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주년 ‘5·18’ 추모 열기 고조
해마다 이팝나무 가지마다에 하얀 꽃무리가 올라앉으면 광주사람들은 “다시 5·18이 왔구나”하고 되뇌곤 한다.
망월동 5·18묘역으로 가는 길섶 이팝나무 에도 어김없이 꽃이 피었다.
올해로 ‘5·18민주화운동’ 제43주년을 맞았다.
벌써부터 광주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등 전국 곳곳에서 추모 열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올해 행사 주제를 '오월의 정신을, 오늘의 정의로!'로 정했다.
시민공모를 통해 뽑은 이 주제는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희생했던 5·18정신을 이어받아 정의로운 오늘을 만들자'는 의미라고 한다.
이 주제를 관통하는 ‘정의로운 오늘’을 위해 다양한 행사들을 기획해 추모기간 동안 치러질 예정이다.
이미 유력 정치인 등이 속속 광주를 방문하고 국립5·18묘지를 찾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정부와 여당이 5·18 추모분위기를 띄우는데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기념일을 정부와 여당이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최근 여당과 야당 등 정치권 안팎에서 터진 ‘5·18 발언 논란’의 파장이 워낙 커진 탓에 그 어느 때보다 국민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더더욱 주목되는 점은 여당인 국민의 힘과 제1야당 더불어 민주당의 입장이 ‘5·18’을 앞두고 각각 다른 처신을 보여주는 모양새인 것이다.
우선 ‘김재원 최고위원의 5·18 발언’으로 큰 홍역을 치른 국민의 힘은 이번 ‘5·18행사’에 가뜩이나 공을 들이는 분위기이다.
반면 민주당은 텃밭인 광주의 시의원들이 “5·18이 특정단체 전유물이 아니다”고 강도 높은 비판 목소리를 쏟아내 오히려 각을 세우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이 둘 다 예전에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어찌 보면 입장이 180도 뒤바뀐 것처럼 보이기도 한 것이다.
◇‘국민의힘’ 전야제·기념식 적극 참석
우선 국민의힘은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 예배에 참석해 “5·18 정신의 헌법 수록을 반대한다”고 발언한 김재원 최고위원을 서둘러 잘라냈다.
‘당원권 정지 1년’ 중징계 처분으로 국민의 분노와 여론의 비판을 다독이려 애쓰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5·18기념식에도 소속 국회의원 전원이 참석하기로 했다.
또 18일 광주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도 개최할 예정이고, 전야제 행사에도 당 대표단을 보내기로 했다.
이처럼 보수 여당인 국민의 힘이 ‘5·18정신과 가치’를 확실히 인정하는 모습을 국민 앞에 보여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5·18’을 품는 모습을 통해 갈등과 분열의 대한민국이 아닌 온 국민이 화합하는 대한민국을 위해 집권여당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드러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호남민심 달래기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국민의 힘의 모습에는 정치적 계산이나 해석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정부 여당의 지극히 당연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도 바람직한 시선이 아닐까 싶다.
◇민주당 ‘5·18정신’ 상반된 악재에 곤혹
반면 민주당의 주변은 상당히 곤혹스럽게 꼬인 형국이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당 전체가 기진맥진한 가운데 난데없는 ‘돈봉투 사건’에 이어 ‘김남국 코인거래 논란’까지 불거져 국민적 비판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5·18정신’과는 상반된 악재가 잇따른 꼴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 차원에서 5·18에 제대로 신경이나 쓸 겨를이 있을지 의문스럽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민주당 소속 광주광역시의회 의원 5명이 의회 단상에서 ‘5·18단체와 기관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내 뒤숭숭한 ‘5월 광주’를 연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역 정치권 내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참신하고 용기 있는 비판 목소리’라는 찬사와 이를 반박하는 입장들이 5·18기념일을 앞두고 뒤얽히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일 광주광역시의회 본회의에서 정다은·심창욱·채은지·강수훈·이명노 의원 등 5명은 '응답하라! 1980'을 주제로 5분 릴레이 발언을 통해 5월 단체와 광주광역시, 기념재단 등 기관과 단체의 운영 문제 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정다은 의원은 "5·18은 개인이나 특정 조직의 것이 아니다"며 "광주의 혼과 얼에 관한 문제이고, 대한민국을 바꿨으며, 세계가 기억하는 자랑스러운 민주화의 역사다"고 소신을 피력했다.
용기를 낸 발언인 만큼 이해 관계자들에게는 참으로 아픈 지적일 수 있다.
5월 단체의 역할과 성과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대표인 시의원들의 주장과 비판에 대해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 상황을 지켜보는 일반 시민들의 지배적 여론이기 때문이다.
일부의 반박대로 “선거에 팔아먹는다”는 식의 논점 흐리기로 몰아가는 것은 온당한 대응이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그대로의 민심을 거부하고 외면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것은 또한 ‘5월 정신’에 부합하지도 않고 ‘오월단체’ 답지도 않다.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에 힘 모아야
국민의 힘과 여당의 ‘5·18’에 쏟는 객관적 정성 역시 정치적 이해에 기반한 ‘호남민심 얻기’ 차원으로만 바라봐선 안된다.
이전에 비해 달라진 부분은 명확히 받아주고 인정해 주는 분위기도 필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습관처럼 비판하고 의심만 해서는 국민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오히려 이번을 계기로 5·18정신이 헌법전문에 수록되어 다시는 이념적 갈등과 진실 왜곡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게 여야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싶다.
‘5·18정신’을 자양분 삼은 것이나 다름없는 민주당도 스스로 반성하고, 비판도 받으면서 전국 정당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하고 싶다.
그 역시 5·18정신의 전국화 첨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 신인이나 다름없는 민주당 소속 초선 광주시의원들이 “5·18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은 것은 특정 단체에게만 묻는 게 아닐 것이다.
거대 기득권 진보 정당을 향한 질타의 화살도 분명히 있었을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총선이 1년도 안 남은 시점에서 ‘5·18기념 주간’을 보내는 정치권의 셈법과 시선이 참으로 다르게 느껴지는 ‘5월’이다.
이팝나무 하얀 꽃이 활짝 피는 계절에 기후변화처럼 달라져 가는 정치세태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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