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별·이] '시 쓰는 시내버스 기사' 정윤회 씨

    작성 : 2023-06-23 17:08:38
    문단 등단 14년째…‘카멜레온의 미소’ 등 시집 2권 출간
    승객과의 만남, 버스 차창 너머 세상 서정시로 표현
    개성 넘치는 표현기법으로 독자에게 신선한 감동 안겨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④‘시 쓰는 시내버스 기사’ 정윤회 씨

    “사람들의 가슴속에 메아리로 남는 시를 쓰겠다”

    ▲ 자신이 운전하는 ‘순환01’번 시내버스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정윤회씨. 사진 : 정윤회씨 제공


    매일 새벽 광주시민의 발인 ‘순환01’번 시내버스를 운행하며 광주의 하루를 여는 대원운수 운전기사 정윤회 씨(55).

    그는 오늘도 무등산 위로 밝아오는 햇살을 바라보며 승객의 안전과 무사고를 기원하는 24년 차 배테랑 기사입니다.

    오전반, 오후반 2개 조로 번갈아 근무하는 그는 시내버스 운전석이 승객을 만나는 소중한 접점이면서, 동시에 서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그 만의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오전반의 경우, 새벽 5시 40분에 차고지를 출발한 그는 오후 2~3시까지 광주시내를 순환하며 차창 너머 세상을 한 땀 한 땀 그의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그가 운전석에 앉아서 마주하는 차 안과 차 밖의 풍경은 그에게 남다른 시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뷰포인트(View point)입니다.

    ◇“서민들의 애환을 시로써 진솔하게 표현하고 싶어”

    그는 직업상 날마다 운전대를 잡고 있지만 문단에 등단한 지 14년째 되는 시인입니다.

    “사춘기 시절부터 틈틈이 낙서하듯이 썼어요. 이게 시인지 뭔지도 모르고 제 감정, 느낌을 고백하듯이 썼지요. 신춘문예에도 몇 번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경철(작고) 시조시인을 만나서 그분의 추천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지요”라고 등단하게 된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지난 2009년 아시아서석문학 신인상 수상으로 문단에 나온 정 시인은, 송수권(작고) 시인으로부터 시론 수업을 받았으며, 김석문 서석문학 발행인으로부터 습작지도를 받은 후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봄 틈틈이 쓴 시를 모아 두 번째 시집 ‘카멜레온의 미소’(도서출판 서석)를 펴냈습니다.

    정 시인은 등단 초기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시풍을 선보여 주목을 받아 왔습니다.

    시집 표제 ‘카멜레온의 미소’가 말해주듯 자기만의 기발한 표현기법으로 독자에게 신선한 미적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 두 번째 시집 ‘카멜레온의 미소’ 표지


    그의 시적 소재는 일상 속에서 관찰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생업 현장인 시내버스 안에서 일어난 사연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다룬 작품들이 적지 않습니다.

    “시내버스 안으로 지팡이가 던져진다 /안쓰러워 부축이라도 하려면 역정을 내는 /할머니가 사력을 다해 오르는 동안에 /뒤따르던 차들이 클랙슨을 울려대고 /…/오늘도 체면 따윈 아랑곳없이 /요금은 애비어미도 없냐는 말로 대신하고 /너털웃음 한바탕에 핸드폰을 꺼내든다”(시 ‘얼룩진 운행일지’)

    이 시는 광주-화순 간 시내버스 운행 중 조우한 시골 할머니 승객의 억척스러우면서도 정감 어린 행동을 익살스럽게 표현했습니다.

    또 다른 작품 ‘도곡 할머니’는 농촌과 농민의 애잔하고 어두운 현실을 다독이는 마음을 담아 담담하게 그렸습니다.

    “능주에서 출발하는 첫차 첫 승강장에서 /쑥 달래 냉이 미나리가 한가득 오르고 /화순 오일장에 가는 /도곡 할머니가 뒤따라 오르면 /두 평 남짓 시내버스 안에는 시장이 선다 /수년 전 배추파동에 밭을 갈아엎던 해 /시름에 잠긴 외아들이 농약을 먹고 세상을 떠난 뒤 /사는 낙도 묻었다고 울먹거렸던 할머니는 /내 차의 단골손님이다”(시 ‘도곡 할머니’)

    “저는 문학이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미사여구만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보고 들은 것, 혹은 뉴스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을 시의 소재로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시내버스 승객과 같은 서민들의 애환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그의 시적 지향점은 삶의 현장에 머물면서 이웃들과 더불어 소소하게 소통하는 행복을 꿈꿉니다.

    ◇“로또에 당첨되더라도 시내버스를 결코 떠나지 않을 것”

    그의 시적 표현에는 풍자와 해학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적 특징이 도드라집니다.

    “칼바람이 유령의 울음소리 같고/ 메마른 기침소리만 간혹 들려오던 음산한 집이/ 요즈음 북적북적 북새통이다”(시 ‘한낮에 우는 닭’).

    ▲ 광주 서구 운천저수지 부근 카페에서 필자와 인터뷰하는 정윤회 시인. 사진 : 필자 촬영

    이 시는 시골 전답이 사업지구로 편입돼 거액의 보상금을 받게 되자 도회지로 나간 자녀들이 이를 노리고 재산다툼을 벌이는 광경을 실감 나게 표현한 대목입니다.

    “은밀한 밤이면 등대를 밝히는 그녀 덕분에/ 우윳빛 그윽한 조가비 바다 향을 알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고리타분하지/ 연애가 꿀맛인데 밥맛이라고/ 클라이맥스, 팔색조로 날아보면 그만이다”(시 ‘그녀의 애완견’).

    이 시는 여주인으로부터 사랑받던 애완견이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져 비참한 신세가 된 유기견을 묘사한 구절입니다.

    이처럼 정 시인의 시는 기상(conceit)과 아이러니를 주로 활용함으로써 흥미를 유발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집 발문을 쓴 노창수 시인(한국문협 부이사장)은 “정윤회 시인의 작품은 현재형 문장의 구조적 전개, 진지한 서정성의 탈환, 대상을 향한 겸허한 시학이 특징”이라며, “시의 흐름이 긴박하여 읽는 재미를 더하는 가독성도 있다”고 평했습니다.

    정윤회 시인은 “설사 로또에 당첨되어 떼돈을 벌더라도 시내버스를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거친 풍랑과 싸우며 고기를 잡는 어부처럼 시심을 잃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속에 메아리로 남는 시를 쓰겠다”고 새로운 포부를 밝혔습니다.

    한편, 정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면서 광주문인협회 이사와 광주시인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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