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故 문병란 시인과 편지 우정, 박석준 시인 "수줍음 많고 선한 분"(2편)

    작성 : 2024-06-02 08:00:01
    4번 만남 중 둘만의 대면은 한번 뿐
    "함부로 행사시 쓰지마라" 준엄한 충고
    편지마다 시 동봉, 미발표시도 여러 편
    내년 10기 주기 맞아 편지 전시할 계획
    [남·별·이]故 문병란 시인과 편지 우정, 박석준 시인 "수줍음 많고 선한 분"

    ▲광주 동림동 자택에서 집필하는 박석준 시인

    문병란 시인은 매번 편지마다 자신의 시를 동봉해서 보냈습니다.

    그중에는 박석준 시인의 시에 대한 화답시도 있었는데, 생전에 발표되지 않은 시도 여러 편이 있습니다.

    ▲매번 편지마다 동봉된 문병란 시인의 시

    작년에 핀 매화나무 앞에 가서
    그 이쁜 꽃에게 아는 체를 했더니
    핑 돌아 앉아 외면해 버리오.

    구면인 듯 싶어
    우리말로 수작을 건넸지만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버리오.

    섭섭한 마음을 안고 돌아서려니
    무언가 아쉬어 한숨을 쉬었소.

    그날 저녁 집에 오니
    아내도 부재중-
    방 가운데 탁자만 동그마니 놓여 있소.

    회갑 때 찍은 사진만
    한없이 외로워 보이는데
    오늘은 모두 다 날 외면해 버리오.

    따르릉 그 때 전화가 울렸소
    누군가 나를 찾는 것이오.

    매화야 매화야
    봄바람에 속지 말아
    내일 다시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렴!

    - '외면 - 석준의 시에 화답함'

    팔순의 나이에 4~5쪽이 되는 긴 글을 써내려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터이지만, 스승이 제자를 대하는 마음으로 정성들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 물신주의 사회 풍조에 대해서 비판
    편지에는 정치·사상적 견해도 담겨 있지만 문학에 대한 가르침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문병란 시인은 김현승, 신동엽 시인을 좋아했으며, 특히 박인환의 시를 좋아했다고 박 시인은 회상했습니다.

    또한 외국시인으로는 T.S. 엘리엇, 보들레르,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자주 언급했으며, 카프카,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 등 실존주의 철학자의 사상에 심취했다고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이와 함께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추앙하고, 맘몬(돈神) 등 물신주의 풍조에 대해서는 비판하며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문병란 시인은 시적 태도에 대해서도 준엄한 지침을 강조했습니다.

    "결코 즉흥적이거나 걸러지지 않은 시를 쓰지 말라. 경험하고 아는 것만 써라"고 당부했습니다.

    박 시인이 사회적 사건과 관련한 행사시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쓰려고 하자 "행사용 목적시를 쓰지 말라"고 충고해서 고사했던 적도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게 되면 허위, 날조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 밖에 문병란 시인은 고전음악 감상을 즐겨했습니다.

    '새벽의 차이코프스키'와 같은 시처럼 음악에서 얻은 영감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마지막 편지에는 죽음 암시 글
    박 시인은 문병란 시인이 작고하기 전 보낸 편지에서 죽음을 암시하는 대목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2015년은 그 중 가장 최악인 듯 어둡습니다. 우리 모두 조금씩 절망하고 카프카처럼 죽음을 응시하고 이젠 자기와 헤어질 시간들을 봅니다"

    - 2015.07.21. 편지 中

    문병란 시인은 '하동포구' 시를 부끄러운 자화상 같은 시로 표현했습니다.

    눈부신 한낮이 길게 누워 있는 나루터
    주인 잃은 빈 배만 흔들리는데
    눈물을 씹어봐도 한숨을 씹어봐도
    쓴맛 단맛 알 수 없는 설운 내 팔자
    하동포구는 아직 울고 싶은 곳이더라
    하동포구는 아직도 사나이 옛정이 목메는 곳이더라

    - '하동포구' 2015.07.21. 편지 中

    그 후로 보낸 마지막 편지 '2015.08.12.'에서 문병란 시인은 '하동포구' 시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故 문병란 시인이 박석준 시인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

    "타락하지 않고 잘 버틴 역마질성, 스스로 주당이 되고 싶었던 그런 날의 추억이 담긴 시, 이젠 타락보다 절망하기 딱 좋은 이 시대, (노년기에 이르러) 내 자신이나 민족적 현실이나 인류의 허우적이는 삶의 모습이나 붙들고 버터야 할지..."라고.

    마지막 편지는 평소와 달리 2쪽으로 짧았습니다.
    ◇ 농장다리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배웅
    박 시인이 문병란 시인과 2년 6개월에 걸쳐 100여 차례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직접 만난 것은 4번에 불과했습니다.

    그 가운데 3번은 다른 문인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만났고, 단둘이 대면한 것은 타계 한달 전 지산동 자택 부근 식당에서 이뤄졌습니다.

    "직접 만나 뵈니까 수줍음이 많으시고 선한 인상이었습니다. 식사를 거의 드시지 못하더군요. 전교조 활동과 통일문제, 문단 동향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식당을 나온 후 한참을 걸어서 동명동 농장다리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해 주셨어요."

    박 시인은 마지막 만남을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기억해냈습니다.

    박 시인은 마지막 편지를 보내고 한 달 후에 문병란 시인의 부음을 듣게 됐습니다.

    ▲광주 지산동 '시인 문병란의 집' 전시실 모습

    한편, 박 시인은 내년 문병란 시인 타계 10주기를 맞아 '시인 문병란의 집'에서 손편지를 전시할 계획입니다.

    #박석준 #문병란 #손편지 #하동포구 #물신주의 #미발표시 #광주 #남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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