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농사꾼 시인' 박진희 "자연의 품에 안기니 시가 풀풀 샘솟네요"

    작성 : 2024-08-28 09:44:31
    졸업 후 국내 대기업 통신회사에 취업
    서울올림픽 전후 미국서 1년간 생활
    전남 영광 백수 정착..11년째 전원생활
    "인생이 녹아든 농익은 시, 쓰고 싶어"
    [남·별·이]'농사꾼 시인' 박진희 "자연의 품에 안기니 시가 풀풀 샘솟네요"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전남 영광 불갑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박진희 시인

    "농촌에 들어와 살면서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시를 쓰기로 했죠. 시를 쓰면서부터 뭔가 할 일이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활기차고 즐겁습니다."

    광주광역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 후 전남 영광군 백수읍에 정착해 11년째 전원생활을 하는 박진희 시인.

    박 시인은 귀농해서 포도 농사를 짓다가 힘이 벅차 농사일을 줄이고 수년 전부터 시(詩)를 짓고 있습니다.
    ◇ 고등학생 때 문학과 멀어져
    초등학교 때 시에 소질이 있다는 칭찬을 들은 터라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경제적인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일절 문학을 멀리했습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박진희 시인

    학교 졸업 후에는 국내 대기업에 취업해 통신기계설비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내 전화 교환방식이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게 되자 연수차 미국에 파견됐습니다.

    그리고 워싱턴DC에 있는 MCI라는 회사에서 1년간 머물며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 회사에 복귀했습니다.

    박 시인은 "미국에 있는 동안 영어가 짧아 식당에서 주문을 잘못해 웃지 못할 해프닝을 많이 경험했다"며 "한국에 돌아오니 살 것 같았다"고 회상했습니다.

    10년간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회사를 옮긴 후 전남대병원을 끝으로 퇴직한 박 시인은 평소 로망이었던 농사일을 경험하고 싶어 영광에 터를 잡았습니다.

    ▲벌레가 갉아 떨어트린 나뭇잎을 들고 설명하는 박진희 시인

    그는 "원래 광주 근교인 담양이나 나주를 물색하고 있었으나 때마침 영광 백수읍에 마음에 드는 농가주택이 나와 결정했다"며 "농촌에 살아보니 자연을 쉽게 접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습니다.
    ◇ 숲해설사·문화해설사 활동
    그가 숲과 나무 등 자연에 관심이 많은 것은 숲해설사로서 10년 넘게 활동하면서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때 문화해설사도 했지만 지금은 후진들에게 물려주고 오로지 시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정형택 시인(전 전남문인협회장)과 박덕은 시인(전 전남대 교수)으로부터 각각 주 1회 시를 배우고 있습니다.

    ▲문학 스승인 정형택 시인(오른쪽)과 함께

    그 중 정형택 시인은 영광 불갑사 앞에 살고 있어 종종 만나 문학을 비롯 많은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편입니다.

    불갑사 입구 커피숍에서 가진 인터뷰 자리에도 함께해 박 시인의 품성과 시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정형택 시인은 "박 시인은 성품 그 자체가 시다. 순수하고 맑다"고 따뜻한 격려의 말을 전했습니다.
    ◇ '문학공간'에 시, '문학춘추'에 수필 당선
    이에 박 시인은 "정형택 선생님으로부터 시 창작이론보다는 인생 경험을 더 많이 듣는데, 그게 시를 쓰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화답했습니다.

    박 시인은 '문학공간'에 시, '문학춘추'에 수필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첫 시집 '나른한 정원'(도서출판 한림刊)을 출간했습니다.

    시의 소재는 꽃과 풀, 나무 등 주로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 영광 백수 전원생활에서의 유유자적한 삶을 노래했습니다.

    ▲첫 시집 '나른한 정원' 표지

    여기에다 칠산바다, 백수해안도로 등 영광의 명소를 아울러 모두 74편의 시를 엮었습니다.

    또한 한문 투의 단어보다는 정감 어린 순우리말을 시어로 즐겨 사용합니다.

    칠산바다 새벽노을 마실 나왔나
    생가슴 태워 꽃바다 된 불갑산
    꽃 입술에 묻은 수줍음 한 잎
    산굽이 너머 임 향 지운
    그 임 오시려나
    ..
    그늘 비낀 한 줌 햇살 모아
    서럽게 피는 꽃 한 송이
    화르르화르르 속 타는 불갑사
    일주문 밖 서성이다 지친 꽃무릇
    오늘도 고개 쭈욱 빼고 서 있다.

    - 박진희 '상사화'
    ◇ "시는 함축미가 있어서 좋다"
    "첫 시집을 상재하면서 설레임보다는 미완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생각 때문에 두려움이 앞섰다"고 말한 박 시인은 "어리숭한 농사꾼의 밭을 보여주는 기분"이라고 겸손함을 드러냈습니다.

    시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시인은 "수필과 달리 함축미가 있어서 좋다"며, "앞으로 인생이 녹아든 농익은 시를 쓰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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