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란지교(芝蘭之交).
지초와 난초의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 사이의 맑고 향기로운 사귐을 의미합니다.
조선 중종 때 선비 조광조와 양팽손의 죽음을 초월한 '지란지교'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곳이 있습니다.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마을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두 선비의 향기로운 사귐이 싱그러운 교훈으로 후세에 전해오고 있습니다.
필자는 학포 양팽손 후손 양동률 화순문인협회 회장과 화순군의회 부의장을 지낸 양동복 씨의 안내로 쌍봉마을 곳곳에 서려 있는 역사의 자취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29번 국도를 타고 전남 화순 이양을 지나 보성 방면으로 차를 달리다가 쌍봉사 표지판을 따라 들어서면 쌍봉마을이 나타납니다.
쌍봉마을은 통일신라 시대 창건된 쌍봉사와 더불어 한말의병 전적지 '쌍산의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리고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자 서화가인 학포 양팽손이 머물며 후학들을 가르치던 곳입니다.
◇ 사마시 통해 함께 조정에 들어가
학포 양팽손은 21세 때 생원시에 장원 급제하게 되어 같은 해 진사에 장원 급제한 정암 조광조와 성균관에서 공부하고 사마시를 통하여 함께 조정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조광조와 절친이 된 배경은 양팽손이 19세 때 용인에 거주하고 있는 정암을 찾아가 함께 경전을 연구하고 사물의 이치를 논의했는데, 조광조 선생이 그를 두고 "세상에 필요한 큰 그릇"으로 비유했다고 전합니다.
학포가 정암을 방문한 시점은 중종반정이 성공을 거둔 해였습니다.
반정을 통하여 권력을 확보한 중종은 유교 분위기에 편승하고자 하였고, 정암도 자신의 학문으로 제자들을 교육하여 도학의 기풍을 진작시켜 나가던 무렵에 학포가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중종은 연산군 때의 폐정을 척결하고 새로운 인재를 뽑는 등 개혁정치를 단행했습니다.
조광조는 폭군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에 오른 중종의 지지를 받아 왕도정치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훈구파가 중중반정의 공훈자를 117명이나 선정하자 신진사류들이 이들 가운데 공이 없는 76명의 재산과 노비를 국가로 귀속시키는 이른바 '위훈삭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훈구파와 신진사류들의 싸움에 환멸과 위협을 느낀 중중은 결국 신진사류들을 몰아내고, 조광조를 화순 능주에 유배시켰습니다.
이른바 기묘사화는 중종 14년 남곤, 홍경주 등 훈구파가 조광조, 김정, 김식 등 신진사류를 숙청한 사건입니다.
◇ 귀양 온 조광조 날마다 찾아가 위로
양팽손이 조광조의 억울함을 고하는 상소를 올려 파직당해 고향에 내려와 지내고 있는데 조광조가 귀양을 오게 되자, 두 사람은 날마다 위로하며 유배가 풀리기를 기원했습니다.
하지만 염원과 달리 조광조가 유배된 지 25일 만인 1519년 12월 10일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사약을 든 금부도사가 도착했습니다.
금부도사가 사약을 들이밀자 조광조는 한성부를 향해 큰절 3배를 올린 뒤 절명시 한 수를 남기고 사약을 들이켰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고작 37세였습니다.

다음 글은 조광조의 절명시(絶命詩)입니다.
임금을 어버이 같이 사랑하고
나라 걱정을 내 집 같이 하였도다
밝고 밝은 햇빛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으니
거짓 없는 내 마음을 훤하게 비춰주리라
◇ 60리 먼 길 쌍봉리 뒷산 증리에 가묘
정암의 죽음 앞에 학포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죄인의 시신을 함부로 손댈 수 없음에도 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그냥 둘 수 없다며 수습했습니다.
장남 응기(應箕)와 담양 소쇄원 주인 양산보(梁山甫,1503~1557)와 함께 시신을 거둬 섣달의 매서운 눈보라를 헤치고 60리 먼 길 쌍봉리 뒷산 증리에 가묘를 썼습니다.
능주에서 쌍봉사 근처 이양면 증리까지 30리가 넘는 거리로 자동차로 가도 30분이 걸리는데 추운 겨울날 눈보라 치는 엄동설한에 그곳까지 시신을 옮겼습니다.

증리는 초분을 썼던 곳이라 하여 서운태(서원터) 마을이라 불립니다.
학포는 이곳에 추모옥을 짓고 봄·가을에 문인 제자들과 함께 제향 했습니다.
조광조 시신은 이듬해 경기 용인군 수지면 상현리(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서원말부락의 선영하에 매장되었습니다.
조광조는 생전 양팽손을 평하기를 "마치 지초나 난초의 향기가 사람에게서 풍기는 것 같다. 비 개인 뒤 가을 하늘이요, 얕은 구름이 막 걷힌 뒤 밝은 달이라, 인욕이 깨끗이 씻어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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