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폐교에서 전통 ‘속옷 문화’ 배워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주암호 상류 산골에 옛날 여인들이 즐겨 입었던 속옷 ‘고쟁이’를 다시 직접 만들어 입어 보는 이색 수업이 한창입니다.
과거 문덕면 일대 수몰민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학교 분교가 폐교되면서 이곳 폐교사에 차려진 사단법인 남도전통문화연구소(이사장 한광석)가 ‘고쟁이 학교’를 개설한 것입니다.
아직은 입소문을 듣고 광주와 순천, 나주, 보성지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이곳 산 속에 들어와 자연과 함께 숨 쉬며 그 호흡으로 옛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손수 지어 입으셨던 전통 고쟁이를 체험하고 있어 잔잔한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고쟁이’는 조선시대 여성들이 겉옷과 속옷의 중간에 겹쳐 입었다고 합니다.
지난 20일 남도전통문화연구소를 찾아가 한광석 이사장이 문인화가 한상운 화백, 노은희 전 조선대 산업디자인학과교수, 재야인사 이강·이완씨, 김영욱 광주리봉사단장, 한국화가 김효정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쟁이 유물과 수업에 대해 나눈 일문일답을 통해 ‘고쟁이 학교’를 소개합니다.
◇안동·전주서 옛 고쟁이 원본 발굴 소장
△‘고쟁이 학교’는 왜 하게 되었나?
=학교에 와서 보면 알겠지만 원래 안동 고쟁이를 갖고 와서 '고쟁이 학교'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전주에 아는 분이 자기 시고모 것인데 지금 살아계시면 110살이나 된다고 그러면서, 그 시고모가 만들어 놓고 안 입은 그 고쟁이들을 내게 줬습니다.
안동 고쟁이는 가랭이가 각이 졌는데 지금부터 한 100에서 150년 정도 된 겁니다.
전주에서 온 것은 저고리 소매처럼 보드랗게 들어와 속옷이라는 개념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각이 진 것은 속옷인지 겉옷인지 잘 모릅니다.
△ 저고리, 치마도 있는데 ‘고쟁이’를 선택한 이유는?
=저고리, 치마는 그냥 단순한 외피에 불과 하잖아요. 원래 여자들이 한복을 제대로 갖춰 입으면 아래에 7개 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위에는 그냥 저고리 하나 걸치는 그만이고, 그 모든 것을 다 갖춰야 이제 폼이 나거든요.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게 고쟁이예요.
고쟁이가 안팎의 경계선이면서 실용과 폼을 같이 갖고 있어요.
근데 인제 우리가 흔히 고쟁이하면 가래고쟁이 라고 가운데 터진 것을 얘기한다. 그것은 실용 때문에 사람들이 터서 입었다.
◇‘안팎의 경계선’ 실용과 폼 같이 갖춰
△누가 가르칩니까?
=누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업 참가자들이 여기에 와서 옛날 고쟁이 샘플의 본을 떠 가지고 천을 자르고 집에 가서 바느질을 해서 다시 꼼꼼하게 방식과 기법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숙달되면 제가 쪽물 염색한 천을 주어 자기만의 고쟁이 작품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본인이 직접 바느질을 하나요?
=물론이죠. 손으로 만들어 봐야지 뭔지, 어떠한 구조를 갖고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는지에 대해서 이해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야 나중에 자기가 이것을 갖고 자기 체형에 변형을 일으켜서 자기 옷을 만들어 입을 때 자기가 그 감각을 알아야 ‘이걸 여기는 요렇게 해주시오, 여긴 요렇게 해주시오’ 하고 남한테 시키지요.
△참가는 신청 받아 하는 거예요?
=오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든지 오라고 합니다. 이게 옛것을, 옛 고쟁이라는 그 실체를 한 번 보기도 하고, 자기가 직접 만들어서 입어보기도 하고요.
그게 과연 현대적인 패션 감각으로 다시 되살릴 수도 있을 것인가, 그것도 해보고 해야 여러 가지로 이익이 많을 거 같거든요.
◇현대 패션 감각의 겉옷 작품으로 재현
△이 ‘고쟁이 학교’는 남도전통문화연구소 프로그램 일환인가?
=그렇습니다. 나중에 전시회도 하고 패션쇼 같은 것도 해볼 생각입니다.
△몇 명이 수강 합니까?
=10여명 정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전직 디자인과 교수도 있고 한국화를 전공한 20대 화가도 있습니다. 물론 관심 있는 일반인도 있고요.
△남자는 없죠?
=남자들도 참여합니다. 3명 정도. 남자들도 저걸 꼭 여자 옷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청바지처럼 남녀공용으로. 집에서는 잠옷 겸 실내복으로도 좋고요.
△수업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제 3개월째입니다. 매월 셋 째 주 토요일에 이곳 학교에 나와 함께 수업을 진행합니다. 이렇게 11월까지 해서 가을에는 전시회와 패션쇼 행사를 할 계획입니다.
△아까 직접 천연염색한 광목천을 준다고 했는데?
=하나를 만들어본 사람들은 진짜 고쟁이를 만들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수업 참여자들이 가을쯤에 행사를 하게 되면 내가 내 천을 하나씩 주어 작품이 완성되면 그것으로 전시회도 하고 패션쇼도 할 예정입니다.
◇“해외 패션계에 내놓으면 대박날 것”
△ ‘속옷과 겉옷의 경계선’이란 아이디어가 뜻있게 와 닿는다.
=지금 여기서 이렇게 뭔가를 구체적으로 뜯어보고 실제로 해봐야 되잖아요. 요즘 사람들은 속에 팬티 하나 외엔 안 입잖아요.
그런데 속옷 하나 입고 저렇게 펑퍼짐한 것 입어 봐요. 특히 여름에는 삼베나 모시 같은 걸로 해 입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좋겠어요. 폼도 나고요.
△염색만 잘하면 외국에서도 잘 먹혀들 것 같다.
=인제 시도해 보는 겁니다. 저기서 만약에 가능성이 있으면 최고급품으로만 뽑아내는 것이죠.
△고쟁이 만들기가 체험으로 끝나면 아쉬울 것 같은데?
=이런 형태의 옷을 만들어보면, 실제로 내가 쪽물들인 무명을 주어 그걸로 이것을 만들어 겉에 입고 다니는 옷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지금 나이 든 사람의 기준이 아닌 젊은 사람의 기준으로요. 왜냐하면 몰라야 출발이 신성합니다.
우리는 고쟁이라는 내용을 다 알고 있으니까 이것을 겉에 입고 다니면서 남이 보면 뭐라고 하면 어쩔까 하는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런 생각이 없어야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오히려 해외 패션계에 알리면 호응을 얻을 듯한데?
=아까 한상운 금봉미술관장께서 우리들은 고쟁이가 속옷이라는 관념이 있으니까 이런 것을 만들어서 해외에 나가면 굉장히 좋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뉴 패션으로 진짜 대박이 날 것이라고요. 여성분들이 요구하는 기능하고 디자인은 고쟁이에서 전혀 새롭고 처음 봤던 그 심플한 걸로 하면 해외에서 큰 반응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한 세기 세월 지나 박물관 보물 가치
△이것들을 언제 구한 거예요?
=안동 것은 재작년(2021년), 전주 것은 작년(2022년)입니다.
아는 분에게 안동 것을 얘기 했더니 자기 형수가 시고모 것이라고 하면서 전주에서 나한테 보내왔습니다.
△한 세기를 지난 박물관에 가야할 보물인데 현재의 값어치는?
=이거 실은 가격은 얼마 안됩니다. 연락을 받자마자 내겐 귀한 거니까 밤중인가 새벽인가 였는데 구하러 갔었죠.
하지만 일반인이나 골동품상 이런 사람들에겐 일단 천이라 값이 별로 없습니다.
가치를 모르니까요. 그냥 “옛날 밍베(면천) 구만!”하고 마는 거죠. 밍베가 가장 싸구려였고 재활용이 안되었습니다.
그냥 시집 보내는 딸 혼수용이죠.. 이것 자체가 오래 보관할 수가 없어요. 이게 특수하게 보관하면 모를까 놔두면 자동으로 부스러집니다.
△그럼 제 주인을 만났군요?
=그렇죠. 여기 오는 순간이 값이 나가죠. 그런데 인제 이 가치를 아는 사람이 만났다고 하면요.
예를 들어서 석주선박물관과 만나버렸다 그러면 나하고 가격 갖고 계속 올라갔겠지요. 결국은 그런데서 와서 붙으면 내가 못해보죠.
◇100년 전 안동 양반집 딸 혼수 10벌
△안동과 전주, 그러니까 경상도와 전라도의 고쟁이의 특징은?
= 여기에 있는 것을 보면 안동 고쟁이는 전부 손바느질입니다. 전주 고쟁이는 재봉틀 바느질이에요.
안동 것은 100년 전 것으로 추정되고요. 전주 것은 주인이 살아 있으면 110살쯤 된다고 하니까 해방 전후쯤에 만들어져 80여년 된 것 같습니다.
이것이 시집갈 때 혼수 세트로 해 간 것입니다. 고쟁이는 남자는 입지 않았습니다.
△안동 고쟁이를 자세히 설명해 달라?
=이게 안동서 이 상자 뚜껑이 닫힌 채 그대로 왔어요. 대나무 상자에 담겨서요.
상자 안에는 한지로 입히고 겉에는 안동 쪽에서 나는 굵은 삼베로 겉을 입혀서 칠이 돼 있어서 재미있는 것일 거예요.
옷감도 전통 경상도 무명인 ‘경목’을 써서 당시로는 최고급품이라고 봅니다.
△상자 안에 고쟁이만 담은 이유는?
=이 옷 주인 여자가 이것을 시집갈 때 해 갔을 거 아니에요.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이 석작 안에서 한 번도 열지 않고 그대로 나온 것이에요.
여기에 10벌이 들어 있었어요. 안동 것 중에서 수업용 샘플은 하나만 내가 일부러 튼 겁니다.
◇80년간 입지 않은 전주 규방의 속곳
△전주 고쟁이의 보존 상태는?
=전주 것도 안 튼 것입니다. 왜냐면 이것의 신성함이 있어야하니까요.
이런 것을 다 터놓고 내가 그냥 이렇게 안 튼 채로 왔다하면 그런 거는 사람들이 안 믿잖아요.
전주 것도 본 뜨기 위해 하나만 텄습니다. 처음 만든 그대로 바느질 실로 한 벌씩 꿰매져 있습니다.
△옛 여인들이 시집갈 때 고쟁이를 여러 벌 해 간 이유?
=시집갈 때 친정에서 혼수를 얼마나 해 가느냐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집안 부와 권위 상징일 것입니다.
옛날 부잣집 딸은 시집가면서 죽을 때 까지 입을 옷을 다 해갔다고 합니다. 이 고쟁이가 그런 것으로 안동과 전주의 부잣집에서 만들었던 것으로 봅니다.
△손바느질로 그 많은 옷을 어떻게 만들까요?
=버선 같은 경우만 해도 식구들이 많으면 천 켤레 이천 켤레 이렇게 해 갑니다.
그것을 이 집에 몇 켤레, 저 집에 몇 켤레하고 만드는 것을 맡겨요. 그것을 싸는 보자기도 다 만들어서 했어요.
그래서 부잣집 딸이 시집을 가면 그 근동에 바느질 하는 사람들이 몇 년 동안 다 먹고 살았다고 해요.
△이 귀한 유물을 갖고 이런 수업을 하는 의미는?
=그래서 처음에는 이것들만 가지고 염색을 해서 내 작품으로 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유물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라도 쪽에서는 아예 이젠 이런 것이 없어요.
이것을 여러 사람들한테 맛이라도 보게 해 주자 싶어서 이것을 갖고 “고쟁이를 만듭시다”하고 방을 붙였는데 너무 사람들이 고쟁이를 몰라요. 나는 여자들은 웬만하면 다 알 줄 알았어요.
△이 시골 산 속에 차린 ‘고쟁이 학교’의 소박한 목표는?
=그래서 고쟁이 옷들이 그대로 좀 더 놔둔다고 썩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많이 보고 응용을 해서 만들어 가지고 고쟁이가 좋은 방향으로 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고쟁이 학교에서 일 년 동안 최소한 열 명 정도라도 사람들이 배워서 퍼지게 되면 이 고쟁이가 다시 잘 알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산 속 ‘고쟁이 학교’에서는 뭘 배울까?”
남도전통문화연구소 이색 ‘고쟁이’ 수업
100년 전 안동·전주 부잣집 혼수옷 본 떠
옛 여인들의 내밀한 복식 풍속 직접 체험
20~60대 남녀 ‘나만의 고쟁이’ 손수 제작
올 가을 천연염색 작품으로 전시·패션쇼도
남도전통문화연구소 이색 ‘고쟁이’ 수업
100년 전 안동·전주 부잣집 혼수옷 본 떠
옛 여인들의 내밀한 복식 풍속 직접 체험
20~60대 남녀 ‘나만의 고쟁이’ 손수 제작
올 가을 천연염색 작품으로 전시·패션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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