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들어가자마자 철창 속 임시 우리에 갇힌 십여 마리의 대형견들이 쉴 새 없이 짖습니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복도와 문 손잡이까지 곳곳에 임시로 묶여 있는 개들은 연신 코를 들썩이며 낯선 사람들의 냄새를 맡고, 창가에는 고양이 여러 마리가 함께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무실 문을 열자 대형견 서너 마리가 사람보다 먼저 달려 나와 경계하고, 컴퓨터 책상 아래에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듯한 새끼 강아지들이 사람들의 발밑을 오갑니다.
근무자들은 하루 종일 새로운 동물들을 맞느라 쉴 틈도 없이 분주한 모습입니다.
이 곳은 광주광역시의 유일한 동물보호소입니다.
-포화상태의 동물보호소..부족한 공간에 사무실까지 내어줘
농림축산검역본부가 2022년에 발표한 '2021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동물보호소 269곳에서 구조한 유기 동물은 11만 8,273마리로 5년 전과 비교해 약 31.8% 늘었습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유기동물에 광주동물보호소 역시 포화 상태를 넘어 수용할 수 있는 마릿수를 훨씬 초과했습니다.
동물보호단체 사단법인 위드의 시설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는 광주동물보호소는 전국 광역시 보호소 중 가장 적은 인력인 12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수용 가능한 동물은 250마리지만, 현재 개·강아지 240여 마리, 고양이 230여 마리, 특수 동물까지 포함해 총 500여 마리의 동물을 보호 중입니다.
동물들을 더 이상 수용할 공간이 없어 직원들의 업무 공간까지 내어준 상황입니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다가오는 대형견 '거니'는 임신한 채로 구조된 어미에게 태어나 3년째 사무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양이를 돌보는 공간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로 직원들의 책상 위부터 발밑까지 고양이들이 차지했습니다.
유기된 동물로 착각해 구조된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도 빈번합니다.
어미 고양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홀로 남겨진 새끼 고양이를 어미 잃은 고양이로 오해하고 신고해 하루에 20마리까지 들어오기도 합니다.
고양이 관리를 담당하는 이가영 씨는 "새끼 고양이들은 하루 이틀 지켜봐야 하지만 그걸 모르시는 분들이 대다수여서 무작정 신고를 해서 매일 들어온다"며 "이렇게 들어오는 새끼 고양이들은 어미의 보살핌을 받지 못 해 대부분 한 달을 못 버티고 죽게 된다" 토로했습니다.
-"칼락사 피했지만 5년째 가족이 나타나지 않아요"
"눈꽃이 사진을 보고 얼마 전 죽은 반려견이 생각나서 입양하러 왔어요"
광주동물보호소를 찾은 박효명 씨는 설레는 얼굴로 작은 믹스견, 눈꽃이를 안아 들었습니다.
평소 이곳으로 봉사를 다니는 박 씨는 이미 두 번이나 유기견을 입양해 15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눈꽃이는 유독 추웠던 지난 2월,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을 떠돌다 이곳에 들어와 석 달의 기다림 끝에 봄을 맞았습니다.
법적으로 동물보호소에 들어온 동물들에게 주어지는 입양 공고 기간은 최대 10일.
새로운 가족을 만나기엔 짧은 이 기간에 입양되지 못하면 원칙대로 안락사시키는 일명 '칼락사'로 생을 마감해야 합니다.
다른 지자체 동물보호소에선 저조한 입양률에 칼락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광주동물보호소는 동물들에게 조금이라도 기회를 주고자 공고 기간 10일 이후에도 보호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동물을 관리하는 김은샘 씨는 "아픈 데도 없고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 동물들을 차마 안락사시킬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칼락사는 피했지만, 오랜 기간 보호소에서 살아온 대형견의 경우엔 입양 문의가 아예 들어오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곳의 최고참 '사미'는 2018년 5월에 들어와 이곳에서 지낸 지 어느덧 다섯 해째입니다.
집을 지키라는 목적으로 한 차례 입양된 적 있었지만, 짖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곳에 다시 파양된 이후 입양 문의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긴 다리를 가진 대형견 '거니' 또한 입양 문의가 없어 사무실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 씨는 사람들이 질병, 품종을 따지며 동물보호소에서의 입양을 꺼리기 때문에 대형견은 특히 입양이 힘들다고 전합니다.
"대형견의 경우 1년에 20마리 입양 가면 정말 많은 정도"라면서 "품종견과 소형견은 귀가율과 입양률이 더 높지만, 대형견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3개월 만에 새 가족을 맞은 눈꽃이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파양은 동물보호소에서 입양은 펫숍에서?
"개를 계속 키우기가 힘든 상황인데 거기서 안락사 좀 해주세요."
동물보호소에는 키우던 동물을 버리겠다는 연락이 끊이지 않습니다.
집을 지키라고 데려온 개가 짖지 않아서, 또는 너무 짖어 시끄럽다는 이유부터 시작해 심지어 키우던 개를 더는 감당할 수 없다며 안락사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재작년 봄엔 택시 한 대가 보호소 앞에 멈춰서더니, 가방에 장애로 일어서지 못하는 강아지와 잘 부탁한다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난 일까지 있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2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양육자의 22.1%가 양육 포기 또는 파양하고 싶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이유로는 '물건 훼손, 짖음 등 동물의 행동 문제'가 28.8%로 가장 많았고, 이후 '예상보다 지출이 많음'(26%), '이사·취업 등 여건 변화'(17.1%)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처럼 높은 파양률은 이미 포화상태의 동물보호소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또 반려동물 입양경로는 여전히 '펫숍'을 이용한 입양이 2위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2022년 기준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에서 반려동물을 입양한 양육자는 5.8%, 펫숍에서 반려동물을 구입한 양육자는 21%로 4배 가까이 차이가 났습니다.
펫숍에서 입양한 반려동물을 동물보호소에 버리는 상황입니다.
-보호소 인력 한 명당 20마리 맞춰야 하는데..안락사 피하고픈 보호소는 막막
그런데 규정 공고일이 지나도 애정으로 보호했던 동물들의 안락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습니다.
지난 4월 27일, 동물보호법이 전면 개정됐기 때문입니다.
동물 보호에 대한 향상된 인식을 반영하지 못하고, 학대 범죄를 제대로 예방·처벌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온 동물보호법이 31년 만에 대대적인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동물 학대 방지를 위해 반려동물을 줄에 묶어 기르는 경우 줄의 길이를 2m 이상으로 늘렸고, 물림 사고 방지를 위해 맹견 출입 금지 시설 확대 등 반려동물 소유자의 의무가 강화됐습니다.
민간 동물 보호시설의 신고제가 도입됐고, 판매업·장묘업 등의 반려동물 관련 업종이 기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되기도 했습니다.
동물보호소의 시설 및 인력 기준에 관해서는 보호동물 20마리당 1명 이상의 보호·관리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시행규칙이 추가됐습니다.
동물보호소가 이 시행규칙을 따르는 방법은 관리 인력을 늘리거나, 보호 동물을 대거 안락사시켜 마릿수를 조절하는 두 방법뿐입니다.
광주동물보호소의 동물관리 인력은 10명으로 개정된 법에 따르면 200마리만 보호할 수 있게 돼, 보호하던 동물 500마리 중 300마리를 안락사시켜야 합니다.
보호소 직원들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면서, 동물 보호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당장 수많은 동물을 안락사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한 겁니다.
다른 지역 동물보호소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2018년 이후 단 한 번도 안락사를 시행한 적 없는 전북 익산시유기동물보호소는 "개정된 법률에 따라 올해 상반기에만 100마리, 하반기에도 100마리 총 200마리를 안락사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며 "그동안 돌보며 정든 동물들을 직접 안락사시켜야 하는 갑작스러운 상황이 혼란스럽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전북 익산시청 축산과는 "익산시동물보호소의 동물을 안락사시키지 않으려면 13명의 인원이 충원돼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3명까지는 추가 충원할 계획은 있으나, 현재 예산으로 13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광주광역시 동물복지팀 또한 마찬가지로 "예산이 어떻게 될지 몰라 인원 확충에 대한 건 확답을 드릴 수 없다"며 "안락사 위기에 놓인 동물들의 상황이 안타깝다"고 밝혔습니다.
가능한 안락사보다 인원 충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힌 보호소도 있었습니다,
250여 마리의 동물을 보호 중인 순천시동물보호소는 "안락사시키는 방향보다, 최대한 예산을 요청해서 인력을 충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동물 복지 예산은 해마다 느는데..보호소 인력난은 여전히 해결 안 돼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생활 수준 향상, 1인 가구 증가, 인구 고령화 등의 사회적 요인으로 해마다 지속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또 동물 보호·복지에 대한 관심과 반려동물 관련 정책, 교육 등의 결과로 국민인식 수준도 매년 향상되고 있습니다.
동물 보호의 관점이 소유하는 '물건'에서 보호해야 할 '생명체'로 전환됨에 따라 반려동물에 대한 윤리적 요구도 증가했습니다.
이에 발맞춰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8월, 2023년 주요 예산 계획 중 하나로 '동물복지 강화'를 꼽았습니다.
올해 유기 동물 구조·보호 및 환경개선과 입양 문화 활성화를 위한 예산은 약 30억 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2배 넘게 늘었습니다.
특히 그중 15억 원은 민간 동물 보호시설 개선 지원을 위한 예산으로 올해 신규 추가됐습니다.
그런데 전국 지자체 동물 보호·복지 전체 예산의 약 1/3 정도는 서울이 차지하기 때문에, 그 외 지방의 유기 동물 보호·복지를 위한 예산은 한참 부족합니다.
특히 인력을 고용하는 비용 및 예산이 부족해 지자체의 동물 보호·복지 전담 인력 부족은 더 심각합니다.
동물 관리 인력은 2018년 0.7명에서 2020년 1.1명으로 근소하게 증가했지만, 유기 동물의 증가 속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체 동물보호소를 통한 입양률은 2020년 3.0%에서 2021년 5.1% 그리고 2022년 5.8%로 매년 서서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광주동물보호소의 김은샘 씨는 "SNS를 통한 홍보로 입양 문의가 조금씩 늘고 있다"며 "지금까지 가족을 기다리며 지내온 동물들의 끝이 안락사면 너무 허무할 것 같다"고 토로했습니다.
동물 보호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늘어나고, 느리지만 보호소를 통한 입양률도 증가하는 상황에서 법에 따른 성급한 안락사보다, 정부의 지방 동물보호소 지원과 함께 각 지자체에서 인력을 위한 예산 확보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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