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령왕릉 말고는 누가 묻혔는지 알 수 없었던 충남 공주의 백제 왕릉 일곱 곳 중 2호분의 주인이 밝혀졌습니다.
발굴된 어금니를 분석한 결과 주인공은 만 14세에 죽은 '소년 임금' 삼근왕(재위 477~479)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백제 왕릉의 주인이 밝혀진 것은 공주 무령왕릉과 익산 쌍릉(무왕)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공주 백제 왕릉 2호분에서는 정교한 금 귀걸이와 반지, 구슬 같은 유물도 출토됐습니다.

국가유산청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023년 9월부터 사적인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1~4호분을 재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곳은 백제가 웅진(공주)에 수도를 둔 웅진 시기(475~538)의 왕릉 7기가 모여 있는 곳이지만 20세기 초 도굴당한 이후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도굴을 면한 무령왕릉만 1971년 모습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연구소는 2호분 안에 남아 있는 1t 분량의 흙을 구멍이 촘촘한 채반 위에 흙을 놓고 씻어내는 방법에서 어금니로 보이는 치아 2점과 뼛조각 일부를 찾아냈습니다.

법의학 분석 결과 어금니는 10대 중후반의 청소년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백제 웅진 시기, 10대에 죽은 백제 왕은 한 명뿐으로 23대 삼근왕입니다.
삼근왕의 할아버지는 21대 개로왕(재위 455~475)입니다.
개로왕은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도주 중 고구려군에게 피살됐습니다.
삼근왕의 아버지 22대 문주왕(재위 475~477)은 웅진으로 도읍을 옮겨 백제의 명맥을 이었으나 귀족인 해씨 세력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만 12세에 삼근왕이 즉위하고 해씨의 반란이 진압됐으나, 삼근왕은 곧 사망했습니다.
어려서 죽은 삼근왕은 후사가 없어 개로왕의 직계가 끊기고,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이 24대 동성왕(재위 479~501)이 즉위했습니다.
2호분의 주인이 삼근왕이라면, 나란히 조성된 1~4호 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개로왕의 직계인 아버지 문주왕을 비롯해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왕족들로 추정됩니다.
개로왕 직계가 아닌 무령왕의 무덤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어금니와 함께 새로 출토된 부장품은 그 같은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도 수준 높은 백제의 금속공예 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돋보이는 금귀걸이 한 쌍은 길이 6.5㎝로, 한 점만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금귀걸이 가운데 부분에선 줄무늬 장식이 새겨진 그물 모양의 씌우개 안에 청색 유리옥을 넣은 정교한 금세공 기술이 드러납니다.

2호분에서 함께 출토된 직경 1.9㎝의 반지는 은에 줄무늬를 새기고 금실 5개를 이어 붙은 것처럼 금으로 도금한 것입니다.
경주 황남대총에서 나온 신라 반지와 비슷한 모양이어서 당시 백제와 신라의 교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함께 수습된 유리옥 1,000점 중 황색·녹색 구슬에 사용된 납 성분은 산지가 태국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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