회로 진입하였음을 뜻합니다.

    특히 자연물을 채취하여 살았던 수렵시대보다 월등한 문명과 경제의 개념이 싹 튼 단서가 되는 것입니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식생활의 급격한 변화를 이끈 바로 그 중심에 흙으로 빚은 그릇과 같은 기물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지요.

    애초에 그릇의 용도는 무언가를 담아 놓고 사용하거나 저장하는 생활용기였음이 분명합니다. 농경문화는 잉여 농산물을 보관하고 저장하는 데 쓸 물건, 즉 용기의 사용을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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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시작된 토기의 발명은 인류문명의 발전을 가속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의 진보도 채찍질했습니다.

    토기는 자연 그대로의 흙과 물, 불에 인간의 창조적 의지가 함께 버무려진 결과물입니다. 사실 인간이 이뤄낸 과학기술의 결정적 진화단계는 무엇보다 불(火)을 다루는 능력의 향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흙을 빚어 만든 토기에 불이 더해짐으로 하여 영원한 생명력을 불어넣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류 문명사 뒤안길에서 찾아보는 위대한 발견이자 창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생활 용기로써 옹기는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 그 자체입니다. 질 좋은 흙과 선인들의 지혜가 질긴 생명을 같이해 온 대표적 자연·정신문화 자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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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는 옹기 빚을 좋은 흙이 많고, 불 땔 나무가 무성할 뿐만 아니라 창의성과 기술력 뛰어난 장인들이 넘쳐났습니다.

    물론 농경문화의 발달로 민초들의 옹기 수요도 충분했던 점은 전라도 옹기의 면면한 맥을 이어 오게 한 배경일 것입니다.

    너른 농토와 산, 바다에서 나는 풍부한 물산은 사계절의 기후와 만나 절묘한 남도의 발효음식문화를 잉태시켰고 그것을 지키고 만들어 가는 그릇이 옹기였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전라도 옹기는 숱한 장인과 도공의 손을 거치며 뛰어난 미감과 실용성을 담보한 창작의 성과로 전수되었습니다.

    청자나 분청사기 못지않게 다가오는 옹기의 조형적 아름다움은 전라산야에서 느끼는 멋과 감흥을 쏙 빼닮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변화 속도는 너무나 빠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전통 지킴이’를 자처하지만 더 편리하고 더 강하고 더 값싼 것을 이길 수 가 없습니다.

    우리가 전통으로 지켜온 도자기가 실생활에서 밀려나고 장식적 가치도 건축기술의 발전으로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통을 이어온 장인의 명맥을 어떻게 이어 가야할까요?

    선뜻 무어라 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통이 좋은 것이란 판에 박힌 말만으로는 지키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원로 도예가 선생의 말이 귓전을 때립니다. “나는 세상과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전통을 보존·유지하는 것은 전통을 이어온 자만의 몫이 아닐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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