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천불천탑 화폭에 담는 황순칠 화가 "장차 미술관 건립해 국가에 기증할 생각"(2편)

    작성 : 2024-06-16 09:30:02
    하얀색에 심취, 별명을 백호(白乎)로 지어
    그림은 기다림, 오래 봐야 숨은 빛깔 발견
    음악에도 소질..딸과 함께 매년 음악회 열어
    [남·별·이]천불천탑 화폭에 담는 황순칠 화가 "장차 미술관 건립해 국가에 기증할 생각"(2편)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젊은 시절 서예를 익힌 황순칠 화가는 종종 붓글씨를 쓴다

    황순칠 화가는 현재 광주광역시 남구 송하마을에 60평 작업실을 마련해 화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1993년 송하마을에 들어와 창고 형태의 건물을 짓고 이듬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차량의 왕래가 빈번하지만, 당시 이곳은 주변이 온통 야산과 밭으로 이뤄져 미술 작업하기에 아주 적합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고인돌 마을'을 출품해 제14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는 백의 민족의 후예로서 하얀색을 무척 좋아합니다.

    스스로 '배코'(白乎, 백호)라 부를 정도로 흰색에 심취해 있습니다.
    ◇ 요사채에 머물며 고즈넉한 산사 풍경 그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계절마다 흰색이 지상에 흩뿌려진다고 말합니다.

    봄에는 순백의 매화 꽃잎이 바람에 날리고, 여름은 폭포에서 피어나는 하얀 물보라, 겨울은 온통 설경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한겨울 눈 덮인 겨울 나목을 그린 작품

    지난해에는 한겨울 내내 장성 백양사 요사채에 머물면서 고즈넉한 산사의 눈 내린 풍경을 그렸습니다.

    황 작가는 '그림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동일한 사물 혹은 꽃이라도 어제와 오늘의 색깔이 다르다.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속에 감춰진 색깔이 드러난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오래도록 지켜본 후 비로소 붓을 들어 작업을 시작합니다.

    요즘 화가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카메라 앵글은 사물이 왜곡되기 때문에 깊은 색을 찾기 어렵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정감 넘치면서도 남도의 질박함 담아
    그의 그림은 인간적인 정감이 넘쳐나면서도 남도의 질박함이 드러나는 게 특징입니다.

    전통화에서나 보아왔던 갈필(渴筆)기법을 사용하면서 화면이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로 부드러움 속에서 강한 기운을 느끼게 합니다.

    그는 그림과 붓글씨 뿐 아니라 시와 음악에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다재다능한 예인(藝人)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쓴 '걸레'라는 시가 교내에 게시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문학에 두각을 나타내며 한때 시인이 되고픈 꿈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또한 그는 악기 연주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해 주위 사람을 흥겹게 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단소와 피리를 즐겨 불었데, 평소 지인들과 술자리가 흔연해지면 가지고 있던 피리를 꺼내 즉석 연주를 하곤 하였습니다.
    ◇ 연륜이 쌓일수록 빛을 발하는 '느린 미학'
    ▲작업실에서 틈틈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황순칠 화가

    요즘에는 피아노 연주를 즐겨합니다.

    작업실에 피아노를 들여놓고 매일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한 딸 상희 씨와 함께 매년 연말 음악회를 개최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상은 예술적 저력으로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자 마르지 않는 진정한 프로작가의 정신적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변화와 모험이 없이는 작가로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입니다.

    ▲작업실에 한켠에 놓여 있는 다양한 작품들

    70살인 그는 자신의 미술작품을 지켜내기 위해 미술관을 건립해 국가에 기증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수백 점의 그림을 그냥 묵혀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 입니다.

    그는 "내 그림은 팔리는 그림이 아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 그 가치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이 투박함 속에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듯이, 그의 미술작품 역시 연륜이 쌓일수록 빛을 발하는 '느린 미학'을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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