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동 원산막마을은 뒤로는 어등산 자락, 앞으로는 황룡강 줄기가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 마을에 대대로 살아온 79살 김홍규 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집을 나서 근처 밭으로 향합니다.
팔순에 가까운 나이지만 20여 종의 농산물을 재배해 로컬푸드직매장과 시내 식당에 내다 팔아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농사의 달인'입니다.
◇ 젊은 시절부터 농사일에 남다른 재주현재 3천 평(9,900㎡)의 땅에 감나무 과수원(535그루)을 비롯 호박, 수세미, 수박, 가지 등 20여 가지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또한 임대한 3천 평(9,900㎡) 땅에 잔디를 재배하고, 토끼 70마리를 키워 고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김 씨는 젊은 시절부터 농사일에 남다른 재주가 있어 손을 대는 작물마다 쑥쑥 잘 자랐습니다.
수박, 배추, 무를 재배해 서울과 충청도 등 전국에 내다 팔아 번 돈으로 가족들을 부양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마을 주변 논밭을 사들여 농지를 불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예순 살 되던 2006년 7월에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당해 수년간 고통을 겪었습니다.
마을에서 경운기를 몰고 가던 중 뒤에서 승용차가 들이받는 바람에 경운기 엔진에 왼쪽 발목이 짓눌려 심한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전신마취를 7번, 수술을 21번 하면서 7년 4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김 씨는 "주위 사람들은 물론 병원에서조차 '3년 이내에 죽는다'고 했다"고 생사를 넘나드는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 복(福)수박, 단호박, 수세미 등 다품종 소량생산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발목 상처에서 농이 나오고 걸음걸이가 편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퇴원 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시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김 씨는 일찍이 원예농업에 눈을 떠 계절에 맞춰 다품종 소량생산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도시소비자들이 즐겨 찾으면서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복(福)수박, 단호박, 수세미 등을 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세미의 경우 동남아 이주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야채여서 로컬푸드매장에서 순식간에 팔려나갑니다.
"농사일은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당께. 정성들여 가꿔서 매장에 내다 놓으면 모두 팔리거든. 오늘도 로컬푸드매장과 식당 서너 군데를 돌고 왔제"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김 씨는 원산막마을 토박이로서 마을 일에도 팔을 걷어 부치고 앞장섰습니다.
20년간 새마을지도자를 비롯 이장, 반장, 구장, 통장을 도맡아서 했습니다.
마을 뒷산 한전송전탑 건립 보상협상과 마을회관 건립에도 기여를 했습니다.
그 공로로 상도 받았습니다.
◇ 6대조 할아버지가 심은 왕버들 보호수 지정원산막마을 입구에는 수령 250년이 넘는 왕버들나무 4그루가 있는데 김 씨 6대조 할아버지(김재현)가 심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광주시로부터 보호수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습니다.
풍수지리적으로 원산막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소쿠리(삼태기) 형상이라 마을 앞이 허전하면 재물이 빠져나간다 하여 이를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들고 버드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또한 마을 형상이 여자의 자궁과 비슷하다 하여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남성의 정기를 차단하기 위해 동구 밖에 선돌(지주석)을 세워놓았습니다.
김해김씨 우광 종중 후손인 김 씨는 조상 대대로 이어온 고향 마을을 지켜온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큰 아들이 중앙부처 과장급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어 믿음직스럽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씨는 농사 지어서 큰 돈은 못벌지만 10년간 꾸준히 기부도 하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에는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으로부터 '나눔인상'을 받아 뿌듯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김 씨는 "나이가 들어 농사일이 힘에 부치지만 '내일 죽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계속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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