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서구 금호월드를 인근 사거리.
한 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무언가에 쫓기듯 바빠집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도 연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긴장한 모습입니다.
최근 이곳 대로변에 40여 마리가 넘는 쇠백로 무리가 약 20그루의 향나무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입니다.
쇠백로는 요란한 소리로 울어대며 차도와 인도를 쉴 새 없이 오갑니다.
인근 광주천에서 물고 이동하다 떨어뜨린 물고기들은 인도 곳곳에 떨어져 부패한 상태로 방치돼있기도 합니다.
아파트와 상가가 밀집한 거리를 하얗게 뒤덮은 배설물을 막고자 임시 천막이 설치됐지만 막을 수 없는 악취와 날리는 깃털에 길을 걷는 주민들의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약속 장소로 향하기 위해 정류장에 앉은 이준원(21세, 대학생) 씨는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쇠백로의 배설물을 맞을까 불안하고 무섭다"며 "날씨가 더워지면서 악취가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고 걱정합니다.
인근 자동차 매장에서 나오던 김 씨(35세)는 "쇠백로 깃털과 먼지가 날려 통행에 불편함이 느껴진다"며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고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쇠백로는 예로부터 풍년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길조로 여겨졌지만, 최근 광주 도심에 나타나면서 시민들의 '애물단지' 신세가 됐습니다.
-실효성 없는 대책에 매년 반복되는 '풍선효과'
지구 위도 남북을 오가며 생애 주기를 완성하는 특성을 가진 쇠백로는 번식을 위해 매년 한국을 찾아 약 3월부터 9월까지 머무릅니다.
광주광역시 역시 매년 곳곳에 철새가 나타나지만 서구청은 쇠백로가 2019년부터 서구 화정동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고 말합니다.
올해 쇠백로의 악취와 소음으로 인한 민원은 6월 12일 기준 16건으로, 1년 내내 14건이 접수됐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많은 더 민원이 들어온다고 서구청 측은 설명합니다.
통상 지자체에 쇠백로와 관련한 민원이 들어오면 쇠백로가 둥지를 튼 나무의 가지를 잘라내는 작업을 통해 쇠백로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도록 유인합니다.
서구청 역시 계속되는 민원에 강도 높은 가지치기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서구청은 "원래 쇠백로가 서식하던 신세계와 이마트 대로변 향나무 40~50여 그루 나무의 가지를 잘라내 쇠백로가 오지 못하게 한 상황이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나뭇가지를 잘라내 쇠백로를 쫓는 것은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 아닌 듯 보입니다.
나뭇가지를 잘라내자 이제 막 알에서 태어난 어린 쇠백로가 둥지에서 떨어져 미아가 되는 사례가 발생하게 된 겁니다.
다친 야생동물을 치료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광주야생동물구조센터엔 어미를 잃은 어린 쇠백로가 집단으로 구조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쇠백로 민원을 해결하려 서구 농성동 일대의 나무를 베어낸 결과, 80여 마리의 어린 쇠백로가 어미를 잃고 광주야생동물구조센터로 들어왔습니다.
광주야생동물구조센터의 배성열 센터장은 "미아가 된 쇠백로는 매년 구조되지만, 작년에만 한 번에 80여 마리의 어린 쇠백로가 구조됐다"며 "지난 6월 12일에도 나무 가지치기 작업으로 어미를 잃은 어린 쇠백로가 14마리 구조됐다"고 말했습니다.
쇠백로를 쫓기 위해 가지를 잘라내도 쇠백로는 결국 멀리 가지 못하고 인근 나무에 다시 둥지를 틉니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정진영(27세) 씨는 "매년 여름 쇠백로를 목격하고 나무를 잘라내는 것도 보았지만, 주변에 다시 둥지를 트는 모습을 봐왔다"며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장 불편한 문제를 해결해도 다른 곳에 다시 문제가 다시 나타나는 쇠백로의 '풍선효과'는 매년 반복되는 문제입니다.
-도심 속 불편한 동거..'공존' 위한 방안 없나?
쇠백로가 도심에 나타나 주민과 갈등을 겪는 일은 광주시만 겪는 문제가 아닌, 쇠백로의 번식 기간에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이에 백로를 대체 서식지로 유인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수포가 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2016년, 대전광역시가 쇠백로 등 철새로 인한 주민과의 갈등을 깊어지자 서구 월평공원에 백로 모형과 둥지를 설치하고 녹음된 쇠백로 울음소리를 틀어 공원으로 유인했습니다.
하지만 설치 후 번식 기간에도 쇠백로가 공원을 찾지 않아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서구청은 이 같은 쇠백로 유인 실패 사례가 있어 쇠백로의 이주 계획은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합니다.
대전시의 실패 사례를 바탕으로 쇠백로의 서식지를 보호하면서, 쇠백로와 공존의 길을 연 지자체도 있습니다.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 일대 야산에도 4년째 쇠백로 등 철새들이 찾아와 무리 지어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곳 야산에 어림잡아 3,500마리 이상의 철새가 900개 이상의 둥지를 틀고 서식해 주변 아파트와 초등학교의 피해와 민원이 계속되는 상황.
이에 청주시는 지난 16일, 백로 서식지를 보호하면서 주민들의 피해를 해결하기 위해 송절동 야산 일대를 청소하는 환경정비에 나섰습니다.
민원의 주범인 악취와 소음을 해결하기 위해 청주시 공무원과 자연환경보전 청주시협의회 회원 등 총 100여 명이 쇠백로의 배설물과 바닥에 떨어진 쇠백로의 먹이, 오염된 나뭇가지 등을 수거하고 숲 안을 소독했습니다.
올해 4번째로 진행된 환경정비 작업엔 1t에 달하는 쓰레기가 모였고 철새가 떠날 때까지 앞으로 매달 두 차례 정도 정비 작업을 진행해 주민 피해를 최소화할 계획입니다.
또 청주시는 환경을 지키는 선에서 철새와 주민이 공생하는 최적의 방안을 마련하고자 민간 생태조사 전문기관에 용역을 의뢰해 백로와의 공존을 모색하기로 했습니다.
용역 결과 환경·위생 관리, 번식 밀도 조절 등을 통한 현 번식지의 합리적 관리·이용, 모니터링 체계 구축, 백로 시민 공원 조성 등 여러 수행 과제가 도출됐습니다.
광주 서구청 또한 쇠백로를 쫓기 위한 서식지 파괴보다, 공존을 위한 조치를 진행 중입니다.
"지자체는 쇠백로를 쫓는 것이 아닌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며 "쇠백로가 둥지를 튼 나무 아래 천막을 설치해 주 2회 이상 점검을 나선다. 내부 청소과와 협의해 배설물 물청소도 진행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서구청은 밝혔습니다.
-매년 서식지 잃는 쇠백로의 '내 집 마련'은 언제쯤..
환경 전문가는 쇠백로가 도심으로 유입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 '도시화'를 꼽았습니다.
광주환경운동연합의 광주천 지킴이 홍기혁 회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천동 숲에 쇠백로 떼가 모여 살았지만, 도시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지금은 자취를 감춘 상황이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홍 회장은 쇠백로가 도심 속에 자리 잡게 만든 건 계속해서 서식지를 빼앗은 인간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서구청도 "쇠백로가 도시화로 서식지를 잃어 도심에 나타나는 것이다"며 "시민분들이 불편을 겪으시겠지만, 곧 떠나는 철새인 만큼 조금만 양보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결국 인간에 의해 설 곳을 잃는 쇠백로.
전국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는 쇠백로 문제에 서식지를 보호하면서 주민들의 피해를 해결하는 공존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쇠백로를 바라보던 60대 이웃 주민은 쇠백로에게 넉넉한 마음을 내어주며 말합니다.
"한 계절만 보내고 곧 떠나는 귀한 새들인데 같이 살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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