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비아동 지킴이' 박익성 씨 "내 고향이니까 내가 앞장서서 발전하도록 해야죠"

    작성 : 2024-07-13 08:00:02
    30대부터 20년간 주민자치위 활동 계속
    생활 인프라 개선, 캐릭터 개발 등 주도
    철거 위기에 놓인 80년 된 한옥 지켜내
    낙후된 달동네 이미지 벗는 게 최대 소망
    [남·별·이]'비아동 지킴이' 박익성 씨 "내 고향이니까 내가 앞장서서 발전하도록 해야죠"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비아마을 캐릭터 '까비'와 함께 포즈를 취한 박익성 씨

    빛고을 광주의 북쪽 끝자락, 광산(光山)구와 장성군 남면 경계 국도 1호선이 지나는 길목에 비아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아동은 근대화가 일찍 시작된 곳이어서 오래 묵은 이야기가 많은 곳입니다.

    구한말 개장한 비아오일장을 비롯 일제강점기 개교한 비아초등학교, 무양서원, 지금은 사라진 비아극장, 비아막걸리 등 오랜 전통의 명물이 수두룩합니다.

    아울러, 도시개발이 늦어진 탓에 예스러움이 고즈넉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동네입니다.

    '바람의 딸'로 불리는 여행작가 한비야 씨는 독특한 색깔을 지닌 비아에 매료돼 자신의 책 『바람의 딸, 우리땅에 서다』(2002)에 각별한 비아의 느낌을 적어놓은 바 있습니다.

    또한 영산강 범람으로 형성된 드넓은 평야에 자리한 비아(飛鴉)는 지명처럼 까마귀가 많이 살았던 고장입니다.
    ◇ 작가 한비야도 매력 느낀 비아마을
    그래서 비아 사람들은 먹이를 먹고 날아가는 까마귀의 속성을 닮아 외지로 훌훌 떠나는 경향이 있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동이 빈번한 비아에서 고향을 지키며 20년 넘게 주민자치위원회 활동을 묵묵히 해오고 있는 토박이가 있습니다.

    ▲비아마을 사회단체 한마당 행사에서 사회를 보는 박익성 씨

    비아중앙로에서 한 '마트'를 운영하는 58살 박익성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가게를 36년째 지속하며 상인과 주민들 권익을 위해 앞장 서고 있습니다.

    그가 비아동 주민자치위원회에 참여한 것은 36살이던 지난 2002년.

    이때부터 그는 고향 선배들과 함께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데 열정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이 외지인들이라 내 고향을 내 스스로 바꿔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서게 된 것 같다"고 동기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2009년 부위원장을 거쳐 2012년부터 2년간 위원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또한 비아청년회장과 비아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장을 맡아 지역발전을 위해 분주하게 뛰었습니다.

    현재는 주민자치위원회 사무국장으로서 살림을 맡아 꾸려가는 한편, 지역 현안과 갈등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 지역 현안과 갈등 해결에 주도적 역할
    그동안 주민자치위원회가 제안해 결실을 맺은 사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비아공영주차장 건립을 비롯 비아천주교회 앞 도로 확장, 비아마을 캐릭터 '까비' 개발, 오래된 한옥 '담은정' 보존 등 크고 작은 사업들이 주민들의 노력으로 이뤄졌습니다.

    ▲비아의 과거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을 전시 중인 비아역사기록관

    그는 이 가운데 한옥 '담은정' 보존을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꼽았습니다.

    현재 주민자치위원회 사무실 겸 회의실로 사용되고 있는 담은정은 건축된 지 80여 년에 달하는 고택입니다.

    상량문 기록을 보면 단기 4277년(서기 1944년) 11월 5일로 표기돼 있습니다.

    우람한 대들보와 서까래 등 건축미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원래 비아동행정복지센터 옆에 있었던 이 한옥은 지난 2020년 청사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철거가 논의됐으나 비아동 주민들의 보존 주장에 힘입어 이전 존치됐습니다.

    무엇보다도 박익성 씨 등 주민자치위원회의 적극적인 노력이 주효했습니다.

    ▲1966년 비아재건학교 학생들 모습. 뒷편 교실로 쓰인 한옥이 현재의 '담은정'이다 [비아주민자치위원회]

    또한 비아 옛 사진 공모전을 개최해 비아의 과거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과 컬러사진 등 550 점을 수집했습니다.

    이 가운데 100여 점을 골라서 비아동행정복지센터 2층 로비에 역사기록관을 꾸며 전시하고 있습니다.
    ◇ '비아시장 활성화' 통한 미래 기대
    사진들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 초등학교 수업장면을 비롯해 1950~1960년대 모내기와 초가집 등 농촌풍경, 1970년대 새마을운동, 1980년대 이후 도시화된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비아가 더 이상 정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람은 최근 첨단 3지구가 개발되면서 더욱 간절한 소망이 됐습니다.

    ▲비아 주민자치위원회 활동에 대해 설명하는 박익성 씨

    "제 딸에게 비아의 느낌을 말해보라고 하니까 '한결같다'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변화와 발전이 더디다는 것이었어요"라며 낙후된 비아의 현주소를 토로했습니다.

    주민들은 변화의 마중물로 열악한 도로기반 시설 확충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광산구청에 소방도로 개설과 가로망 확대 추진을 바라고 있습니다.

    특히 10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는 비아시장 활성화에서 비아 발전의 원동력을 찾고 있습니다.

    박익성 씨는 "이 상태로 놔두면 비아가 달동네로 전락하기 십상"이라면서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광산구청의 개발 의지가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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