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탐·인]문인화가(文人畵家) 멱당 한상운 화백<上>

    작성 : 2023-07-20 15:11:45
    화폭에 공(空) 채우려 한평생 먹을 가는 인생
    고샅길(골목길) 걸으며 깨닫는 삶과 예술의 깊은 사유
    응물상형한 자연을 의인화하여 대화하는 진경
    ‘색즉시공 공즉시색’ 연상되는 연의 일생심취
    담양 수북 화실 ‘여명재(餘茗齋)’ 들어앉아 붓질
    KBC는 기획시리즈로 [예·탐·인](예술을 탐한 인생)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특집기사는 동시대 예술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간과 삶, 세상의 이야기를 역사와 예술의 관점에서 따라갑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소통을 기대합니다.<편집자 주>

    ▲문인화가 멱당 한상운 화백은 “그림(畵)은 응물상형하여 불교의 선적인 개념으로 인간을 보는 수준이 문기 있는 그림이다”고 자신의 회화관을 밝힌다.


    ◇ 시골 농가에서 자연을 벗 삼아 노닐다

    전남 담양의 수북면으로 향했습니다. 삼인산 아래 농가 하나를 마련해 자연을 벗 삼아 노니는 화가의 일상을 탐색하기 위해서입니다.

    상당히 긴 세월을 서로 지켜봐 왔지만 인사 정도 나누는 사이였습니다. 이번엔 작심하고 그림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눠 볼 요량으로 찾아갔던 것입니다.

    문인화가 멱당(覓堂) 한상운 화백(72)은 시골 빈집에 화실을 꾸며 놓고 쭉 작업을 해왔다고 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만나 본 수많은 화가들이 있지만 문인화가(文人畵家), 그러니까 먹을 갈아서 붓 잡아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냥 색을 풀어 형태를 드러내어 아름답거나 강렬하거나 적요한 이미지를 뿜어내는 여느 화가들과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대개 문인화가들은 그림에서 이미지나 메시지보다는 정신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예술에서 정신은 철학에 기반하고 드러나지 않은 그것에 더 집중을 합니다.

    그래서 화면에 드러난 것은 그림이나 그것의 표현 가치와 의미는 화업을 넘어 학문이다. 심오한 우주의 기운과 원리, 사상을 풀어내는 철학에 가깝습니다.

    문인화 등 전통회화를 다루는 예술인들은 생각보다 공부를 많이 하고 신중합니다. 그래서 자기생각, 주장, 논리가 확실한 편입니다.

    ▲한상운 화백의 담양 화실 ‘여명재’ 툇마루에서 바라본 마당 풍경으로 화가의 그림 속 정경과 맞닿아 있다.

    한상운 화백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작에 대해 불쑥 한마디 던졌더니 30분을 쉬지 않고 쏟아냈습니다.

    거침없는 화업의 발자취며 스스로 찾아가는 화론의 방향, 현실과 이상 사이를 통행하는 미학적 관점도 나름 뚜렷합니다. 그가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며 바라본 자연을 향한 관조적 시선도 높고 깊습니다.

    그것을 다시 화폭에 풀어내는 주제와 소재의 해석이 예술철학에 다름 아닙니다.

    본 대로 생각나는 대로 붓과 자연, 세상을 다루지 않는 문인화, 문인 사대부의 기품과 학식, 도덕적 수양이 스며야 한다는 전통적 문인화를 현대인이고 생활인 한상운 화백은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는지 그의 담양 수북 화실 ‘여명재(餘茗齋)’ 툇마루에 앉아 찻잔을 사이에 두고 나눴습니다.

    ◇ 화론 정립 후 전통기법 통해 수묵의 변화

    ▲한상운 화백이 최근 심취한 화두인 ‘비울 공(空)’에 대해 사유하면서 순간적 감흥으로 풀어낸 신작 ‘공(空)을 찾아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문인화 작업하신 지 얼마나?

    =45년 작업했습니다. 저와 다른 사람과 차이는 나는 미대출신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학원을 갈 때 미술이론을 알고 싶어 조선대 미술대학원을 들어갔어요.

    실기는 금봉선생한테 배우고, 거기서 인제 미술을 서적들을 많이 읽고 또 실기는 우리 선생님 금봉선생님한테 하면서 이론공부를 하니까 이론을 독자적으로 여러 가지 책들을 접하면서 그 옛날에 미술 전문잡지사에서 내 석사 학위논문을 1년간 게재하자고 하더라고요.

    대폭 수정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이론서를 많이 봤습니다. 그러면서 화론이 생겼다. 화론이 어느 정도 돼가니까 우리가 전통적으로 답습했던 미술기법을 적용하니까 그림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죠.

    ▲그러면 선생님은 문인화만 하셨나요?

    =문인화만 하다가 한국화도 제가 매년 했어요. 공모전에 한국화를 출품도 하고...

    ▲문인화에 집중하게 된 이유로 뭐죠?

    =직접적인 이유는 공모전에서 한국화는 입선을 하는데 문인화는 특선 이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두 가지를 하기보다는 이렇게 몇 번 입선을 하다보니 한 쪽에다 집중해야 되겠다 해서 그냥 문인화에 집중했습니다. 아마 공모전에서 한국화도 특선을 했으면 계속했을 거예요.

    ◇서예 7체법 관통 합쳐질 때 문기(文氣) 서려

    ▲‘두손 모아’(왼쪽), ‘옴’(가운데_, ‘覺(각).覺, 覺’(오른쪽)


    ▲선생님이 생각하는 ‘문기(文氣) 있는 그림’은 어떤 것?

    =저는 그것이 불교에서 선의 경지에 간 것 같은 맛. 형식적인 것으로 봤을 때는 눈에 보이는 형식적인 것으로 봤을 때는 그 서예의 서법, 서예의 칠체를 완전히 터득해서 익숙하게 구현하고 발현할 수 있는 수준의 붓의 사용법을 쓸 정도로 터득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다음에 서예는 어떤 기호를 나눠 가지고 이렇게 표현하는 건데, 그림은, 화(畵)는 응물상형 (應物象形)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그리면 사람의 형태, 개를 그러면 개로 형태가, 최소한 이것은 ‘무엇을 그린 것’이라는 형은 나타내야 되니까, 그런 경지를 나타내는 것은 불가에서 선적인 개념으로 해서 인간을 보는 수준이 문기 있는 그림이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언어로 이야기는 못하지만 그것은 모든 물건들을 봤을 때 거기서 얻는 것들을 터득하는 개념이 깨달음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즉 다시 말해서 진경산수(眞景山水)와 실경산수(實景山水)를 비교했다고 했을 때. 진경과 실경의 차이가 뭐냐, 지금도 그것은 애매합니다.

    근데 실경은 사진기가 찍어 놓은 것이 가장 확실한 실경이고 진경은 그 산을 의인화시키는 것, 내가 보는 자연 대상을 의인화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거기에 있는 산 자체도 의인화돼야 되고 거기에 있는 나무들도 하나하나 의인화시키고, 돌도 바위도 의인화시켜서 대화가 돼야 된다는 것이죠.

    그래 가지고 거기서 말하고 있는 참모습이 나하고 대화가 되어 있는 그런 경지가 진경이는 겁니다.

    그래서 전부 다를 자연을 갖다가 의인화시킬 줄 알아야 되는 그런 경지에서 나타내려고 하는 그것이 문기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 연(蓮)을 소재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

    ▲‘날 안아주신 이여’

    ▲일반적인 대화로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말에서 ‘저 사람 말은 그렇게 정곡을 꿰뚫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 다음에 또 우리나라 한의사 같이 ‘맥을 딱 짚는다’, 경영을 할 때 ‘통박을 잡는다’, ‘정곡을 찌른다’ 하는 이런 경지 그런 의미입니다.

    그냥 회화를 하더라도 그것을 좀 구현을 해야 되는 것, 그것이 서예의 7체법에 관통하여 합쳐졌을 때 문기가 서려 있다고 하는 것이죠.

    정곡 찌르고 맥을 찾아내려고 하면 수 없이 많은 역사적인 것, 철학적인 것, 문학적인 것 등 문사철(文史哲)에 대해서, 그다음에 이과적인 과학적인 요소들까지 진짜 나름 정말 해박하게 공부를 해야 된다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들이 연밥, 연꽃(蓮花) 그림에 아주 심취돼 있고, 연이 모든 시작이고 끝이고 인생이고 이렇게 함축적으로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그 연 그림, 연밥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지요.

    =문인화의 소재들을 보통 찾는데 중국에서 말이 만들어진 사군자를 택합니다. 의재 선생님께서 사군자라고 하는 것이 사군자를 우리나라에서 인제 그대로 수업을 문인화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중에 매난국죽(梅蘭菊竹)의 사군자라고 하는 것을 우리나라에서 수입을 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자기 내면,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려고 하니까, 매난국죽을 가지고 나의 속마음, 품성을 표현하려고 하니까 표현하기가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우선 다양하지 못하고 어렵더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난초를 가지고 내가 화가 났을 때, 맑았을 때, 내가 흥분했을 때를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어요.

    대나무도 풍죽, 노죽 몇 가지만 있지 표현하기가 적절치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連)을 가지고 보니까 연은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이 용이하더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연을 소재로 삼아서 인간의 삶을 표현해 보자고 한 것입니다.

    ◇화가는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 그려내


    ▲ ‘화창한 날의 화음’

    ▲연 그림의 테마는 무엇인가.

    =불교적 개념에서 본 깨달음이 소재였고 테마였고, 화두였어요. 그래서 그 전시회를 할 때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이란 무엇이냐’ 이런 것을 연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한번 풀이를 해보자 했어요.

    ▲연은 그런 표현 방법으로 더 다양하다는 것이군요.

    =연의 일대기, 일생이 그렇습니다. 연이 이렇게 물에서 올라왔을 때부터 시작해서 처음에 오므리고 있다가 점점 더 벌어지기, 나중에 점점 꽃이 피지요.

    그 다음에 어떤 나이 들어서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 그 다음에 다 떨어지거나 늦가을 되면 인제 씨방만 남아 가지고 있는 모습, 그 다음에 겨울이 되면 저렇게 죽어 있는 모습이, 그러니까 우리 인생과 같더란 것입니다.

    그 다음에 다시 봄이 되면 내년 봄을 기약하면서, 내년 봄을 잉태하고 있는 겨울의 모습이 우리의 윤회를 이 연을 가지고 표현하기가 상당히 용이하더라고요.

    ▲윤회라면 불교적 세계와 가까운 것 아닌가요?

    =마침 불교에서 그것을 종교화같이 하고 있기에, 고등학교 때부터 들었던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 연 향기라고 하는 것은 연 앞에 가서 맡으면 향이 별로 확 느껴지지 않는데 멀리 떨어져 꽃하고 헤어지면, 그 향기가 기억에 남는 것이지요.

    더 생각나는 것이,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마음에 이렇게 남아 있는 세계,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 화가가 내면을 그려내는 것, 즉 말해서 눈으로 본 세계라는 것입니다.

    ◇문인화는 내면의 세계 표현하는데 최적화

    ▲한상운 화백의 담양 수북의 화실 ‘여명재’로 들어가는 고샅길은 자연과 인간이 호흡하는 사유의 공간으로 한 화백 작품의 미학적 자양분이다.

    ▲그러면 문인화는 인간 내면의 세계를 그린다는 것인가?

    =이제 유럽 미술 같으면 인상파가 생기기 이전 시대까지는 전부 다 눈에 보이는 것이었는데, 인상파 이후로 부터는 눈에 보인 것 더하기 내 느낌입니다.

    그 다음에 더 나가서 현대미술로 와서 추상까지 가는 것으로, 추상에서도 여러 가지 형태로 나눠지는 것, 그런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에는 문인화가 제일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인화는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그렇게 좋은 것으로 최적화되어 있어요. 우리 한국화는 내면의 세계 보다는 눈에 보이는 세계, 실경에 최적화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사진기가 너무나 잘해주고 있으니 문인화가 너무 좋을 수밖에 없지요.

    <이 기사는 下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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