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멘트 】
일제 치하에서 민족의 설움을 노래로 표현했던 목포의 눈물이 올해로 발매 80주년을 맞았습니다.
호남을 대표하는 노래로 민족의 한을 간직한 목포의 눈물과 내년에 탄생 100년을 맞는 이난영을 재조명하는 기념사업도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이동근 기자의 보돕니다.
【 기자 】
<이팩트-목포의 눈물>
일제치하 서슬퍼런 감시와 탄압 속에 민족의 설움과 애환을 달랬던 목포의 눈물.
1935년 국내 대표 음반업체였던 오케 레코드의 국내 10대 도시 공모에서 1위를 차지하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고 이난영은 해외에서도 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 스탠딩 : 이동근
- "일본 활동에 이어 미국으로 건너간 이난영은 '딸들과 김 시스터즈'라는 그룹을 결성했습니다. 한류 열풍의 시작이자 걸그룹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의 빌보드 차트까지 오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
▶ 인터뷰 : 이춘웅 / 목포문화원장
- "지금도 목포의 눈물 노래가 나오면 목포 시민들은 울적했던 마음이 없어지고 활력이 되살아나는 그런 기분입니다"
올해로 발매 80주년, 내년 이난영 탄생 100주기를 맞아 목포의 눈물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각종 전시회와 공연,
토크쇼 등을 통해 나라잃은 설움을 다독였던
민족의 노래를 되새깁니다.
▶인터뷰 : 최태옥 / 목포의 눈물 기념사업회장
- "왜정 때 한을 푸는 이난영과 함께 한 도시였다. 앞으로 이쪽 지역에서 이런 예술인을 통해 목포 지역 발전도 도모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일제치하에서 민족의 한을 달래고 희망을
노래했던 목포의 눈물이 호남을 넘어 근현대
대중문화의 소중한 자산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kbc 이동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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