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12·3 내란 사태 이후 일주일 넘게 정국 불안이 해소되지 못하면서 환율 단기 저항선도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계엄 사태 전에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만 넘어도 외환당국이 비상이었으나, 어느새 1,400원대가 익숙해지면서 심리적 마지노선이 1,450원까지 밀렸습니다.
이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입니다.
환율이 저항선을 뚫고 1,500원대로 치달을 경우 외환당국이 방어를 하는 과정에 외환보유액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위기론도 제기됩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는 전날보다 10.1원 내린 1,426.9원을 기록했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섰으나, 그동안 급등한 탓에 1,400원대 고착화 조짐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3일 야간 거래에서 1,442.0원까지 뛰면서 단기 저항선은 1,450원선까지 높아진 상황입니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데, 이는 지난 1997~1998년 외환위기, 2008~2009년 금융위기 외에는 겪어본 적 없는 '위기 환율'입니다.
이유정 하나은행 연구원은 "1,450원 정도를 상단으로 봤는데, 정치적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1,450원을 조금 더 넘을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촉발된 세계적 신용위기 성격이었으나, 외환위기와 이번 사태는 국내에 국한된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현재는 외환위기 당시보다 100배 이상 많은 외화보유액에 대외순자산국으로 탄탄한 경제 기초체력을 갖추고 있지만, 현직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내란 혐의를 받는 사상 초유의 리더십 부재가 치명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국 불안 장기화로 극단적인 고환율 상황이 이어질 경우 우리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이 연구원은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가 오르면 소비가 더 위축될 수 있다"며 "수출 업체는 고환율이 채산성에 긍정적일 수 있지만, 수입 업체의 비용 상승을 유발해 긍정적인 효과는 제한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출되면, 경제 하방 압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환율이 상승 압박을 더 받아서 외환당국이 공격적으로 시장 개입에 나설 경우 외환보유액이 대규모로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됩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153억 9천만 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2021년 10월 4,692억 1천만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뒤 이후 3년 동안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왔습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22년 5월 이후 지난달 말까지 300억 달러 이상 줄었습니다.
규모만 보면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중국, 일본, 스위스, 인도, 러시아,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홍콩에 이어 세계 9위 수준입니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돌파해 1,500원을 넘나들 경우 당국이 외환보유고를 헐어 시장 개입에 나서면서 그 규모가 금세 4천억 달러 아래로 미끄러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한국은행은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거래 등으로 '컨틴전시 플랜'(상황별 대응 계획)을 가동할 예정이지만, 단기 처방으로 환율 방어가 가능할지도 현재로선 미지수입니다.
당장 비상계엄 이후 외환보유액 감소 규모에 이목이 쏠린 상황입니다.
외환당국은 시장 개입 여부를 공식 확인하지 않지만, 지난 일주일간의 환율 변동 그래프를 보면 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흔적이 눈에 띈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외환보유액이 4천억 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시장 불안이 높아질 것"이라며 "외국인 투자자 자본 유출이 더 빨라지고 내국인 자본 유출도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환율 급등에 시장 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을 소진하면 외화 부족이 다시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며 "당국도 과도한 개입을 하기는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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