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단지를 지나 숲으로 이어지는 무등산 자락 초입에 위치한 집 한 채.
주변의 높은 나무들 속에 붉은빛이 나는 동판으로 덮인 이 집은 생각을 따라가는 집, '추사재(追思齋)'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을 맞이하는 건 1.5층 높이의 서재, 2만 5천 권 분량의 책들이다.
도서관을 방불케 한다.
▶ 인터뷰 : 윤창륙 / 조선대 치의학박사 교수
"이 집의 이름은 '추사재'라고 합니다. 따라올 추(追), 생각 사(思).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 보고 미래를 지향하는 집. 생각을 따라가는 집이라고 해서 '추사재'라고 명명 했습니다."
총 3층으로 된 이 집은 1층이 책으로 가득하다.
사람의 집이 아닌 책의 집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책을 소장하게 되었을까?
▶ 인터뷰 : 윤창륙 / 조선대 치의학박사 교수
"아버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아버님이 다독가이셨고 책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계셨는데 저희 형제가 굉장히 많았거든요. 형제가 7형제로 많았는데, 그중에 제가 책 읽기를 가장 좋아했어요."
어린시절 윤 교수의 책 읽기는 책을 많이 읽던 아버지와의 경쟁 의식에서 시작됐다고 고백한다.
그 경쟁 의식의 발로가 지금은 굉장히 감사하다고.
이 많은 책을 관리하려면 어디에 어떤 책이 있는지 알아야 할텐데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 인터뷰 : 윤창륙 / 조선대 치의학박사 교수
"여기 있는 책들 전부 엑셀로 다 저장이 돼 있습니다. 그리고 분류는 보통 가장 많이 하는 분류가 듀이 분류법이랑 우리나라 십진 분류법이 있는데 그건 너무 학문적인 분류고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YES24라든지 아니면 알라딘이라든지 아니면 교보문고라든지 이런 데 분류하는 체계가 아주 간단하지 않습니까? 넘버링이 다 돼 있습니다."
책은 햇빛이나 습기에 민감하다.
책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관리도 필요할텐데, 이 많은 책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 인터뷰 : 윤창륙 / 조선대 치의학박사 교수
"그래서 이 집을 지을 때 여기 층고가 4.5m거든요. 보통 아파트는 2.4m입니다. 모든 책은 전부 습기랑 자외선이 제일 약하기 때문에 햇빛이 안 들어오도록 해야 하는 거고요. 그래서 고층 창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다음에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서 단열을 잘해놔야 되거든요. 단열을 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지금 계속 습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항상 제습기를 설치해 놓고 있습니다. 습도를 55% 정도로 맞춰놓으면 책에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사실 이사할 때 책을 옮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추사재의 책은 무려 2만 5천 여 권.
어떻게 다 옮겼을까?
▶ 인터뷰 : 윤창륙 / 조선대 치의학박사 교수
"젊었을 때 이사를 열몇 번 다니다 보니까 전세 살면서 이곳저곳 옮기고 다녔잖아요. 그때마다 제일 이삿짐 센터에서 싫어하는 게 책이더라고요. 책을 옮길 생각을 하니까 그 이삿짐 센터의 직원의 눈초리가 딱 꽂혀서 에이 내가 옮겨야겠다 하고 차로 7개월 동안 옮긴 거예요. 처음에는 차에다 싣는 요령이 없으니까 한 200권, 300권 하다가 나중에는 차에다 운전수 빼놓고 꽉 채우면 650권, 700권이 실려지더라고요. 쭉 옮기다 보니까 체중이 7kg이 빠지고 그 당시에 운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에 책을 7개월 동안 여기로 다 옮긴 거예요."
어린시절 윤 교수는 헌책방 매니아이기도 했다.
그런데 조금 독특한 매니아였다..?
▶ 인터뷰 : 윤창륙 / 조선대 치의학박사 교수
"청계천 복개하기 전에 한쪽에 전체가 다 헌책방이 있거든요. 헌책방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있으면요. 저 끝에서부터 여기까지 무슨 책이 있는지 다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어요. 매일 자주 와서 보니까요. 그러다 보면 사장님이 손님이 뭐 찾으러 오면 기억이 안 나 모르잖아요.
그러면 "야 창륙아 그 책 어디 있냐"고 그러면 "여기 있는데요", "그 책 찾아와" 그러면 가져다 드리고 정말 거기서 갖고 싶은 책들은 돈이 없으니까 계속 뭉그적뭉그적 거리고 있어요 그냥. 읽은 척하기도 하고 읽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야 너 돈 없지, 그래 가져가" 그렇게 얻은 책들도 수백 권 돼요."
- 삶의 지혜?
"삶의 교활함이죠."
책은 집안 곳곳에 있다.
특히 3층으로 올라가면 집을 짓기로 마음 먹고 집에 대한 공부를 위해 읽은 책이 가득하다.
▶ 인터뷰 : 윤창륙 / 조선대 치의학박사 교수
"처음에 집을 지을 때 언덕 위 하얀 집, 예쁜 집이 머릿속에 그런 로망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도 처음에는 그런 언덕 위 하얀 집을 생각했는데, 건축 관련 책 읽다 보니까 그건 아무 쓰잘 데가 없는 집이더라고요. 나쁜 집이 아니고 내가 살 집이기 때문에 집은 쇼룸이 아니거든요. 보여주기 위해 짓는 게 아니고 내 스스로 필요한 집을 내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그래서 책을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까 집이라는 것은 내 생활을 가장 적절히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집을 짓기 전에 책을 몇 백 권을 읽어봤어요. 읽어보고 나서 집이라는 건 결국은 이런 거구나 하고 집을 짓기 위해 내리읽은 책들입니다."
- 인터넷의 정보와 책이 주는 정보, 사실 효율적인 건 어떻게 보면 인터넷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빠르고 편리할 수도 있는데 제가 책에서 얻은 정보랑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랑 머릿속에 입력됐을 때 기억의 깊이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책으로 읽을 때랑 인터넷 읽을 때랑 내용이 똑같더라도 책으로 읽을 때 훨씬 더 깊이 들어와요.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책은 읽는 거고요. 인터넷은 보는 거거든요. 또 책은 그걸 쓰기 위해서 사전에 여러 가지 조사를 많이 하거든요. 인터넷은 그렇게 안 하거든요. 거기는 자기들 책임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되는 대로 막 쓰는 게 많거든요. 그 정보의 오류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인터넷은 정보 보고이기도 하지만 정보의 쓰레기통이기도 하잖아요. 중요한 것들은 인터넷에 다 찾아서 검색할 수 있지만 책을 찾아서 읽어보고 그리고 이 작가가 왜 이런 의식으로 썼나 생각해보는 습성이, 그냥 그럴 때 좋아요."
이렇게 많은 책을 읽은 독서가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뭘까?
또 우리에게 추천해주는 책은 뭘지 궁금해진다!
▶ 인터뷰 : 윤창륙 / 조선대 치의학박사 교수
"젊은 사람들 물건 쇼핑할 때 어떻게 합니까? 인터넷에 검색하지 않습니까? 영화 볼 때 인터넷 검색하면서 영화평을 보고 저는 그래서 매일 하루에 1시간 내지 2시간 정도씩은 각 서평을 쭉 봅니다. 정말 모든 책들이 다 큰 영향을 주기도 하고 어떨 때는 읽고 난 다음에 이건 킬링 타임용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책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내 지식을 좀 넓히고 그렇지만 이 책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바뀐다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책 중에서 이게 좋다고 그러는데 그 책 읽어볼 때 나한테 아무런 가망이 없는 책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사실은 다른 사람이 영향을 받은 책인데 그분이랑 나랑 입장이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책이란 거는 어떤 한 사람한테 이게 다 좋다 그럴 수는 없는데 하나는 확실한 건 있습니다. "모든 책이 전부 나한테 이로운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건 얘기할 수 있지만 정말로 내 인생에 정말 크게 감동을 주거나 그런 책들은 불과 흔치가 않아요."
자신이 관심이 가는 책에 먼저 손을 뻗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가장 짧은 글, 시라든지 수필 등 단문을 읽고 마음이 한가로울 때 긴 호흡의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그리고 책이 주는 이로움, 가장 큰 장점으로 "배려심"을 꼽았다.
▶ 인터뷰 : 윤창륙 / 조선대 치의학박사 교수
"책은 읽다 보면 인내거든요. 인내심이라는 게 결국은 사회에 나가서 자기 불편했을 때 그걸 감당하는 능력이거든요. 그런 능력 때문에 책 읽는 아이들이 결국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좀 깊구나 그런 생각이 제 나름대로 관찰한 결과예요.
- 교수님에게 책은 ㅇㅇ다?
"'마음이다' 갑자기 그렇게 생각나네요. 마음이 우러나야 책을 읽을 수 있는 거고요. 마음이 통해야 책을 읽는 거고 또 책을 읽은 다음에 그게 마음에 깊이 오래 남기 때문에 마음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어느 기쁨보다도 그 어렵게 책을 읽었을 때요. 그 뿌듯함이 옛날에 책걸이 하고 만났을 때 그날 하루 종일 몸이 붕 뜬 기분 아니에요."
현재 '추사재'는 개인의 집, 사유재이지만 향후 공공재로서 활용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 인터뷰 : 윤창륙 / 조선대 치의학박사 교수
"현재는 개인 사유제지만요. 시간이 흐르면 이 집은 공공재로서 활용되기를 개인적으로 바라고 가족들도 거기에 동의했고요. 여기 와서 이 산속에 누가 와서 살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살기에는 적절치 않고 그래서 저처럼 이렇게 서로 여러 사람과 교류하고 공유하고 그런 식으로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한 번씩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집을 상상해보곤 한다.
윤창륙 교수의 어린시절 어렴풋하게 꿈꾸었던 집은 현실이 되었다.
생각을 따라가는 집, '추사재'라는 이름처럼 많은 책, 그리고 지역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함께 시대와 세대를 오가는 공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기획·촬영 : 전준상 / 구성 : 신정선 / 편집 : 이지윤 / 제작 : KBC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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