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올해 등단 34년차인 정윤천 시인은 전라도 토종 시인입니다.
전남 화순읍 만연리가 고향인 그는 구수하고 게미진 전라도 사투리로 튼실한 자신만의 시밭을 일궈왔습니다.
시의 화두는 주로 순정어린 고향의 풍속이지만, 그 속에는 풍자와 해학이 녹아있어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흙먼지 자욱한 고샅길에서 혹은 쑥배미 어느 초가에서 엿들은 이야기들을 사투리에 리듬을 살려 결 곱게 빚어냈습니다.
첫 시집 '생각만 들어도 따숩던 마을의 이름'(1993, 실천문학)에 수록된 초창기 시들을 보면 아궁이 연기같은 매캐한 정감을 피워올립니다.
◇ 사투리에 리듬을 살려 결 고운 시 빚어정 시인은 199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와 이듬해 '실천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습니다.
이후 중앙문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다가 돌연 시작(詩作)을 중단하고 수 년간 전북 고창 선운사 사하촌에서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숨 고르기를 마친 정 시인은 2004년 '구석'이란 시집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또한 지리산문학상 수상 기념 '발해로 가는 저녁'이란 시집을 냈습니다.
정윤천 시인이 유년기를 보낸 고향집은 경전선이 지나는 화순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종종 화순역에서 친구들과 만나 기찻길을 배회하기도 하고 부근 냇가에 풍덩 들어가 멱을 감기도 했습니다.
첫 시집에는 몇 편의 기찻길 풍경이 판화처럼 어둑한 질감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불 내린 역사의 적막 곁으로 기차는 오지 않았지
누군가 일구다 떠난 빈집의 텃밭 가에는
절로 자란 마늘꽃만 몇 잎 허옇게 머리를 풀고
새로 난 신작로를 따라 하행의 밤차 한 대가
머언 하행 속으로 사라져 이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차는 이제 다시는 오지 않았지.
- 시 '폐역' 中
◇ 열차는 아련한 추억을 환기하는 상관물이 시뿐만 아니라 '화순역에서', '막차' 등 작품에서는 고적한 시골역 풍경을 인화시킵니다.
그만큼 열차는 그에게 아련한 추억을 환기하는 상관물인 것입니다.
유독 철도에 관한 시를 많이 쓴 이유에 대해 그는 친숙한 고향정서가 묻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시인들에겐 나름대로 시를 쓰고 싶은 단어나 지명, 풍경 등이 있습니다. 역이라거나 기차도 그런 것들 중의 하나죠. 결국 시의 배경인 기차니 역을 통해 사람살이의 근간이거나 이별과 만남 등의 서정들을 그려 보이는 것이겠지요. '화순역', '마흔 살 너머 새벽기차' 등의 시들 역시 그러한 정서의 전범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전선 열차의 이미지에 관해 또한 그는 '매우 한국적이고 교훈적인 존재'라고 설명했습니다.
"열차는 직선을 추구하기보다는 곡선의 길을 갑니다. 산이 가로막고 있으면 이를 넘지 않고 돌아갑니다. 들이나 강가를 지나기도 하고 미루나무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속도의 편리함보다는 낭만을 즐깁니다. 멀리 갈 때 열차를 타는데 거기에는 호기심과 환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심리적 심미성이 바로 열차가 있는 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선운사 아래 마을에서 6년간 머물어그는 한 때 전북 고창 선운사 인근 마을 복분자주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생활고와 더불어 정신적으로 몹시 지친 상태에서 몇 년간 문학과는 담을 쌓고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 시작(詩作)을 할 수 있었던 게 큰 소득이었습니다.
그 무렵 써진 시들을 모아 2004년 실천문학사에서 시집 '구석'을 펴냈습니다.
시집 '구석'은 발간된 해에 문광부 우수문예 도서에 선정되었으며, 권위있는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집 '구석'을 통해 오랜 공백 끝에 문단에 복귀했습니다.
그는 지금껏 7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생각만 들어도 따숩던 마을의 이름', '흰 길이 떠올랐다', '탱자 꽃에 비기어 대답하리', '구석', '발해로 가는 저녁'등을 출간했으며, 시선집 '그린란드 바닷가에서 바다 표범이 사라지는 순서'와 시화집 '십만 년의 사랑'을 펴냈습니다.
이 가운데 '구석'(2004)을 가장 애착이 가는 시집으로 올렸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석'은 선운사 아래 마을에서 6년간 머물며 호흡한 북도(전라북도)의 숨결이 담겨 있습니다. 시로써 개념을 갱신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이때 가장 시다운 시를 썼던 것 같습니다."
◇ '삶의 부피'에 다가서고자 하는 문학활동
그간의 문학적 변이과정을 물어봤습니다.
"초기에는 문학성보다는 목적성에 치중했습니다. 1990년대 당시 억눌린 시대상황에 맞서 사회변혁을 주창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뤄진 다음에는 자연과 사람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삶의 부피에 다가서고자 한 것이지요."
정 시인은 주로 독서를 통해서 시 공부를 했으며, 습작기를 벗어나면서부터는 교과서라거나 주입식 교육의 한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올바른 시 정신의 고양에 치중했습니다.
그는 지금도 '시가 지나간 자리에는 시가 남아야 한다'는 시의 철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동인 활동은 공광규, 복효근, 오인태 등과 함께 '시의 지평'이라는 모임을 짧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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