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탐·인]한국화가 묵정 이선복.."스승을 넘어서야 대화가가 될 수 있다"(2편)

    작성 : 2024-10-27 09:30:01
    '묵정(墨丁)'은 아산 선생 지어준 아호
    '막둥이'에게 벼루·먹·화선지 물려주기도
    그림과 인간됨 '근본여일(根本如一)' 강조
    "무등산 바라보며 사는 호남인 마음 표현"
    [예·탐·인]한국화가 묵정 이선복.."스승을 넘어서야 대화가가 될 수 있다"(2편)

    KBC는 기획시리즈로 [예·탐·인](예술을 탐한 인생)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특집 기사는 동시대 예술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간과 삶, 세상의 이야기를 역사와 예술의 관점에서 따라갑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소통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 그림뿐만 아니라 인생을 사는 법도 배워
    ▲15세의 나이에 아산 조방원 화백으로부터 그림을 배운 이선복 작가는 "붓을 드는 순간 만큼은 즐겁다"고 말한다

    - 아산 조방원 화백에게 사사한 배경은?

    "저는 아산 조방원 선생님에게 15살 어린 나이 때에 찾아뵙고 그림을 배웠습니다. 아산 선생님에게 그림뿐만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산 선생님을 '아산 아버지'라 불렀고, 선생님은 저에게 제자 이상의 사랑을 주셨습니다. 저를 '막둥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 호를 지어 주었는가?

    "네. 묵정(墨丁)이라는 호도 주셨고, 돌아가실 때 아산 선생께서 물려주신 벼루나 먹, 화선지 등도 지금 작품에 쓰고 있습니다."

    ▲이선복 작가가 묵향 가득한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활짝 웃고 있다

    -아산 선생이 가르쳐주신 것은?

    "아산 조방원 선생님은 남농 허건 선생 문하에서 배운 후에 본인만의 독창적인 전통 먹 산수 화풍을 창안해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자연의 영원성을 존중하되, 정신 세계를 탐구하셨습니다. 스승을 따르지 말고, 스승을 넘어서고 배반해야 대가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산 선생의 정신적 가르침은?

    "그림이나 글씨 따위의 어느 부분이 비어 있을 때 단조로움을 없애기 위해 도장에 글씨를 파서 찍습니다. 그것을 유인(遊印)이라고 하는데 아산 선생님이 제게 물려주신 유인 중 하나가 '환본재(還本齋)'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집이라는 말입니다. 근본에 충실하되 늘 새로움을 꿈꾸라는 뜻입니다."
    ◇ "아름다운 청묵(靑墨)의 향기(香氣)가 돼라"
    ▲이선복 작 '무등산 만월', 245cmx122cm, 수묵.

    - 평소 강조한 말씀은?

    "스승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림보다 먼저 바른 인간이 돼라. 바른 인간이 되지 않고서는 그림도 되지 않는다.' 또 이런 글귀도 주셨습니다. '붉은 꽃보다 아름다운 청묵(靑墨)의 향기(香氣)가 돼라.' 그림도 인간다움도 향기로운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이고, 그림과 인간됨이 똑같은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근본여일(根本如一)의 경지입니다."

    -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저는 충남 부여가 고향입니다. 아버지 따라 서울에서 살다가 광주로 왔습니다.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예술의 거리 어느 화랑에서 아산 조방원 선생의 그림을 보고 선생님을 찾아가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가난하던 저를 아산 선생님은 따뜻하게 품어주셨고 제 인생길을 지도해주셨습니다."

    ▲이선복 작 '무등산 호랭이', 115cmx100cm. 수묵담채.

    -교직에 몸 담으셨는데?

    "아산 선생님께서 그림 그려서 돈 번 사람 없고 부자 된 사람 없으니 고단하고 외로운 화가로서의 길을 가는 것은 좋은데 먹고 살 궁리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전남대학교 사범대와 한국교원대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 그림 수업을 하던 과정은?

    "아산 선생님은 1957년부터 광주에 화실을 마련하고 1978년에는 무등산 자락 지곡리에 묵노헌(墨奴軒)을 차렸습니다. 1990년대 초에는 곡성 옥과에서 작품 활동을 하셨고 여기에서 사숙하는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유묵은 지금 곡성 옥과의 전남도립 아산조방원미술관에 남겨져 있습니다."
    ◇ 스승 모시며 선배들과 그림 배워 행복
    ▲이선복 작 '무릉도원 가는 길', 53cmx45cm, 수묵.

    - 그림 배울 때의 기억은?

    "저도 여러 선배님들과 함께 그림을 배웠습니다. 아산 선생님은 생활이 어려운 막둥이 제자에게 연민의 정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기까지 곁에서 늘 모시며 공부할 수 있어서 저는 무척 행복한 제자였습니다."

    - '문자향 서권기'는 무슨 뜻?

    "좋은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하고 주야로 정진해서 고매한 인격을 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만의 식견과 철학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선복 작 '은거', 53cmx45cm, 수묵.

    -그 동안의 수묵화가로서 활동은?

    "묵노회, 원봉회에서 그림을 그렸고, 집에서도 늘 작업했습니다. 수묵화 외에는 한눈을 팔지 않았습니다. 한국화대전, 무등미술대전, 전라남도전, 광주광역시전에 심사위원과 초대작가로 활동했습니다. 광주광역시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심사위원을 역임했습니다. 개인전은 3번 했습니다."

    -이번 화순군립 최상준미술관 전시 작품은?

    "그동안의 제 수묵 작업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을 골라 전시해봤습니다. 초기의 전통 수묵기법 작품부터 최근의 '반영' 시리즈 그림까지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무등산 만월' 그림 작품은 큰 작품이고, '무등산 호랑이 그림'도 있습니다. 무등산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우리 호남 사람들의 마음이 깃든 작품입니다."
    ◇ 전통의 색감과 조형성을 화폭에 담고파
    ▲이선복 작 '반영', 85cmx70cm, 수묵.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은?

    "대숲에 바람이 불 때, 그 바람이 대숲을 빠져나올 때, 그 소리는 어떤 모습일까, 그 속에서 새가 울 때 그 소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비가 그치며 피어오르는 마을의 밥 짓는 연기는 어떤 모습으로 흩어지는가? 이런 정신적인 것들을 늘 생각하며 작품 활동을 합니다."

    - 최근 관심 갖는 부분은?

    "제가 최근에 그리는 작품들은 '반영' 시리즈입니다. 시냇물과 호수와 강물에 얼비치는 나무, 풀, 꽃, 하늘, 구름, 새들이 어떻게 물결 속에 비춰드는지 잘 관찰해 그리고 있습니다. 내 마음속의 추상과 현실의 구상이 만나는 지점의 조화로운 풍경입니다."

    ▲이선복 작 '초설', 150cmx230cm, 수묵.

    - 끝으로 하실 말씀?

    "직장 생활에서 은퇴하면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우리 전통의 색감과 조형성을 제 그림에 옮겨와 보고 싶습니다. 그 조형 안에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담겨져 있겠지요."

    □ 한국화가 묵정(墨丁) 이선복(李善馥)은

    -전남대학교 사범대 졸업
    -한국교원대 대학원 졸업
    -아산 조방원 화백 사사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광주광역시미술대전 대상 수상
    -한국화대전, 무등미술대전 심사위원. 초대작가
    -전남도전, 광주시전 심사위원. 초대작가
    -수상작가전(문예진흥원) 정예작가전 참가
    -한국의 자연전, 부산·광주 교류전 참가
    -한국미술협회, 묵노회, 원봉회, 한동아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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